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 NOW] '노예해방' 링컨까지 소환...'백인지배 역사지우기'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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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NOW] '노예해방' 링컨까지 소환...'백인지배 역사지우기' 운동
  • 권영일 객원기자(애틀랜타, 미국)
  • 승인 2020.07.08 10: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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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대륙발견 콜럼버스부터 초대 대통령 워싱턴까지 예외 없어
위스콘신대학 내 링컨 대통령 동상까지 철거 운동 벌어져
권영일 객원기자(애틀랜타)
권영일 객원기자(애틀랜타)

[오피니언뉴스=권영일 객원기자(애틀랜타, 미국)]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을 계기로 촉발된 인권시위가 동상 철거 운동으로 확산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 전역에서 최근 역사의 위인들 동상이 수난을 당하고 있다.

미국 독립 244 주년을 맞은 7월 4일(현지 시각),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는 전쟁용 소총으로 무장하고 검은색 옷을 입은 200 여명의 시위대가 행진을 벌였다. 남부군의 상징인 대형 조형물의 철거를 요구하기 위해서다.  같은 날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서는 시위대가 콜럼버스 동상을 무너뜨렸다. 그리고 그 동상을 이너 하버 항만에 던져버렸다.

지난 1492년 미국 대륙을 발견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동상은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버지니아주 리치몬드, 매사추세츠주 보스턴, 미네소타주 세인트 폴리스에서도 훼손되거나 쓰러졌다. 콜럼버스가 인종학살과 미국 원주민 착취의 책임자라는 것이다. 

연방정부가 동상 훼손을 ‘반국가활동’으로 규정하고, 독립기념일 주말 연방 기념물과 동상을 보호하기 위해 특별팀을 배치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처럼 ‘백인 지배 역사 지우기’운동은 미국 전역에서 파괴적 행위로 번지고 있다. ‘흑인 목숨은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를 내건 시위가 급기야 반달리즘(vandalism : 문화 역사물 파괴 행위)으로 둔갑한 것이다.  최근 미국 일부 지역에서 동상과 기념물에 대한 철거 시도나 훼손 등의 행위가 잇따랐다

백인 역사 지우기에는 미국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도 피해갈 수 없었다. 지난달 29일 뉴욕 맨해튼 워싱턴 스퀘어 파크 공원에 있는 그의 조각상이 시뻘건 페인트로 훼손된 것이다. 그 이유는 워싱턴 대통령이 흑인 노예를 둔 농장주였다는 것.  시카고와 오리건 등에서도 일부 인종차별 반대 시위자들로부터 동상이 공격당하는 수모를 받았다.  
워싱턴DC에선 지난달 22일 시위대가 백악관 인근 라파예트공원에 있는 앤드루 잭슨 전 대통령 동상을 끌어 내리려다 해산됐다.
 

미국 시카고 워싱턴 파크에 있는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 동상. 설치된지 116년이된 이 동상을 철거하라는 백인지배 역사지우기 운동이 미 전역으로 확산하고 있다. 철거지지자들이 워싱턴 동상에 '노예 소유주', 노예제 제창자라는 의미의 'Slave Owner'라는 붉은 글씨를 새겨놨다. 사진=연합뉴스/시카고abc방송화면 캡쳐.
미국 시카고 워싱턴 파크에 있는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 동상. 설치된지 116년이된 이 동상을 철거하라는 백인지배 역사지우기 운동이 미 전역으로 확산하고 있다. 철거지지자들이 워싱턴 동상에 '노예 소유주', '노예제 제창자'라는 의미의 'Slave Owner'라는 붉은 글씨를 새겨놨다. 사진=연합뉴스/시카고abc방송화면 캡쳐.

노예 해방의 주역 링컨 대통령 마저…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다. 16대 대통령인 링컨은 그동안 ‘노예제를 폐지하고 분열된 미국을 통합한, 미국인들로부터 가장 사랑받는 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위스콘신대학(매디슨) 흑인 학생단체 ‘블랙 스튜던트 유니언’과 ‘스튜던트 인클루전 커미티’는 캠퍼스 본관 앞에 114년째 서 있는 링컨 동상의 철거운동을 벌이고 있다.

링컨 동상은 이 대학 캠퍼스의 상징 가운데 하나다. 신입생들은 링컨의 왼쪽 신발을 손으로 문지르며 행운을 기원하고, 졸업생들은 링컨의 무릎에 올라앉아 기념사진을 찍는 등 학생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럼에도 철거 지지자들은 링컨이 노예해방 선언문에 서명한 1862년, 미네소타 원주민 38명을 집단 사형에 처한 군사명령에 서명했다며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원주민 처형이었다”고 주장했다.

위스콘신대학 측은 동상 철거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레베카 블랭크 총장은 "링컨은 전반적 업적으로 볼 때 미국의 가장 위대한 대통령 가운데 한 명"이라며, "링컨의 유산을 무조건 지우는 것이 아니라 검증 후 기념하거나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스턴의 유서 깊은 공원 '보스턴 커먼'에 서 있는 링컨 동상도 철거에 직면해 있다. 노예 해방 선언으로 자유 신분이 된 흑인이 링컨 발 아래 무릎을 꿇고 있는 형상의 노예 해방 기념 동상이다. 보스턴시 예술위원회는 1만2천여 명으로부터 철거 청원을 받고, 최근 “공공예술품이 누군가에게 수치심을 안겨서는 안 된다”며 철거 결정을 내렸다.

이에 대해 코네티컷대 역사학과 매나샤 시나 교수는 “우리가 존경하는 인물들도 모든 면에 완벽할 수는 없다"면서 "나쁜 사람이었으니 그를 제거해야 한다는 주장 대신 그 복잡하고 미묘한 역사를 서로 나눌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철거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위스콘신대학 본관앞 링컨 대통령 동상. 한 졸업생이 링컨 동상에 앉아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연합뉴스/위스콘신대학 매거진
철거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위스콘신대학 본관앞 링컨 대통령 동상. 한 졸업생이 링컨 동상에 앉아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연합뉴스/위스콘신대학 매거진

트럼프 행정부, “역사 말살 무자비한 캠페인”

이런 가운데 역사지우기에 대한 연방 정부의 태도는 강력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역사를 말살하려는 무자비한 캠페인"이라고 비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3일 저녁 사우스다코타주의 러시모어산에서 열린 불꽃놀이 행사에 참석해 "이 캠페인이 러시모어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유산을 공개적으로 공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러시모어산은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에이브러햄 링컨, 시어도어 루스벨트 등 4명의 전직 미국 대통령의 거대한 두상이 새겨진 공원으로 유명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고, 품위를 손상하지도 않을 것이며, 나쁘고 악한 사람들에게 겁먹지 않겠다"며 "그들에게 미국의 모든 가치, 역사, 문화를 빼앗기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영국의 저명한 역사학자 E.H.카는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역사는 현실의 입장에서 끊임없이 재해석된다. 이에 따라 역사 속 인물을 재평가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하지만 최근 역사 지우기 광풍은 ‘너무 나간 것’이라는 우려와 함께 미국 전반의 불평등 해소가 아닌 미국 사회의 분열로 이어질 것이라는 미국민의 시각이 많다. 트럼프 대통령의 ‘무법 좌파(lawless left)’ 발언도 이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 권영일 객원기자(미국 애틀랜타)는 한국외국어대 불어과를 졸업하고,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에서 광고홍보학을 전공했다. 1985년 언론계에 발을 내딛은 후, 내외경제신문(현 헤럴드경제신문)에서 산업부, 국제부, 정경부, 정보과학부, 사회부 기자를 거쳐 논설위원을 역임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와 현재 애틀랜타에 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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