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서 선진 금융 하겠나"...사모펀드 규제 강화에 비판 목소리 들끓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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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서 선진 금융 하겠나"...사모펀드 규제 강화에 비판 목소리 들끓어
  • 김솔이 기자
  • 승인 2019.11.19 16: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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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에서 고위험 사모펀드 판매 제한
투자조건 강화…사모펀드 시장 위축 우려
“자본시장 활성화 역행하는 정책”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오피니언뉴스=김솔이 기자] "앞으로 금융당국이 IB(투자은행), 금융업 육성 같은 얘긴 안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최근 금융위원회가 DLF(파생결합펀드)대규모 손실 사태에 대한 예방책으로 내놓은 '규제 강화 방안'을 놓고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처럼 금융권에선 이번 금융위 방안은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빗나간 대책으로 파생결합증권(ELS‧DLS)시장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는 금융당국의 (은행에서의) 금융상품 판매 금지를 포함한 지나친 규제 강화가 선진자본시장의 수십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국내 자본시장 규모를 한층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금융위는 지난 15일 파생결합펀드(DLF) 대규모 손실 사태와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유통 경로인 은행에 대한 ‘고위험 금융상품 투자자보호 강화를 위한 종합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이 방안은 원금 보장이 안되는 ‘고난도 금융상품’ 중 사모펀드‧신탁의 은행 판매를 제한하는 것이 주요 골자다. 고난도 금융상품은 투자자가 이해하기 어렵고 원금 손실 가능성이 최대 20%~30% 이상인 상품이다. 금융위의 결정에 따라 앞으로 위험도가 높은 사모펀드 뿐만 아니라 주가연계펀드(ETF), 주가연계증권신탁(ELT) 등 역시 은행에서  판매 길은 막혔다.

금융당국은 “은행이 투자자 보호 장치를 갖춘 공모펀드 중심 판매 경로로 전환된다”며 “은행 고객의 고난도 사모펀드 등에 대한 접근성은 사모투자재간접펀드로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모투자재간접펀드는 사모펀드에 50% 이상 투자하는 공모펀드다.

가장 먼저 원금 비보장형 파생결합증권 대부분이 고난도 금융상품에 해당한다. 지난 6월 말 전체 파생결합증권 시장 규모(잔액 기준)는 116조5000억원이다. 이중 원금 손실 가능성이 20%를 초과하는 파생결합증권 시장 규모는 74조4000억원(64.8%)이다.

◆ 저금리에 주목받던 파생상품…판매 중단해야

은행권에서는 최대 74조원 수준 규모인 시장을 포기해야 하는 셈이다. 규모가 작지 않은 만큼 파생결합증권 시장 위축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은행에서는 파생결합증권을 담아 펀드 형태로 판매한다.

문제가 제기된 펀드는 극히 일부에 불과한데 고난도 금융상품 사모펀드‧신탁 판매가 모두 금지됐다는 지적이다. 대규모 손실 사태를 불러일으킨 해외금리 연계 DLF는 주로 우리은행‧KEB하나은행에서 판매됐다. 다른 은행들은 내부 검토 과정에서 이 펀드를 판매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국민은행은 오히려 수익 구조가 반대인 리버스 상품을 팔아 가입자들이 수익을 냈다.

특히 최근 저금리 기조로 예금보다 높은 금리 파생결합펀드‧신탁의 은행 판매가 확대되고 있었다. 전체 파생결합증권 시장 규모 가운데 46조6000억원(40%)은 은행에서 판매되는 파생결합펀드(ELF·DLF)와 신탁(ELT·DLT)에 편입돼 있다. 은행권 총 판매잔액은 49조8000억원, 법인·개인을 포함한 투자자수는 86만명에 이른다.

더불어 고난도 금융상품 범위가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현재 파생상품이 내재되지 않은 주식이나 채권, 장내파생상품은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 다만 금융당국은 상품 구조가 복잡한 상품은 고난도 금융상품에 포함해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에 반영하겠다는 조건을 달았다.

◆ '불보듯 뻔한' 사모펀드 시장 위축

금융당국은 이외에도 사모펀드에 투자할 수 있는 개인투자자의 최소 금액을 1억원에서 3억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고령 투자자 기준은 기존 70세에서 65세로 낮아진다. 고령 투자자 등 취약 투자자에게는 모든 금융상품 판매과정에 녹취‧숙려제도가 의무화된다.

이들 투자자가 숙려 기간 중 투자 의사 표시를 하지 않으면 계약은 자동 취소된다. 사모펀드 투자금액이 1억원~3억원에 해당하는 투자자들이 적지 않은 점과 자산 규모가 큰 고령 투자자들의 사모펀드 진입 장벽이 높아진 점을 고려하면 은행이 판매하는 사모펀드‧신탁 규모가 급감할 수 있다.

고위험 금융상품을 무분별하게 판매하는 금융사에 대한 제재도 강화된다. 금융당국은 금융소비자보호법을 제정, 불완전판매를 한 금융사는 해당 판매 수입의 최대 50%까지를 징벌적 과징금을 내도록 할 방침이다. 내부 통제 절차를 거치지 않고 판매한 금융상품에서 소비자 피해가 생길 경우 금융사 최고경영자(CEO) 등 임원의 해임을 요구할 수 있다.

또 자산운용사에 펀드 제조를 구체적으로 명령·지시하는 ‘주문자 제작(OEM) 펀드’ 제재도 가능해진다. 당국은 현행 OEM 펀드 적용 기준을 확대하는 한편 제재 대상도 자산운용사에서 판매사인 은행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 자본시장 활성화 기조에서 뒤처지는 정책

이번 개선방안은 정부가 꾸준히 추진해온 모험자본 공급을 위한 자본시장 활성화 기조와도 어긋난다는 평가다. 정부는 그간 금융투자업계에 혁신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중소‧벤처기업으로의 모험자본의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특히 갈길을 잃은 1000조원 규모 부동자금을 부동산이 아닌 자본시장으로 끌어올 수 있도록 각종 규제를 완화하기도 했다. 이와 달리 ‘DLF 사태 대책’은 고강도 규제로 사모펀드‧신탁으로의 자금 유입을 막고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DLF 외에도 판매가 제한된 금융상품 범위가 넓고 그동안 위험 관리를 잘 하면서 사모펀드‧신탁 판매를 해온 은행들까지 상품 판매가 불가능해졌다”면서 “당장 금융사들의 수익이 줄어드는 데서 그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관련 시장 규모가 작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1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전체회의에서 제안설명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1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전체회의에서 제안설명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간 자본시장 활성화를 위한 규제 완화에 방점을 찍었던 정계에서도 이번 개선방안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가 높다.

최운열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9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일부 은행은 지난해 11월 (해외금리 연계 DLF) 판매를 중단했고 다른 은행은 다른 구조의 해외금리 연계 상품으로 고객에게 이익을 남겼다”며 “이번 대책으로 일괄적으로 판매를 금지하면 잘 하던 은행 기회를 박탈당한다”고 강조했다.

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 또한 이날 오전 회의에서 “금융당국의 자본시장 규제 정책은 자본시장을 위축시키는 ‘거꾸로 가는 정책”이라며 “잘못된 기획상품 판매를 잡기 위해 시장 전체를 쪼그라들게 만들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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