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 n번방 수사 협조 가능성 거의 없어
최근 '테러 관련 정보제공' 이용약관 변경...일말의 가능성
[김정민 변호사] N번방, 조주빈과 함께 텔레그램 메신저가 이슈가 됐다. 특히 한국 수사기관의 수사협조 요청에 텔레그램이 응할지가 초미의 관심사이다. 일부 누리꾼들은 텔레그램 단체 탈퇴운동, 텔레그램 대표자에 이메일 폭탄 보내기 운동을 통해 압박을 가하고 있지만,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경찰은 국제 공조를 통해 텔레그램 접촉을 타진하고 있으나 비협조적인 태도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경찰은 방송통신위원회, 해외 수사기관과의 공조를 통해 텔레그램의 수사 협조를 이끌어내겠다는 방침이지만, 텔레그램은 해외 수사기관의 요청에도 전혀 반응한 적이 없는게 현실이다. 실제우리 경찰은 FBI, CIA 등과의 공조를 통해 텔레그램 접촉을 시도한 것으로 보이는데, 아직까지 텔레그램의 본사와 서버 위치조차 파악하지 못했다고 한다.
텔레그램의 수사협조 가능성은 거의 없다
텔레그램이 한국 수사기관의 수사협조 요청에 응할 가능성은 있는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텔레그램이 수사협조를 할 가능성은 1% 미만이다.
2013년 처음 등장한 텔레그램은 현재 약 2억 명의 사용자가 이용하고 있는데, 종단간 암호화 기술을 내세워 보안을 최우선시하는 사용자들의 사랑으로 성장해 왔으나, 수사기관이나 정부에게는 골칫거리였다. 얼마전까지 다크웹(특수한 웹브라우저를 사용해야만 접근할 수 있는 웹을 말하고, 익명성 보장, IP추적이 불가능하도록 만들었다)에서 이루어지던 사이버 범죄(악성코드, 해킹툴, 총기, 마약 거래 등)들이 텔레그램으로 대거 이동하는 바람에 텔레그램내 범죄 수사가 필수가 되었다.
텔레그램은 프라이버시의 보호와 검열금지를 모토로 설립됐다. 텔레그램을 창립한 러시아인 파벨 듀로프(Pavel Durov)형제는 러시아정부가 반정부 인사의 신상정보와 텔레그램 대화 내용을 볼 수 있는 방법을 요청하자 이를 거절, 러시아에서 쫓겨나 여러 나라로 망명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이런 설립목적에 따라 텔레그램은 한번도 정부기관에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고 알려진다. 2014년 설립된 IS는 텔레그램을 이용하여 테러 모의를 했고 당시 영국 정부가 테러를 막기 위해 텔레그램에 관련자들의 신상정보를 요구했지만 텔레그램은 사생활 보호가 더 중요하다는 이유로 거부한 바 있다. 텔레그램은 IS 관련 채널 및 대화방을 삭제했지만, 테러범들의 ID나 개인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
미국 정부도 2017년 FBI와 정보기관을 통해 텔레그램 서버에 백도어를 설치해 달라고 듀로프와 팀원을 회유·압박했지만 거부당했다. 인도는 2018년 텔레그램이 아동포르노, 테러를 조장하는데 사용된다며 수사협조를 요청했는데 협조를 받지 못하자 텔레그램 웹사이트 접속 차단을 추진했다.
2019년에는 홍콩 반정부 시위에 텔레그램이 활용되면서 이때 텔레그램이 수차례의 해킹 공격을 받았다. 듀로프는 “공격 대부분이 중국 본토에서 왔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와 같이 텔레그램의 운영철학과 그간의 사례를 보면, 우리 수사기관이 텔레그램의 협조를 얻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텔레그램의 이용약관 변경, 일말의 협조 가능성
텔레그램이 수사협조에 응할 일말의 가능성은 이용약관에서 찾을 수 있다. 최근 텔레그램 이용약관 8.3에 “테러 의심자로 확인된 법원의 명령을 받는 경우, 텔레그램은 IP주소와 전화번호를 제공할 수 있다”는 내용이 추가되었다. 듀로프는 약관개정에 관해 유럽연합의 새로운 개인정보보호 규정을 준수하기 위해 이번 프라이버시 설정(이용약관) 변경이 불가피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If Telegram receives a court order that confirms you're a terror suspect, we may disclose your IP address and phone number to the relevant authorities. So far, this has never happened. When it does, we will include it in a semiannual transparency report published at: https://t.me/transparency.
약관 변경에 따라 테러와 관련해 법원 명령이 있는 경우 신상정보를 공개할 길을 열어놓았으나 아직 아동, 성착취와 관련된 규정은 없다. 선별적인 신상 공개 가능성은 있지만, 텔레그램 운영진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정부기관 및 권력기관에 텔레그램 백도어를 제공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따라서 텔레그램이 만약 아동, 성착취 영상물 범죄의 심각성을 인정해서 우리 수사기관에 협조를 하더라도 이는 비밀리에 이루어질 가능성이 더 크다. 우리 수사기관도 은밀한 루트를 통해 접근하는 방식을 취할 필요가 있다. 텔레그램은 그들의 최대 장점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범죄자를 잡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그렇다면 범죄자를 수사하고 공범들을 검거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인가?
텔레그램 등 글로벌 플랫폼 기업의 협조 없는 사이버 공간의 범죄 수사는 쉽지않은 것이 사실이다. 특히 디지털 성범죄 촬영물의 99%가 외국 서버 및 플랫폼에서 유통되는데, 국내 인터넷 사업자는 불법 정보를 유통하지 않을 의무가 있지만(정보통신망법 제44조), 해외 사업자는 이 규정을 적용받지 않는다.
그럼에도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은 성범죄 신고 전담 창구를 갖추고 있고 국내 지사를 통해 정부기관이나 수사기관에 협조해왔다. 텔레그램은 국내 지사가 없어 접촉점을 찾기 힘들고, 접촉할 수 있더라도 운영철학이 확고해 협조를 강제할 수 없다. 그렇지만 간접적이고 다양한 수사방법을 사용할 수는 있다.
경찰은 N번방 멤버의 제보와 가상화폐 추적, CCTV 분석 등 6개월 간의 특수수사 끝에 조주빈을 검거했다고 알려졌다. 다른 나라에서도 텔레그램 뒤에 숨은 범인을 이런 방식으로 검거한다.
2017년 인도에서는 사회운동가가 비밀대화방에 3년간 잠입하여 자료를 모은 끝에 소아성애 텔레그램 방 운영자를 검거할 수 있었고, 2019년 싱가포르에서는 비밀대화방 운영진의 부주의로 꼬리가 잡혀서 여성 불법촬영물 텔레그램 방을 검거할 수 있었다. 검거 후 신상이 공개되었는데, 주범과 운영진의 나이는 17~37세였다.
대부분의 범죄는 돈이 목적이다. 범죄 관련 자금의 흐름을 잡으면 범죄자와 가담자를 확인할 수 있다. 이번 사건의 경우 암호화폐 거래소에 대한 압수수색은 꼭 필요한 것이다. 암호화폐거래소에서 회원정보와 거래내역을 확인하면 N번방의 유료회원을 추적할 수 있다.
나아가 수사기관은 은행 계좌추적에 대응되는 암호화폐 계좌추적(지갑 트랜젝션 추적) 기술을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 불법 자금흐름 추적에 첨단기술을 신속하고 과감하게 도입할 필요가 있다.
반면 텔레그램은 애초에 수익을 내는 회사가 아니다. 듀로프 형제는 대단한 재력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정보 제공을 하느니 차라리 차단을 당하는 선택을 해왔고, 그래서 실제로 중국과 러시아에서 차단되어 있다. 차단조차 두려워 하지 않는데, 누리꾼들의 텔레그램 단체 탈퇴운동이나 폭탄 메일이 효과가 있을 지는 의문이다.
사회적 합의 이루면서 수사기법도 고도화돼야
전 세계적으로 테러의 공포가 남아 있는 가운데, 아동, 성착취 영상물 범죄의 심각성도 커져가고 있어서 텔레그램을 둔 공방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사생활 보호, 정치적 자유를 위해 비밀보장은 양보할 수 없다는 주장과 테러 용의자, 심각한 사이버 범죄에 대한 수사를 위해서 수사 기관 전용 백도어, 사용자 정보 제공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설 것이다.
이는 해묵은 논쟁이고,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야 할 이익형량의 문제이다.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와 정의에 대한 진지한 고민 이후에 조화로운 기준을 찾아야 한다. 간접적이고 다양한 수사기법의 개발을 통해 사생활 침해가 덜한 수단이 늘어난다면, 조화로운 기준을 찾고 사회적 합의에 이르는 과정이 보다 부드러워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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