이사부 강릉 출항론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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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부 강릉 출항론②
  • 홍문식
  • 승인 2015.11.30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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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부 왜 우산국으로 갔나?

홍 문 식

 

 

 

 

 

1, 서

 

언제부터인가 울릉도 독도는 우리 국민들이면 누구나 깊은 애정을 갖고 있는 섬이 되었다. 이는 일본의 아베 정부가 들어서면서 극우로 치우치면서 독도영유권을 주장하고 제2차 세계대전으로 빚어진 대량학살, 징용, 더 나아가 위안부 문제까지 어느 하나도 뉘우침과 사과 없이

망령된 발언으로 일관하면서 역사를 왜곡하는 등의 만행을 자행하고 있어 우리 국민들을 자극하고 있어서 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은 우리 역사를 바르게 알고 독도가 우리의 국토임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하여 본고에서는 이사부가 왜 우산국을 복속시키고 동해를 중요시 하였는지를 밝히고 독도가 고조선부터 우리의 영토임을 밝히고자 한다.

 

2, 조선의 의미

 

가, 세발까마귀

조선(朝鮮)이라 함은 해뜨는 곳을 의미한다. 조선은 해가 뜨는 나라 아침에 해를 제일 먼저 보는 나라라는 뜻이다. 고서서 밝히기를 “해에는 준오(踆烏)가 있고, 달에는 옥토(玉免)가 있다.” 라고 하였다. 이는 해가 뜨는 곳에는 준오 즉 까마귀가 있다고 하였으며 달에는 옥토 즉 토끼가 있다는 것이다. 하여 고조선은 해의 고향이므로 해를 가장 먼저 보는 땅으로 세발까마귀를 신조로 하여 그 깃발로 사용하였다. 이는 고구려로 이어져 해의 본 고장을 가지고 있는 나라로 삼국의 주국이 되어 왔던 것이다. 금오, 금아 라고도 하여 “금오신화”라는 말은 바로 조선의 신화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회남자(淮南子) 권7 정신훈(情神訓)에

“일중유준오(日中有踆烏) 일준유준야위삼족오독준위지준(一踆猶蹲也謂三足烏讀踆蘶之踆)” 해속에 준오가 있다. 주에 이르기를 준(踆)은 준(蹲)이고 삼족오라 하며 준(踆)이라하며 높고 우둑한 것의 준이다.

 

산해경(山海經) 대화동경(大荒東經)에

“양곡상유부목일일방지출계재우오(暘谷上有扶木一日方出계載于烏)”

양곡위에 부목이 있는데 한 개의 해가 이르자 한 개의 해가 막 떠오르는 데 모두에 까마귀가 실려 있다.

 

조재삼(趙在三)의 송남잡지(松南雜誌)에

“일자태양지정적이성오(日者太陽之精積而成烏)”해는 태양의 정기로 까마귀가 실려있다.

 

나, 동(東)

오행사상(五行思想) - 금수목화토(金水木火土)이고,

동서남북 방향으로 배정하면

동방목(東方木), 남방화(南方火), 서방금(西方金),

북방수(北方水), 중앙토(中央土)

 

설문해자(說文解字)

동(東)자는 (日)가 나무(木) 가운데 있으면 동(東)

. 해가 나무위에 있으면 고(杲) 나무 아래에 있으면 묘(杳)

해를 금오(金烏) 또는 금아(금鴉)라하고 달을 옥토(玉免)라고 하는 것이다.

 

다. 우산국(울릉도)과 우릉도(독도)의 의미

삼국 중 고구려가 우산국의 지배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고구려는 삼국 중 으뜸국이 되는 것이고 해의 본고장을 지배하고 있다고 믿어왔다. 이런 시점에서 신라는 동해의 해상권을 장악하는 것은 해상권만의 확보가 아니라 해의 중심을 차지한다는 정체성의 문제가 매우 중요했다. 신라가 삼국 중 가장 후발국이었기에 우산국과 우릉도(독도)를 차지 한다는 것은 해의 고장 즉 준오를 차지 한다는 데 매우 의의가 깊은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대한민국의 시작은 독도에서 라고 말한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곳이기 때문에 글하다. 즉 신라도 정서적으로 삼국 중 가장 먼저 해를 맞이하는 나라가 신라라는 위상을 심어주어야 환국의 중심 즉 고조선의 맥을 정통으로 이어받은 나라라는 것을 내세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3, 왜와의 관계

 

대화 왜(일본)은 북쪽 지역은 고구려의 지배하에 있었고 남부와 관동은 백제의 지배하에 있었다. 그래서 대화 왜는 신라의 해안 접경을 자주 노략질을 하거나 백제와 동맹하여 신라를 괴롭히고 있었다.

내물왕 때는 신라가 왜의 침입으로 위기를 맞았으나 고구려의 광개토왕의 도움으로 위기를 넘기게 되었고 이후에도 왜는 자주 접경을 노략질하므로 신라의 왕들은 왜에 대한 방비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신라의 문무왕릉이 바다 속에 있는 것은 동해의 용왕이 되어 일본의 노략질을 막겠다는 것으로 신라가 얼마나 왜의 노략질에 고심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사부는 신라가 북진하여 고토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뒷배를 미리 차단할 필요가 있었다. 신라의 유일한 항로가 동해안과 남해안인데 남해안은 가야가 백제의 지배하에서 해상무역로를 차지하고 있었고 유일한 울산지역을 통한 신라의 해상 무역로 마저 왜의 해적들에 완전히 노출되어 자유롭지 못했다. 지증왕 때 무역을 활성화하기위하여 경주에 동시를 개장 했는데 외국의 무역상들이 자유롭게 들어 올 수 있어야 하는 데 왜의 해적에 의해 신라의 무역선들이 약탈당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이사부는 이때 우산국의 우혜가 고구려를 등에 업고 대마 왜 즉 대마도주와 결혼 동맹으로 동해의 해상을 좌지우지 하는 것은 신라의 국력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을 통찰하였다고 본다. 하여 우산국을 복속시켜 신라의 휘하에 두는 것은 동해안의 해상권을 확보하고 아울러 우산국과 동맹 체제에 있는 대마도주를 함께 복속시키는 의미가 있다고 본 것이다.

 

4. 출항지 하슬라에 대한 견해

 

하슬라가 출항지인 이유는 첫째 남대천의 변천을 통해 천혜의 자연항 강문항이 된다. 많은 군선을 정박 할 수 있는 조건 갖춤 - 경포호와 남대천의 서출북입으로 류속이 느리다는 점과 강폭이 넓다는 점이다. 남대천은 월출산 밑에서 활처럼 휘어져 포남 들을 지나 초당과 강문 사이의 넓은 강폭으로 흘러 강문으로 바다로 들어갔다.

둘째, 군선은 나라에서 관리하는 배로 반드시 조선소가 있어야 하는 데 삼척의 오십천에는 조선소가 없다. 고려 초기까지 강릉의 남대천 현재 공단부근에 신라의 주즙 즉 선곡소(조선소)가 존재 했다는 사실은 여러 고서에서 밝혀져 있다는 점이다.

▲ 남대천의 옛 모습과 강문, 경포호 관계

 

왕의 명에 의해서만 군선을 조선해야 하는 데 우산국을 복속시키기 위해 많은 군선을 조선하는 장소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이런 조건을 하슬라가 갖추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셋째, 군사들을 조련하기 위해서는 지휘소와 통제가 필요한 성이 있어야 한다. 니하(泥河)에 성을 쌓았다는 기록은 있으나 그 위치를 정확히 몰라 그간에 강릉 주변의 여러 성들을 추측하여 이야기 하였으나 2012년 경포 죽도봉에서 신라 최대의 토성이 발견되었는데 510년경에 쌓은 성으로 확정 발표되었고 이하성일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넷째, 삼국사기, 삼국유사 모두 하슬라에서 우산국까지 이틀 걸리는 거리라고 하였다. 이는 이사부가 실직에서 출발 하였으면 실직에서 이틀이라고 하였을 것이다. 사서의 기록은 바로 출항지에서 며칠 걸린다고 하는 것이다. 바로 사서가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5, 이사부 언제 하슬라에 왔나에 대한 의문

 

512년(지증왕 13년) 초 하슬라 군주로 임명 5월에 우산국 복속이다. 불과 4-5개월 준비하여 우산국으로 갈 수 없다는 주장에서 실직(삼척)의 출항지로 내세우는 까닭이다. 이사부의 북진은 이미 510년경 신라에서 하슬라에 이하성을 쌓았다는 기록은 이미 이사부가 북진을 하여 510년경에는 실질적으로 신라의 주력군이 이미 하슬라에 올라와 있었기 때문에 이하성을 쌓을 수 있었다.

현대전에서도 한 지역을 정복한 군이 정복지역에 주둔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고 이곳에서 주둔을 위한 모든 터를 확보하고 나서 지역의 사령관을 확실하게 임명하는 것이다. 이사부도 이와 같이 볼 때 510년 이전에 이미 하슬라를 회복하고 이곳에서 군사요충지인 이하성을 대대적으로 축성하면서 아울러 조선소에서 군선을 함께 준비하고 틈틈이 훈련을 시켜 512년 하슬라 군주로 임명 받고 즉시 우산국을 복속시키기 위한 행동을 한 것이다. 즉 새로운 군주로서 실적을 올려 왕으로부터 신임을 더욱 얻어야 했기 때문일 것이다.

 

6. 이사부가 우산국을 복속한 까닭

 

첫째, 준오의 땅 독도를 차지함으로 단군 조선의 정통성을 갖기 위함 해를 제일 먼저 맞는 나라가 곧 신라로 삼국의 중심이라는 정체성 확보

둘째, 동해의 해상권을 확보 하여 신라의 국력을 신장시키기 위하여

고구려와 왜의 연합과 백제의 해상세력이 견제

셋째, 우산국 복속은 대마 왜의 복속의 의미를 갖기 때문에 신라의 해상

무역로 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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