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관찰일기] 파리지앵들, 코로나에도 공원에 바글바글...파리 공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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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관찰일기] 파리지앵들, 코로나에도 공원에 바글바글...파리 공원 이야기
  • 김환훈 파리 통신원
  • 승인 2020.06.25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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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금지령이 해제되자마자 도시 공원으로 몰리는 파리지앵들
파리 시민들에게 도시 공원은 단순한 문화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 공간
19세기 파리개조사업 이후 도시 공원의 역할은 끊임없이 진화 중
김환훈 파리 통신원
김환훈 파리 통신원

[오피니언뉴스=김환훈 파리 통신원] 파리 시민이라면 누구나 도시 공원을 사랑한다. 꼭지가 달린 빵모자를 쓰고 바게트를 손에 쥔 채 바구니가 달린 자전거를 타는 게 파리지앵의 전형적인 모습이듯, 공원 잔디에 누워 와인과 치즈를 나누어 먹으며 하하호호 시간을 흘려보내는 여유로운 피크닉 장면 역시 그들과 떼야 뗄 수 없는 이미지 중의 하나다.

실제로 그들의 공원 사랑은 코로나 사태 발발 이후에도 여전했다. 지난 3월 정부가 카페와 레스토랑 같은 공공 시설을 폐쇄하자, 파리의 시민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인근의 도시 공원으로 삼삼오오 몰려들었다.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전 국민이 함께 힘을 모으자는 대통령의 담화가 있던 바로 다음 날이었음에도 말이다. 며칠 뒤 전국의 모든 도시 공원은 폐쇄되었다. 수많은 프랑스 국민들은 아쉬운 마음에 제발 공원만큼은 닫지 말자며 아우성 쳤다.

사실 프랑스, 특히 파리 시민들에게 이러한 도시 공원은 단순한 휴식 공간 이상의 의미다. 그저 고단한 도시 생활을 잠시 잊는데 사용되는 휴식처만로만 바라볼 문제가 아니다. 그들에게 도시공원은 파리의 역사와 전통 그 자체를 상징하는 가히 하나의 '랜드마크'라 부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인한 이동 금지령 해제 이후 파리 시내의 한 도시 공원의 모습.
코로나로 인한 이동 금지령 해제 이후 파리 시내의 한 도시 공원의 모습.

파리에 도시 공원이 생긴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파리 시민들은 그 누구보다도 ‘녹색(vert)’의 중요성을 일찍이 깨달은 사람들이었다. 센느 강의 조그만 모래톱에서 시작한 도시 파리는 유럽이란 역사의 물결을 따라 흐르며 거대한 도시로 성장했다. 허나 그 화려한 위상에 비해 위생과 환경, 도시 계획이라는 개념이 없던 탓에 파리는 촘촘한 비둘기 둥지처럼 높은 인구 밀도에 신음하는 끔찍한 공간이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끊임없이 프랑스의 수도 파리로 꾸역꾸역 밀려들었고, 거리에는 여과 없이 흐르는 시궁창과 악취가 쏟아져 생지옥이나 다름없었다고 한다. 질병은 물론이고, 깨끗한 환경에 대한 욕구가 터져나오지 않을 수 없는 환경이었다.

파리의 시민들은 왕과 귀족층에 요구했다. 우리에게 ‘녹색vert’을 달라고. 특히나 시민혁명 이후 이런 목소리는 더욱 커졌고 힘까지 실리게 된다.  19세기 초, 대부분의 왕가 정원이나 왕실 전용 사냥용 숲 등이 일반인들에게 차츰 개방되었다. 상류층에게만 제공되던 쾌적한 녹색 문화가 평범한 시민들이 향유할 수 있는 문화로 변모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파리에 시민들을 위한 도시 공원이 조성된 것은 1850년대 이후부터다.

나폴레옹의 조카로 알려진 프랑스의 마지막 황제 ‘나폴레옹 3세’는 프랑스 제 2공화국의 지도자이기 이전에 도시 공원의 중요성을 일찍이 깨달은 사람이었다. 그는 젊은 시절 “자연은 불행에 빠진 사람에게 알 수 없는 위안과 힘을 준다”며 직접 정원을 가꾸고 흙을 만지는 일을 즐겼다고 한다. 또 파리라는 도시를 세계 최고의 도시로 변모시키겠다는 그의 개인적 야심과 맞물려 그 유명한 파리 대개조사업이 태동했다.

오늘날 파리 시내 도시 공원(녹지)의 80%를 조성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던 나폴레옹 3세.
오늘날 파리 시내 도시 공원(녹지)의 80%를 조성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던 나폴레옹 3세.

그 도시개조사업의 결과가 오늘날 문화와 예술의 도시 파리다. 당시 대개조 사업을 담당했던 파리 시장 오스만의 이름을 딴 ‘오스만 양식’으로 알려진 독특한 스타일의 파리 도시 계획은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와 미국의 뉴욕과 같은 수많은 현대적 도시 건축에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폴레옹 3세의 도시 계획의 고유한 특징 중 하나는 ‘녹색’이라는 테마였다. 나폴레옹 3세는 역사상 최초로 권력자의 사적인 목적이 아닌, 시민들의 행복을 위해 도시 공원 조성을 계획한 지도자였다. 그는 도시에 ‘산소를 공급해야 한다’는 목적으로 파리 시내 전역에 거대한 예산을 들여 가로수를 심으라 주문했다. 또한 크기 별로 숲(Bois), 공원(Parc), 정원(Jardin), 스퀘어(Square)이라는 이름으로 녹색 지역을 구분해 파리 시내 곳곳에 조성했다.

총 24개의 스퀘어와 4개의 정원, 4개의 공원, 그리고 2개의 거대한 숲이 오직 파리 시민들의 복지와 행복을 위해 만들어졌다.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이지만, 오늘날 파리 시내에 조성된 녹지의 80% 이상이 나폴레옹 3세의 치하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 혜택은 고스란히 파리 시민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오늘날 파리 시민들은 말 그대로 도시 공원과 일생을 함께 한다. 파리의 아이들이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은 집 근처 소형 공원인 스퀘어다. 아이들은 공원에서 친구를 사귀고 함께 잔디 위를 뒹군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는 부모들은 선글라스를 끼고 벤치에 앉아 독서를 즐긴다.

또한 파리 모든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 역시 도시 공원이다. 룩셈부르크 공원이나 에펠탑 공원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관광지이기 이전에 파리 시민들의 사랑과 추억이 깃든 유명한 데이트 공간이다. 연인들은 풀숲에 함께 누워 치즈와 와인을 나누어 마시며 사랑을 속삭인다.

결혼식 역시 숲, 또는 공원급 이상의 도시 공원에서 열린다. 파리 시내 최대 규모의 도시 공원인 불로뉴 숲에는 고급형 결혼식장이 두 개나 위치하고 있고, 흐드러진 벚꽃으로 유명한 쏘 공원(Parc de Seaux)에서는 결혼식 같은 각종 행사를 진행할 수 있는 아담한 규모의 성이 존재하기까지 한다.

파리 시민들은 죽어서도 도시 공원에 묻힌다. 유럽의 가족 공동묘지는 도심 한 가운데마다 위치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이 공동묘지 역시 도시 공원으로서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공동묘지 주변에 사는 거주민들은 아름답게 조성된 공동 묘지를 거닐며 산책을 하고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다. 공동 묘지 주변의 땅은 여타의 공원과 인접한 지역과 마찬가지로 웃돈을 받고 거래될 정도로, 이들에게 공동 묘지는 또 다른 형태의 공원에 불과하다. 요약하자면 파리 시민에게 도시 공원은 그들의 요람이자 무덤인 셈이다.

산책로처럼 이용되고 있는 파리 시내의 작은 공동 묘지
산책로처럼 이용되고 있는 파리 시내의 작은 공동 묘지

도시 공원의 역할은 끊임없이 진화 중

현대에 들어 파리의 도시공원은 더욱 다양하면서도 세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예를 들어 파리 5구에 위치한 자르당 드 플랑트(Jardin de Plante)는 ‘식물의 정원’이라는 명칭에 걸맞게 전 세계의 식물을 파리 시민들에게 소개하는 역할을 맡았다. 열대우림부터 사막까지 세계 곳곳의 나무와 꽃들을 매 시즌에 맞춰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도록 다양한 식물들이 정원 곳곳에 배치된다. 공원 내에 위치한 자연사 박물관, 진화론 박물관 등 자연사 관련 학술 기관과 연계되어 매우 높은 수준의 자연 환경 체험을 제공한다.

또한 센느 강 위에 떠 있는 유람선형 해상 수영장과 연계된 수영 공원, 세계에서 가장 친환경적인 동물원으로 손꼽히는 방센 동물원이 위치한 방센 공원, 그리고 어마어마한 금액이 투입된 것으로 유명한 루이비통 설립 전시관과 파리 생제르망 축구팀의 홈 구장과 맞닿아 파리 시민들의 종합 레저 지역으로 이용되고 있는 불로뉴 숲까지. 파리 시내의 모든 도시 공원들은 단순한 녹색 휴식 공간 이상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끊임없이 진화하는 중이다.

최근 들어 이 도시 공원이 다시 한번 크게 주목받았다. 다름 아닌 ‘도시 생태계의 터전’으로서의 역할 덕분이다. 에콜로지, 즉 자연과의 조화를 무엇보다 중시하는 파리 시민들에게 도시 공원은 더 이상 인간만을 위해 조성된 공간이 아니다. 파리 시청의 조사에 따르면 현재 200만 명이 시민이 거주하고 있는 파리에는 약 2000여 종의 다양한 동식물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약 500여 개의 작은 공원과 두 개의 거대한 숲에 심어진 나무의 수는 무려 10만 그루에 달하고 독수리를 포함한 60여종의 조류와 심지어 토끼와 여우까지 함께 공생하는 곳이 바로 파리라는 도시다. 즉 생물다양성과 지속가능성을 제1의 우선 환경과제로 내세우는 파리 시민들에게, 도시 공원은 단순히 바람을 쐬러가는 공간이 아닌, 친환경적인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지켜나가는 가장 가까운 전진기지의 역할까지 매우 다양한 역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파리 시민들에게 있어 공원은 도시의 오랜 역사와 전통을 담고 있다. 어느 작원 공원에 가든, 파리의 도시 공원은 조성된 배경과 변천사에 관해 상세하게 적어놓은 팻말이 있다. 이를 읽어보는 것 역시 파리 시내를 둘러보는 소소한 재미가 되는 이유다. 실제로 파리의 시민들은 이렇게 도시의 역사를, 문화를, 그리고 기억을 배우고 가슴 속에 담는다. 또 자신의 어렸을 적을 추억하며, 자신의 아이와 손을 잡고 공원으로 향한다. 그래서일까. 파리 시민들은 공원에 나가는 취미를 결코 끊지 못할 것 같다. 마스크만 쓰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 김환훈 파리 통신원은 서울에서 불문학을 전공하고, 파리에선 한국문학에 매진 중인 자유기고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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