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헌 압박에도 은행은 신중…키코 사태 ‘동상이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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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헌 압박에도 은행은 신중…키코 사태 ‘동상이몽’
  • 김솔이 기자
  • 승인 2019.12.24 17: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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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헌 “금융소비자 망하게 한 일…조정안 수용해야”
배상액 수천억원 규모 예상…은행, 배임 가능성 우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
윤석헌 금융감독원장.

[오피니언뉴스=김솔이 기자] 외환파생상품 키코(KIKO) 사태의 분쟁조정안에 대해 금융감독원과 시중은행의 온도 차가 감지된다. 금감원은 금융소비자 보호 차원에서 은행에 배상안 수용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은행들은 배임 문제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고 주장한다.

24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이르면 내년 1월 중 키코 사태의 첫 분쟁조정 배상이 이뤄질 전망이다.

앞서 금감원은 지난 13일 키코 분쟁조정위원회 조정안을 발표, 6개 은행들에 20일 통보한 바 있다.

키코는 환율 변동 범위에 따라 수익을 내는 파생상품이다. 환율이 일정 범위에서 움직이면 약정한 환율에 외화를 팔 수 있지만 환율 변동 범위가 일정 범위를 벗어나면 손실을 보는 구조를 갖고 있다.

수출 중소기업들이 환위험 헤지 목적으로 가입했다가 2008년 금융위기 당시 급격한 환율 변동으로 30억원에서 최대 800억원 상당의 손실을 봤다. 11년 만에 나온 조정안에는 키코 상품을 판매한 은행들이 4개 기업 손실액의 15%~41%를 배상하라는 내용이 담겼다.

◆ 은행 조정안 수용 여부 관건

다만 배상이 이뤄지려면 은행이 먼저 조정안을 수용해야 한다. 분쟁조정위원회의 배상 결정은 강제성이 없다. 즉 은행과 기업이 모두 조정안을 받아들여야 효력이 발생한다.

윤 원장은 은행들에게 조정안을 수용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지난 23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은행을 찾아와 도움을 청한 소비자를 은행이 망하게 한 것”이라며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은행의 배상과 관련 “소비자와의 신뢰 관계를 회복하고 금융업의 발전을 위한 일”이라며 “대승적으로 (조정안을 수용)해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은행이 조정안을 받아들일 경우 배임에 해당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경영상 의사결정은 배임이라고 할 수없다”고 반박했다. 이어 “은행의 평판을 높이는 데에 도움이 된다”며 “금융업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 분쟁조정 필요성 의문 제기에도 재조사 계속

윤 원장이 은행에 배상 책임을 강조하는 건 취임 전부터 강한 의지를 갖고 추진해 온 일이기 때문이다. 금융행정혁신위원장 재직 시절인 2017년 금융위원회에 키코 사태 재조사를 권고한 바 있다. 이어 지난해 5월 금감원장 취임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키코 사태와 관련 “과거에 발생한 소비자 피해 사안을 최대한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조정하겠다”며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어 임기 시작과 동시에 재조사를 지시했다.

당초 올 상반기 중 조정안을 도출하려 했으나 은행과 기업 간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해 분쟁조정위원회 상정이 이달까지 미뤄졌다. 금융당국 간 의견 차도 감지됐다. 최종구 전 금융위원장은 지난 6월 키코 사태가 분쟁조정안으로 상정되는 데에 “분쟁조정 대상인지 의문이 든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두 달 뒤 은성수 금융위원장 또한 인사청문회에서 “일부 대법원 판결을 통해 결론 난 부분을 재조사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금감원은 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피해기업 중심으로 분쟁조정을 진행하겠다는 방침 아래 재조사를 이어나갔다. 은행이 손실 기업들에 상품의 위험성을 제대로 알리지 않은 불완전판매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은행에 배상 책임을 묻기로 했다. 윤 원장 역시 “곧 결론을 낼 것”이라며 분쟁조정에 의지를 꾸준히 드러내왔다.

◆ 은행, 금감원 압박에 부담…"배임 혐의 우려"

은행들은 윤 원장의 요구에 부담감을 느끼고 있다. 그럼에도 배임 혐의가 생길 수 있어 섣불리 조정안을 수용하겠다고 나설 수 없는 상황이다.

민법상 손해액 청구권 소멸시효는 10년으로 키코 사태는 이미 이 기간을 지났다. 또 2013년 대법원이 키코 상품에 사기성과 계약의 불공정성이 없다고 판단, 일부 불완전판매 판매 사안에 대해서만 23개 기업에 은행들이 5%~50%를 배상하도록 했다.

같은 사안에 대해 다른 보상 절차를 거칠 수는 없다는 게 은행 측의 설명이다. 특히 은행이 금감원 조정안을 받아들일 경우 주주 이익을 해치는 배임에 해당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이사회부터 조정안 수용 안건을 통과시키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추가 분쟁조정의 배상 규모가 막대한 점도 은행들을 주저하게 만드는 요소다. 이번 분쟁조정 대상 4개 기업 외에 분쟁조정을 대기하는 기업이 약 150개 정도다.

금감원 조정안에 따르면 이에 대한 은행의 배상액은 수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키코 손실 기업들에 배상을 할 경우 다른 금융상품으로 손실을 본 소비자들도 분쟁조정을 제기하면서 파장이 적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금감원이 배상을 권고한 은행들이 모두 조정안을 수용하는 쪽으로 합의할 가능성도 크지 않다. 일부 은행만 배상할 경우 배상을 받지 못한 기업들이 또 다른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배임 혐의 가능성을 고려하면 금감원 조정안 수용 여부를 결정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라며 “특히 외국계 은행의 경우 배임 행위에 굉장히 민감해 조정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다른 은행들도 배상에 나서기는 힘들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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