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부 강릉 출항론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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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부 강릉 출항론①
  • 홍문식
  • 승인 2015.11.30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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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성과 우산국 복속 출항지 논의

 

홍문식(이사부정신문화연구소 소장_

 

 

 

 

1, 들어가며

이사부의 우산국복속에서부터이니 참으로 1500여 년 동안 긴 세월 독도는 우리 민족의 핏속에서 함께 호흡해온 곳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유구한 역사를 지닌 우리의 영토를 일본의 아베정권이 들어서서 자신의 영토라고 억지를 쓰고 역사를 왜곡하는 행위는 그들이 2차 대전을 일으킨 망령이 되살아나 동북아의 정세를 불안하게 하고 그들의 경제회복과 어려운 정국을 돌파하려는 얄팍한 꼼수로 보는 것이다. 이런 시기에 강릉의 경포 현대호텔 신축부지에서 510년경 조성된 신라의 토성중 가장 큰 토성이 발견되었다는 사실은 우산국 복속의 출항지 열쇠를 풀어준 커다란 성과라고 본다.

본고에서는 강릉 현대호텔이 위치한 죽도성을 중심으로 강문항이 이사부의 출항지의 조건을 갖추었음을 설명하고자 한다. 하여 삼척의 오분항 출항지 주장과 강릉의 안목항 출항지 주장을 살펴보고 강문항의 조건을 제시하고자 한다.

 

2, 출항지에 대한 논의

 

1) 삼척이 출항지라고 주장을 이론들을 먼저 살펴보고자 한다.

지증왕6년(505년) 김이사부가 최초의 실직군주가 되어 부임하였고 512년 하슬라군주가 되어 우산국을 복속시켰다고 하였다. “삼국사기”에 하슬라군주 이사부가 우산국을 복속하였다고 기록하였다. 이사부의 우산국복속에 관한 출항지 논란은 현재 계속되고 있는데 현재 삼척에서 실시하고 있는 이사부 역사문화 축제를 중심으로 우산국정벌 출항지를 삼척이라고 주장하고 그 가능성이 가장 가깝다고 주장하고 있다.

강봉룡 교수는 삼척의 실직주를 군사중심도시로 특화시켜 주력부대를 실직에 두었기 때문에 하슬라를 행정 중심도시이고 실직을 군사중심도시이기에 실직이 가장 유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상수 실장은 유적을 통해본 출항지 검토에서 강릉 안목항 보다 삼척 오분항이 유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의 근거로 강릉 안목항은 매우 작은 포구여서 대단위의 병선의 출항이 어렵다고 지적하고 오십천하구인 오분항이 자연조건으로 더 유력하게 갖추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재춘 교수는 삼척지역에 소재한 성곽유적의 현황과 수군관련 유적, 그리고 이러한 유적 가운데 신라의 군사활동과 관련하여 연구한 결과로 삼척의 오분항을 출항지라고 주장하고 있다.

유명철 교수는 삼척은 김이사부의 발진기지로서 조건을 비교적 잘 갖추고 있어 출항지의 역할을 주도하였고 강릉과 울진의 연합 체제를 갖추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장동호 교수는 강릉시, 동해시, 삼척시, 울진군의 항구와 포구 및 진 어촌에 대하여 현장조사와 함께 문헌조사를 병행하고 GIS기법을 이용하여 출항지가 어디인지 분석하고 그 분석결과 울릉도의 육안 관측이 가능하고 경사가 완만한 넓은 배후지를 가지고 있는 삼척 오분항을 가장 가능성 높다고 주장하고 있다.

손승철 교수는 고려와 조선시대의 기록을 중심으로 볼 때 국가차원의 동해와 울릉도에 대한 관리가 가장 수월한 곳이 삼척이라고 하면서 삼척의 오분항을 최적의 출항지라고 주장하고 있다.

 

2) 강릉 안목항을 출항지라고 주장하는 교수들의 주장을 살펴보고자 한다.

삼국시대부터 강릉은 가장 중요한 군사요충지였으며 삼척보다 먼저 신라의 힘이 닿았으므로 출토유물이 풍부하고 이사부가 실직 군주로 임명되었을 때 군사력까지 강릉으로 옮겼으므로 안목항이 유력하다고 요약하고 있다.

고고학의 유물과 유적을 중심으로 연구해온 이성주 교수는 당시 내만 혹은 석호가 넓게 펼쳐진 남대천 하구는 하슬라인들이 건조한 군사용변선이 정박할 수 있는 접안시설을 설치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하였다.

이규대 교수는 6세기 초 동북방 진출정책과 하서정이라는 지방 군단에 초점을 맞추어 이 시기 하슬라 군주의 치소를 예국고성으로 비정되며, 지금의 안목항이 가장 좋은 출항지라는 견해이다.

박도식 교수는 동해안의 진을 중심으로 살펴보면서 당시 지증왕 5년 주즙법이 실행되면서 가장 중요한 조선소의 위치를 중심으로 조사하고 연구한 결과 강릉에는 조선소가 지금의 입암 공단자리에 설치되어 고려 초기 까지 그 위치가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이사부가 병선을 건조하고 이를 정박할 수 있는 넓은 지역이 필요 했는데 이를 보아 남대천 하구인 강릉 안목항을 출항지로 주장하고 있다.

 

3) 강문항이 출항지의 조건을 고찰.

위에서 살펴본 주장들은 2012년 강릉 현대호텔 재건축을 위해 지표조사를 하던 중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신라의 토성이 발견되면서 이사부의 출항지에 대한 의견이 달라져야 한다고 본다. 이사부의 우산국정벌 출항지를 강릉의 안목항(현 강릉항)도 삼척의 오분항도 아닌 경포호를 안고 있는 강문항으로 보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강릉 남대천은 원래 현재의 남항진으로 바로 흘러 들어간 것이 아니라 월대산 밑에서 굽어져 휘어 포남동 송정 벌을 가로 질러 초당 앞 솔밭을 거쳐 강문으로 흘러들어 갖다. 그래서 이곳의 지명이 강문이 되는 것이다. 율곡 이이선생의 소금강기행기를 보면 임영관 앞에서 배를 타고 강문으로 나아가 소금강으로 올라가 갔다고 기록 하고 있다. 이는 강문항은 배후지로 넓은 강의 하구와 인접 석호인 경포호를 가지고 있어 군항의 조건을 잘 갖추고 있다고 본다.

둘째, 강릉에는 조선소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삼척의 어느 곳에도 진은 있으나 병선을 건조할 수 있는 조선소가 있었다는 기록이 없다. 고려초기의 진들을 보면 강릉 입암동 지금의 공단 자리근처에 선곡소라는 조선소의 위치가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고려초기의 조선소라면 신라의 조선소를 그대로 이어받았다고 본다. 이사부가 병선을 건조하기 위한 국왕의 승인을 얻어 군선을 건조할 수 있는 조선소를 갖추어 군선을 건조하였다고 볼 수 있는 근거일 것이다.

셋째, 1960년대 후반 경포호 남단에 한국수자원공사에서 수리시설을 설치할 때 많은 고고학자들과 지역 주민들이 이곳에서 영정주가 나왔으나 이때만하여도 문화재에 대한 안목이 없어 그대로 묻고 뽑아버리고 공사를 진행 했다고 한다.

▲ <신라시대의 강릉 남대천 모습과 경포호수>

 

죽도성 발굴에서도 강변과 접한 곳에는 영정주가 2m 간격으로 박혀져 있는 것이 증명 되었다. 이는 물론 토성이 강으로 무너져 내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일수도 있으나 강변에 특별하게 영정주를 좁게 박은 것은 선박의 정박을 위한 시설이 아닌가 사료된다. 그러므로 510년경의 성으로 이곳에 항구시설이 있었을 가능성을 더욱 높여 주어 강문항의 출항지 가능성을 높여 주는 것이다.

넷째, 실직주를 점령한 이사부가 신라의 고토회복이라는 명분하에 실직에만 머물러 있었다면 당연 우산국정벌은 실직이 출항지 일 것이다. 군사 전략가들에 의하면 당연히 주력부대가 하슬라로 이동하여 방어해야 한다는 것이 상식이라는 것이다. 510년경 이사부의 주력부대는 하슬라에 위치하였을 것이고 이런 막강한 군사력과 노동력이 있었기 때문에 이 시기에 죽도성을 수축하였던 것이다. 죽도성 즉 강문항이 바로 이사부의 우산국정벌 출항지임이 유력하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다섯째, 삼척에서 주장하는 우산국관리차원에서의 문제를 제기 했다. 그렇다면 현재 대마도는 왜 일본의 영토가 되었는지 묻고 싶다. 육안으로 보이는 대마도는 우리의 영토가 아니고 일본의 영토가 되었고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제주도는 우리의 영토이다. 지난 해 강원도립대 조현정 교수의 고대인의 항해 기술발표에서 울릉도로 가는 고대인의 항로는 선박위의 조망 시설을 통하여 강릉이나 동해나 삼척 어디든 출항하면서 해안에서 1-2km 정도만 나아간다면 선박의 조망대에서 울릉도의 성인봉을 볼 수 있다고 발표하였다. 이것으로 미루어 볼 때 강릉의 죽도성 전망대를 통하여 출항한 군선들은 선단 자체의 조망대를 통하여 울릉도로 충분히 항해 할 수 있음을 증명하여 주었다.

여섯째, 민간 신앙이다. 강릉의 성황신에 강문과 안목 등지의 바닷가에 오랫동안 이사부신을 바다의 해신으로 모시고 성황제를 올려왔다는 근거는 여러 곳에 나타나고 있다. 이는 이사부가 우산국을 복속시킨 업적을 통하여 목사자상을 앞세워 우산국을 복속시킨 힘은 바다를 다스리는 해신으로 모실만한 근거가 되는 것이다. 조선조에 의하면 강릉단오의 주신들이 12신이 있었는데 그 12신중의 하나가 이사부신이다. 이는 강문을 중심으로 하는 바닷가의 어촌을 중심으로 이사부를 성황신으로 모셨다.

일곱째로 죽도성이다. 삼척에서 주장하는 오분항에는 성이 없다. 군사항으로 군선의 출입을 통제하자면 높은 누각이 필요하고 그 성곽위에 봉화나 깃발을 이용하여 병선의 움직임과 훈련을 하여야 한다. 이 죽도성은 경포호에서도 볼 수 있고 강릉 경포앞바다에서도 볼 수 있는 사방이 개괄되어있어 군선의 훈련이 용이하게 되어 있다.

<1. 죽도성에서 발굴된 유적들>

▲ 숙소 터
▲ 강변 영정주

 

 

 

 

 

 

하슬라 북쪽에 주력부대를 배치하여 방어를 하고 일부 군사와 주민을 동원하여 죽도성을 쌓았으며 아울러 함께 선곡소 즉 조선소에서 군선을 건조하였을 것이다. 경포호수는 군선을 마음껏 띄워 놓을 수 있는 곳이고 남대천 하구에서는 마음껏 군선을 건조할 수 있었으며 죽도성을 통하여 이들을 일사분란하게 관리하고 조련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특히 예국은 옛날부터 호랑이를 신으로 모시는 곳이다. 이사부가 우산국을 정벌하는 데 목사자상을 만들었다는 자체는 바로 이러한 신앙이 근거가 되는 지역 사람들에 의해 제조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므로 죽도성의 발견은 이사부의 우산국정벌 출항지의 마침표를 찍는 것이라고 본다. 강릉 학자들이 주장하는 안목항도 아니고 삼척을 출항지로 주장하는 학자들의 주장도 근거가 미약해 졌다. 이사부의 출항지는 이제 다시 정립할 때라고 본다.

 

 

※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신증동국여지승람, 비변사인방안지도, 성호사설.

 

김호동 : 삼국시대 신라의 동해안 제해권 확보의 의미. 2001. 대구사학 65.

박도식 : 신라의 북방개척과 동해 제해권 장악에서의 이사부의 역할, 2011.(관동대)

이사부의 우산국 복속과 그 의의 .2009. 제8회 이사부선양 세미나.

경포대와 경포호의 문화 산책. 국학자료원. 2009.

이근우 : 고대 동해안의 해상교류와 이사부. 2008. 삼척 동해왕 이사부 문화축전 심포지엄

임호민 : 이사부 선양을 위한 해양문화사업 추진의 제방향, 2009. (관동대)

병부령 이사부에 대한 기록 검토. 2008. 제7회 이사부세미나.

조현정 : 동해안 해류와 항해술. 2008. (강원도립대)

동해안 해양환경과 항해술. 2009, 제8회 이사부선양세미나.

 

홍문식 : 약력

 

동해 1950년 출생 . 춘천고등학교,

강릉교육대학교(1회), 한국방송통신대학교(경영학)졸업.

관동대학교 교육대학원(상담심리) 졸업,

강릉원주대학교 최고경영자과정 졸업.

한국해양소년단 강원연맹 사무국장.

강원도 청소년 위원

88올림픽 강상제 부지휘. 푸른 독도 가꾸기 추진(부엽토 2톤 옮겨 나무심기 등)

이사부 얼 선양 운동 실천(울릉도 독도 탐사 23회 추진)

강릉생명의 숲 운영위원장 역임(현 이사). 한국문인협회 회원(시인)(아동문학가)

한국생활문학회 부회장. 한국아동문학연구회 중앙위원. 생명사랑 전문 강사

이사부정신문화연구소 소장

 

저서 및 논문 :

영재의 심리적 특성에 관한 연구.(관동대학교)

멋진 부모 되는 길,

시집 : 그대는 아시나요(1). 정복당하지 않는 영혼을 심는 정원사(2), 아뿔싸(3)

까르르(동시집) 국상 이사부(소설)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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