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민 변호사의 IT와 법] ①디지털 성범죄 수사에 압수수색이 중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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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민 변호사의 IT와 법] ①디지털 성범죄 수사에 압수수색이 중요한 이유
  • 김정민 변호사
  • 승인 2020.04.08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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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 압수통해 불법 촬영물 유포 차단이 시급하기 때문
압수수색, 수사기관의 권한이 아니라 피해자 보호위한 의무
IT기업 보안 강화할수록, 첨단 기술 도입이 필수...예산 적극 지원해야

 

김정민 변호사
김정민 변호사

[김정민 변호사] N번방과 조주빈의 등장으로 성착취와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훨씬 전부터 우리사회에 디지털 성범죄는 만연해있었는데, 이번 사건을 계기로 수면 위에 드러난 것일 뿐이라는 지적이 많다.

먼저, 디지털 성범죄의 수사에 있어서 디지털 증거에 대한 압수수색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이를 바라보는 수사기관이나 법원의 관점이 혁명적으로 바뀌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주제로 얘기를 해보고자 한다. 이에 더해, 텔레그램 등 글로벌 플랫폼기업이 한국 수사기관의 수사협조 요청에 응할 것인지도 예측해 보고자 한다.

나아가 이러한 범죄행위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디지털 성범죄에 관한 사회의 인식변화가 필요한데, N번방 사건의 잠재적 방조자이자 주된 소비 계층인 2030대의 인식을 어떤 방법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지 제안하고자 한다. 

만연해 있는 디지털 성범죄

지금까지도 디지털 성범죄는 우리 주변에 만연해있었다. 신입 여직원에게 회사 대표가 치마속을 찍은 동영상을 텔레그램으로 보내고, 이를 빌미로 만남과 성폭행이 이어진 사건이 있었고, 가출청소년들 합숙소에서 보호자역할을 하던 남성이 갓 들어온 여중생의 알몸을 몰래 찍은 동영상으로 협박해 성매매를 강요한 사건도 있었다. 성관계 영상을 몰래 촬영한 뒤 SNS에 올리는 사례는 만연해 있었다.

피해자들은 영상이 퍼질 것을 우려해 저항하거나 신고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데, 용기를 내어 경찰에 신고를 하여도 범인이 휴대폰을 바꿔서 증거를 찾을 수 없다는 둥 압수수색은 어렵다는 둥 수사기관이 밍기적거리는 사이 범죄자들은 법망을 빠져나가고, 정작 피해자들은 수사과정에서 왜 그런 영상을 촬영했냐는 둥 왜 영상을 보내줬냐는 둥 2차 가해를 당하기 일쑤였다.

여성을 협박해 성 착취 불법 촬영물을 제작하고 유포한 조주빈이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여성을 협박해 성 착취 불법 촬영물을 제작하고 유포한 조주빈이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신속히 이뤄져야할 디지털증거 압수수색

디지털 성범죄의 수사에는 디지털 증거의 압수수색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범행 증거의 대부분이 디지털 형태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증거 확보 외에도 수사기관이 신속하게 수색과 압수를 해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수색과 압수를 통해 불법 촬영물(파일)을 확인·확보하여 이에 대한 사후 조치를 통해 유포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이다. 어쩌면 피해자들은 범죄자 처벌보다 유포 차단을 더 원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디지털 성범죄를 수사하는 수사기관과 영장을 발부하는 법원은 압수수색을 자신들의 권한이라기보다, 피해자를 위한 의무라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의 강도와 신속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단연 수사기관의 의지이지만, 수사 관련 절차와 법규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디지털 증거의 압수수색은 일반 압수수색과 비교하여 어떠한 어려움이 있는 것일까?

먼저 디지털 증거란 '디지털 방식(‘0’ 또는 ‘1’)으로 저장되거나 전송되는 범죄의 증거로서의 가치가 있는 정보'를 말하고, 디지털 증거의 주된 특징으로 ▲매체독립성 ▲대량성 ▲비가시성(무형성) ▲ 비가독성이 있다. 정보저장매체는 유형의 물건(CD, 하드디스크, SSD, USB메모리 등)을 말하고 여기에 담긴 정보를 디지털 증거라고 한다.

디지털 정보저장매체에는 범죄사실과 관련이 있는 정보와 관련이 없는 정보가 혼재되어 있는데, 매체 자체를 압수하게 되면 기업의 경우 영업비밀, 개인의 경우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디지털 정보는 매체에 대량으로 저장되어 있으므로 관련성 있는 정보만을 검색하고 특정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고, 이 과정에서 증거의 오염가능성(오염된 증거는 재판에서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이 높아 전문적 장비가 필요하다. 즉 디지털 증거를 확보함에 있어서 국민의 기본권 보호와 효율적인 수사라는 상충되는 가치의 조화가 필요하다.

과거 ‘범죄자의 인권’이라는 용어가 없던 시절, 효율적 수사만을 강조해 압수수색이 광범위하게 무차별적으로 이루어졌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압수수색이 인권을 과도하게 침해할 수 있고, 문어발식 '먼지털이' 수사를 지양해야 한다는 인식이 높아지며, 법규상 또는 판례 해석상 압수수색의 요건이 강화되어왔다.

디지털 증거의 압수수색 방식은 ① 현장에 있는 정보저장매체에서 혐의사실과 관련된 데이터만 검색하여 복사하거나 종이로 출력하는 방법 ② 현장에서 저장매체 전체를 이미징하여 증거사본을 확보한 후 수사기관으로 가져와 관련된 데이터를 검색하여 복사 또는 출력하는 방법 ③ 현장에 있는 저장매체(또는 시스템) 자체를 수사기관으로 가져와서 이미징한 다음, 저장매체 원본은 반환하고 이미징한 사본에서 관련된 데이터를 검색하여 복사 또는 출력하는 방법이 있다. ①에서 ③으로 갈수록 사생활 침해 정도가 심해지는데, 실무상 ① 방식이 원칙이고, 원본을 반출(저장매체를 압수)하는 ③ 방식은 문제의 소지가 크다.

무분별한 압수수색을 방지하기 위해, 종전 형사소송법규에서 압수수색의 ‘필요성’만을 규정하던 것을, 2012년에 ‘해당사건과의 관련성’ 요건을 추가하였다. ‘관련성’ 도입의 의미는 해당 사건과 관련된 증거의 범위를 얼마나 합리적으로 제한하고, 관련성이 없는 증거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에 있다. ‘관련성’의 개념은 쉽게 ‘해당사건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해당사건에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하면 거의 맞다.

압수수색과 관련해서 관련성은 크게 ⓐ 압수수색영장을 신청하고 발부받아 현장에서 영장을 집행하는 단계 ⓑ 압수한 물건을 검토하는 단계 ⓒ 압수한 물건을 공판정에서 증거로 사용하는 단계 등 세 단계에서 요구되는데, 영장을 집행하고 압수물을 검토하는 단계가 핵심이다.

정보저장매체에 대한 압수수색에서 1) 집행 현장의 상황상 그 현장에서 내용을 확인하여 관련성 있는 정보를 선별하기가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경우 2) 정보저장매체에 관련된 정보가 기록되어 있을 개연성이 인정되고 현장 확인시 기록된 정보가 손괴(오염)될 가능성이 있는 경우 3) 관련된 정보의 삭제가 의심되어 저장매체에 대한 복구가 필요한 경우에는 정보저장매체에 대한 압수(③ 방식)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형사소송법 제106조 제3항 단서). 그러나 피압수자의 참여권을 보장하는 등 절차의 제약이 많아 압수수색이 위법으로 인정될 위험도 크다.

수사기관이 피의자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증거물을 갖고 나오는 모습. 사진= 연합뉴스
수사기관이 피의자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증거물을 갖고 나오는 모습. 사진= 연합뉴스

적법한 압수수색을 보장하려면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압수수색 절차가 까다로워졌지만, 적법한 압수수색을 보장하는 것 또한 아이러니하게도 기술이다. 범행의 현장 또는 압수수색의 현장에서 고성능, 대용량 장비를 동원해 모든 매체(범죄자의 PC, 휴대폰, 하드디스크, USB메로리, 클라우드 등)를 이미징하고, 범죄자의 ID에 걸린 암호와 인증을 신속히 무력화하여 모든 계정과 관련 자료를 다운로드하여 이미징할 수 있다면, 영장에 기재된 대로 적법하게 압수수색을 마무리할 수 있다. 파일 내용을 키워드로 검색하고 선별하는데도 첨단 검색 기술의 도움이 필요하고, 현장에서 지체되는 경우 적어도 ② 방식으로 가능하다.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수사가 미흡했던 것은 수사기관의 의지박약이나 역량부족이 아니라 우선순위에 밀린 것이라는 평가가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한 일시적인 관심이 아니라 지속적인 의지와 역량강화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사이버 수사 능력은 세계적 수준이지만, 이에 날개를 달아 줄 첨단 기술의 도입을 위한 예산 확대도 필요하다.

애플과 구글은 모바일 OS를 판올림할 때마다 ID, 인증, 암호와 관련된 부분을 중점적으로 업데이트하는데, 수사기관은 이때마다 이를 무력화하는 장비(소프트웨어 포함)를 새롭게 도입해야 한다. 거액의 예산이 들어가는 일이지만 꼭 필요한 사업이고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나아가 지금까지의 압수수색 수사 관행, 영장 발부 관행을 바꾸기 위해서는 디지털 성범죄를 바라보는 관점의 혁명적 전환이 필요하다. 피해자의 잊혀질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불법촬영물 등 파일의 유포를 막고 끝까지 추적해서 삭제해야 한다. 그 첫걸음은 즉각적인 디지털 증거 압수수색을 통해 범행관련 파일 일체를 발견·확보하는 것이다.

수사기관과 법원은 범죄자의 엄벌이라는 관점에서 벗어나, 아무런 잘못이 없는 범죄 피해자가 빠르게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사명을 가져야 한다. 이를 위해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해야하는 수사기관의 수사 능력과 의지를 다시 한번 강조할 수밖에 없다.

● 김정민 변호사는 서울대에서 컴퓨터공학, 법학(부전공)을 공부했다. 4회 변호사시험에 합격했으며 IT기업 준법팀장을 거쳐 법무법인 로베이스 파트너변호사로 있다. 대한변호사협회 IT블록체인특위 대외협력기획 부위원장, 서울지방변호사회 기획위원회 위원, 한국블록체인법학회 정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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