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의 책이야기] 세상과 예술을 비껴보는 태도…태도가 글이 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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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의 책이야기] 세상과 예술을 비껴보는 태도…태도가 글이 된다면
  • 강대호 북칼럼니스트
  • 승인 2019.05.25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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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가 박보나의 예술 에세이 『태도가 작품이 될 때』 리뷰
익숙하고 편안한 것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질문 던지는 예술가 태도에 대하여
박보나 예술 에세이 『태도가 작품이 될 때』 .바다출판사 펴냄.
박보나 예술 에세이 『태도가 작품이 될 때』 .바다출판사 펴냄.

 

[오피니언뉴스=강대호 북칼럼니스트] 대학교수로 있는 친구가 어떤 글을 단체 채팅방에 올린 적이 있다. 나랑 이름이 같은 사람이 썼다면서, 나와는 달리 생각이 곧다면서. 그렇지만 그 글을 쓴 사람이 바로 나였다고 하니 그 친구가 머쓱해 한 적이 있다. 칼럼을 여러 곳에 실어서 그런지 내 글을 읽었다는 인사를 심심치 않게 듣는다. 주로 잘 읽었다는 덕담이 대부분이지만 그렇지 않은 때도 있다.

그런 경우 내가 직접 듣기보다는 다른 사람 입을 통해서 듣게 된다. 그렇게 전해오는 그들의 메시지는 균형을 지키라는 거다. 그들 평소의 말이나 글은 어떻게 균형을 지키고 있는지 찾아보았다. 이런 균형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내 관점에서 봤을 때 균형감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내게 균형을 요구하곤 했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내 지난 글들을 찬찬히 읽으며 분석을 했다. 내 글을 불편해하는 사람들의 눈으로도 읽어 보았다. 내 글에 공통으로 흐르는 어떤태도가 보였다. 다르게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이렇게태도라고 표현한 것은 최근에 읽은 어떤 책 때문이다. 박보나가 쓴 『태도가 작품이 될 때』가 그 책이다.

 

세상과 예술을 비껴보는 태도를 지닌 작가들

박보나는 미술가로 다양한 작품활동을 하면서 미술에 관한 글도 쓴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한겨레》에 연재했던 칼럼들을 엮은 것이다. 저자의 말에서 박보나는글을 쓰면서 작업을 하듯이 당시 한국 사회를 비껴서 바라보려고 노력했고, 비슷한 태도를 가진 동시대 미술 작가들의 작업을 통해 세상을 읽으려고 시도했다고 했다.

저자는 작가들이 작품들을 통해 세상을 향해 던진 메시지를 해석하고, 그 메시지들에 담긴 작가들의 태도를 글로 보여준다. 책을 읽다가 작가들이 작업으로 보여주고 저자가 글로 해석한 태도는 어쩌면 박보나가 한국에, 혹은 세상에 드러내고 싶은 자기의 태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시기를 보니 2016년 중반부터 일 년 반 가까이다. 당시 대한민국에서는 최순실 게이트가 터졌고,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드러났고, 촛불이 일어났고, 대통령을 탄핵했다. 그래서인지 글들에는 당시 상황에 대한 작가의 직접적인 의견이 담긴 것으로도 보인다.

이 책의 제목태도가 작품이 될 때 1969년 스위스 쿤스트할레 베른에서 열렸던 전시태도가 형식이 될 때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태도가 형식이 될 때) 전시는 보수적인 기존 질서를 뒤엎고 반전과 평등과 해방을 주장한 68혁명 직후에 열렸던 만큼, 새로운 것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했다. 이 전시에서 태도는 이전 체제와 규칙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의미하며, 이 태도는 미술의 관습적인 틀을 거부하는 새로운 작품의 형식과 전시의 형태로 구현되었다. (저자의 말에서)

 

박보나가 빌려온 전시회의 정신처럼 이 책에서 언급하는 작가들도 기존 사회질서와 미술을 다르게 읽는다. 저자는 열일곱 편의 글을 통해서 그런 열일곱 작가의 전시를 소개한다. 작가들은 아시아와 유럽 등 다양한 인종을 대표하며, 작품들은 세계화, 젠더, 성 소수자 등 다양한 소재와 주제를 다룬다.

박보나는 모든 글에서 그들 작가의 작업에 녹여진 작가들의 관점을 혹은 태도를 해석하고, 저자의 관점을 혹은 자기의 태도를 보태어 글로 풀어간다.

나는 현대 대한민국의 자화상을 그린 전시회들을 다룬 칼럼들이 인상적이었다. 설치미술가 장영혜와 마크 보주(Mark Voge)가 결성한 듀오 작가장영혜중공업의 전시회가 특히 그랬다. 그중 비디오 작품 '삼성의 뜻은 죽음을 말하는 것이다(2016)'을 보자.

 

삼성 병원에서 태어나 삼성 전자제품을 쓰고, 삼성 아파트에 살기 위해 평생을 일하고, 삼성 보험에 미래를 설계 당하고, 삼성 장례식장에서 죽는삼성 인생이야기다. (93)

 

그 비디오 작품을 보지 않아도 영상이 어떻게 흐를지 눈에 선하지 않은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삼성을 위해 돈을 벌고 삼성을 위해 돈을 쓰는 구조를 섬뜩하게 그렸다. 이렇듯 작가는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거대 자본의 손아귀에서 허우적대는 지금의 대한민국을 풍자한다.

 

장영혜중공업의  '삼성의 뜻은 죽음을 말하는 것이다' 전시 당시 아트선재센터 외벽.사진=연합뉴스
장영혜중공업의 '삼성의 뜻은 죽음을 말하는 것이다' 전시 당시 아트선재센터 외벽.사진=연합뉴스

 

그러나 박보나는 그런 비디오 작품을 두고현실과 너무 닮아서 실망스럽다고 역설적으로 이야기한다. “현실이 너무나 초현실적이라 오히려 예술의 상상력을 앞지른다면서.

 

삼성이 삼성전자 서비스 노조를 와해하기 위해 서비스 노동자의 시신을 경찰 공권력을 이용하여 탈취하는 장면과,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머리를 까맣게 물들인 정치인들에게 수백억 원의 뇌물을 공여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되었다는 뉴스가 삼성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온다. (중략) 현실이 이미 너무나 엉망진창으로 초현실적인 나머지, 예술의 상상력을 앞지르는 암울한 형국이다. (94)

이렇듯 박보나의 책에서는 두 가지 태도를 읽을 수 있다. 작가가 작품으로 표현하는 세상에 대한 태도와 그 작품을 읽는 박보나의 태도. 저자는 기존 사회질서와 미술을 새롭게 보는 작가들의 작업을 지지하는데 그치지 않고 글로서 작가들의 작품세계를 한층 더 탄탄하게 만들어 준다.

 

태도가 글이 되는 이유

책의 열일곱 편 글에서 언급한 전시들은 모두 다르다. 성 소수자를 다루거나, 세계화를 비판하거나, 페미니즘의 방향성을 고민하거나, 기존 권위를 비판한다. 아마도 열일곱 전시 중 같은 소재나 주제로 열린 것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박보나가 모든 글에서 일관성 있게 주장한 것이 있다.

바로 태도다. 세상을 보는 태도, 작업에 임하는 태도, 작품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태도다. 작가들은 명확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박보나는 믿는다.

그렇다면 태도는 무엇일까? 세상을 보는 눈, 관점을 말한다. 단순히 보는 것만이 아니라 그렇게 보게 도와주는 렌즈를 말한다. 그런 렌즈로 세상을 보면서 움직이게 하는 마음을 말한다. 그런 마음이 생기면 행동하게 만드는 어떤 힘을 말한다.

그런 것들이 모여서 작가답게 하는 태도가 되고. 그런 태도를 가지고 작업할 때에야 진정한 새로운 작품이 나온다. 그런 뒤에야 자기의 세계를 가진 작가가 되는 것이고.

그렇지만 저자는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자기만의 관점으로 세상과 글과 작품을 해석할 여지를 가졌으면한다. 박보나는 특정 태도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모든 작가에게는 그만의 태도, 세상을 보는 태도, 작품에 반영하게 만드는 태도가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태도가 작품이 되니까.

그런 박보나의 의견을 인용해서 나는태도가 글이 된다고 생각했다. 사람은 자라면서 세상을 배운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그렇게 배운 세상이 사람들 눈에 렌즈를 씌워준다.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지 도와주는 렌즈.

나는 때로는 책으로 세상을 본다. 내가 모르는 많은 것들을 책에서 배웠다. 그렇지만 유명한 사람이 썼다고, 그 분야의 전문가가 썼다고 그 책 전부를 신봉하지는 않는다. 다만 내게 깨달음을 주는 부분을 깊게 받아들인다.

그런 책들이 나에게 우리나라를 혹은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거나 다른 각도로 바라보게 했다. 나에게 어떤 태도가 생긴 것, 그런 태도가 나의 글로 나온다.

 

◆ '장영혜중공업'의 비디오 작품 '삼성의 뜻은 죽음을 말하는 것이다’

https://www.yhchang.com/SAMSUNG_MEANS_TO_DIE_K_V.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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