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수의 '협동조합 성공의 길'] 민의의 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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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수의 '협동조합 성공의 길'] 민의의 반영
  • 김진수 농협대 협동조합 경영과 교수
  • 승인 2019.12.06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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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민주정 꼭 바람직하지 않지만, 직접 의사 표시하면 덜 왜곡될 것
협동조합, 조합운영에 조합원 뜻 왜곡없이 전달할 장치 필요
대규모 협동조합, 디지털 미디어 도움받거나 성별 연령별 대의원 구성할만
김진수 농협대 교수
김진수 농협대 교수

[김진수 농협대 교수] 얼마전 홍콩 구의원 선거에서 범민주파가 대거 당선되었다. 홍콩 시민의 민의가 반영된 선거결과다.  그런데 구의원 선거에서 범민주파가 압도적으로 승리했지만 홍콩의 독특한 선거제도로 입법기관인 입법회의 의원구성은 범민주파가 다수가 되기 어렵다.

입법회의 총 70명중 홍콩시민이 직접 뽑는 의원은 35명이다. 30명의 의원은 친중파 기업인 등으로 구성된 직능조합에서 대표를 선출하고, 나머지 5명은 구의원들이 선출한다. 구의원과 입법회의 직선의원 100%를 범민주파가 차지하지 않으면 친중파의 독주를 제어할 수 없는 구조다. 우리 나라의 행정부 수장격인 행정장관은 선거위원회가 간접 선거를 통해 선출하고 중국 국무원 총리가 임명한다. 홍콩시민이 전면적인 직선제를 요구하지만 중국 공산당은 전혀 응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조만간 홍콩에서 선거제도 개혁이 최대 이슈가 될 것이다. 홍콩시민들 일부는 유튜브 등의 게시글을 통해 한국의 영화 1987(홍콩 개봉시 명칭은 1987: 권력에 저항하는 공민)을 보았다면서 영화에서 본 1987년 서울과 홍콩의 오늘이 유사하다면서 한국이 갔던 길을 홍콩도 걸을 수 있다는 희망을 표시하고 있다.

민주정치를 실현함에 있어 선거제도는 게임의 규칙으로서 직선제냐 간선제냐 선택의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1987년을 거치면서 행정책임자인 대통령을 직선하는 규칙을 선택했다. 그리고 30여년이 흘렀다. 현재 대한민국은 간접민주정을 채택하고 있다. 최근 한국시민의 정치적 욕구는 행정책임자 직선, 간선 보다 더 근본적인 대의제도의 한계를 극복하고 시민의 직접적인 국정 참여를 모색하는 단계에 도달했다.

소크라테스를 말하다.
소크라테스가 말하다. (루이 르브룅 作, 1876년)

직접 민주정 '아테네' VS 간접민주정 '게르만 부족장선출'

고대의 직접민주정은 지중해 해상 무역을 하는 소규모 도시인 아테네에서 수 백년간 작동하다 멈췄다. 20세기에도 주민발안과 주민투표를 적극 활용하는 스위스, 캘리포니아를 제외하고는 직접민주정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대만, 우루과이 등 미국과 유럽이 아닌 지역의 지방차원에서 주민 발안제를 채택하여 직접민주정이 일부 확대되고 있다.

간접 민주정인 근대 대의제도의 기원은 중세 유럽이다. 고대 아테네 몰락 이후 유럽에서 직접민주정은 전무했다. 로마제국 붕괴 이후 봉건영주, 왕, 교회 등 다원적 정치구조를 바탕으로 공동체 대표를 통한 정치활동 참여가 활발해졌다. 대의기관으로는 신성로마제국의 제국선거인단, 교황을 정점으로 하는 교회정부의 공의회(일반회의)가 대표적이다.

중세식 대의기관제도의 뿌리는 고대 게르만 전사공동체의 부족장 선출전통에 있다. 죽음에 늘 노출되어 있는 게르만 전사들은 부족장의 지위를 세습하는 것보다 전투능력이 뛰어난 귀족가문출신을 부족장으로 뽑는 전통이 있었다. 삶에 대한 집착을 줄이기 위해 게르만 전사들은 오딘(어벤저스에 나오는 토르의 아버지 그 오딘이다)을 숭배하며 토지와 같은 개인재산을 가지지 않았다. 부족장 선출전통에 따라 신성로마제국황제도 게르만 전사들의 후예인 영주, 귀족들로 구성된 제국선거인단 또는 자문집단 같은 대의기관들에 의해 선출되었다.

한편 중세 유럽의 자유도시에서도 영주가 허용한 한도내에서 시민이 시행정관을 뽑고 시참사회를 구성했다. 게르만 전사공동체가 주도하는 전통을 가진 중세기간중에 시민이 직접 정치를 하는 아테네식 사고는 자리잡을 수가 없었다고 할 것이다.

게르만 부족의 크기가 아테네 보다 특별히 큰 것도 아닌데 게르만에서는 직접 민주정이 자리잡을 수 없고, 아테네에는 어떤 특징이 있었기에 직접 민주정이 수 백년간 번성할 수 있었을까.

아테네, 상업 발달→토론 문화→직접 민주정 

먼저 아테네의 지리적 특성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아테네는 일찍이 척박하고 부족한 농지로 자급자족이 불가능해 일찍부터 지중해 해상무역을 하였다. 상업의 특징이 힘으로는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억지로 사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상품의 가치를 말로 설득해야 한다. 말로써 생업을 이어가는 아테네 시민은 정치에 있어서도 토론을 통해 상대방을 설득하고 다수의 동의를 이끌어내야했다. 힘으로 억압하려면 토론이 필요없다.

고대 아테네부터 지금까지 시장을 보는 것이 그리스 남자들의 역할이다. 신성한 공간인 아크로폴리스를 남쪽으로 바라보는 곳에 위치한 고대 아테네 아고라에는  장을 보러 나왔다가 장을 본 물건을 노예 손에 들려 집으로 보낸 후 아고라에 모여 토론을 즐기는 아테네 남자들로 붐볐다고 한다.

해상무역을 하는 아테네의 아고라에는 아테네 내부 정보 뿐 아니라 인근지역의 국제정세까지 교류되었다. 정보를 가지면 정치적 힘도 생기는 법. 아고라에 모인 이들은 정보를 바탕으로 하나씩 하나씩 본인들이 직접 참여하는 정치적 권리를 획득하는 과정을 거친다.

시민(市民)은 그리스어 politis, 영어 citizen의 번역어인데 시장이란 뜻의 시(市)를 선택한 혜안에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다.

게르만, 힘센 전사에게 정치 맡겨

반면 목축을 주로 하고 약탈에 의존해 성장한 게르만 공동체는 다른 길을 가게 된다. 게르만 전사간에는 힘과 전투경험의 차이가 존재했기에 경험 많고 힘이 뛰어난 자에게 정치를 맡기는 게 자연스럽다.

시민이 직접 국정에 참여하는 것이 무조건적으로 절대적으로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특정한 조건이 갖추어져 있다면 시민의 의사를 직접 표시하는 체제가 민의를 반영하는 체제보다 왜곡이 적을 것은 분명하다. 반영(反映)이라는 말이 빛을 반사하는 것이니 왜곡은 불가피하다.

협동조합, 간선제 유지하되 성별 연령별 선거인단 구성할 필요

협동조합도 조합원의 뜻을 왜곡없이 조합운영에 전달하기 위한 장치마련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특히 조합원 수가 몇 천명을 넘어서는 대규모 협동조합은 디지털 미디어의 도움을 받는 것을 적극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아고라라는 물리적 공간을 가상공간에 옮기고 그곳에 분기별로 각종 조합운영 정보를 공개하고 시장정보를 수시로 공유하는 것이 첫걸음일 것이다. 대의원을 운영하는 대규모 협동조합의 경우에는 왜곡은 불가피하지만 대의원 구성을 성별, 연령별 비례에 맞게 구성할 필요가 있다.

협동조합의 협동조합인 협동조합연합회 선거에서 현행 협동조합기본법과 각 협동조합법은 선거권을 이사장이나 조합장에게 당연히 부여하고 있다. 조직의 대표에 투표권을 부여하는 것은 유지하고 추가적으로 성별 연령별 비례를 맞추기 위해서 별도의 선거인단을 두는 것도 왜곡의 최소화라는 관점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 김진수 농협대 교수는 서울대 법대 사법학과를 졸업하고 농협중앙회 기조실, 농업경제기획부에 근무했으며 2012년부터 농협대학교 협동조합 경영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결사의 자유의 관점에서 본 협동조합'등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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