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수첩] 홍콩 ELS 손실, 투자자의 책임과 가입자의 무지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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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수첩] 홍콩 ELS 손실, 투자자의 책임과 가입자의 무지 사이에서
  • 박준호 기자
  • 승인 2024.03.14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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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호 기자

[오피니언뉴스=박준호 기자] 홍콩 주가지수의 등락에 따라 손익이 결정되는 투자 상품에서 1조2000억원의 손실이 발생했다.

15만명의 국내 투자자들은 은행에서만 1조원을 잃었고 4개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은 2조9066억원을 수수료로 챙겼다.

대다수의 투자자는 묵묵히 손해를 감내했지만 일부는 거리로 나섰다. 은행이 원금손실 가능성을 숨기고 상품에 가입시켰다는 이유다. 공통적인 주장은 ‘홍콩이 망하지 않는 이상 잃을 일 없다’는 말을 은행원으로부터 들었다는 것이다.

투자자들은 손실금 전액 배상과 피해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그간 금융감독원 앞에서 벌여온 시위는 내일부터 은행 본사로 옮겨간다.

금감원은 판매사와 투자자 합의로 사태가 마무리 되기를 원하고 있다. 판매사 잘못과 투자자 잘못을 적당히 섞은 배상 가이드라인도 내놨다. 100%는 아니더라도 일부 손실액은 돌려주라는 의미다.

여론은 사태 초기부터 투자자에 부정적이었다. 손실이 나든 이익이 나든 투자의 책임은 본인에게 있다는 것이다. 지난 십수년 간 이익 났을 때는 군말 없이 받아놓고 손실이 나니 배상을 요구하는 게 불합리하다는 반응이다.

기자도 투자자들이 떼법으로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고 봤다. 기사 좌표를 찍어 댓글창을 장악하는 행태를 비판했고 아무 것도 모른 채 투자한 책임을 온전히 짊어지라고 기사를 썼다.

은행원 말만 믿고 전재산을 털어넣은 무지를 비난하며 투자와 저축의 경계가 무너지는 것을 우려했다. 약자는 선이 아니라는 대전제 아래에서 피해자를 자처하는 투자자들이 무조건 배상 받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봤다.

당국은 대다수가 원금을 온전히 배상받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세훈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은 다수의 케이스가 배상 범위 20~60%에 분포할 것으로 예상했다.

투자자가 모인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분노가 아닌 체념과 한탄의 글이 빼곡했다. 아예 배상안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다수였다.

한 회원은 "제대로 설명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지금까지 은행에 끌려다녔는데 이번에도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고 적었다. 자신이 가입한 투자상품 설명서보다 훨씬 간단한 내용도 못 알아 들으면서 은행에 큰 돈을 건넨 것이다.

대규모 원금 손실에 이은 잇따른 피해 보상 시위, 그리고 당국의 보상안 발표. 이전에도 많이 봤던 풍경이다.

당국은 금융회사의 불완전 판매를 지적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판매 원칙을 지킬 것을 강력하게 주문한다. 하지만 금융사의 실적 지상주의와 가입자의 고수익 욕구가 맞물려 같은 사태가 또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기자만의 우려일까.

완전판매를 했건 불완전 판매를 했건 대규모 손실이 발생하면 불완전판매 이슈는 계속 부상한다.

투자 상품만 달라질 뿐 똑같이 반복되는 현실을 개선하는 길은 하나다. 투자 손실은 투자자의 책임이라는 대전제가 작동하는 것.

고수익에는 고위험이 따른다. 지난 1980년대 주식 투자가 처음으로 대중화하기 시작했을때 주식 투자 손실이 난 투자자들은 증권거래소 앞에서 투자 손실을 보상하라고 시위를 벌였다. 지금 홍콩 ELS에서 대규모 손실이 났다며 금융감독원 앞에서 데모를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떼법이 작용하는 멘탈리티라는 측면에서 대동소이하다. 

수조원의 투자 손실이 난 마당에 과실책임은 기본적으로 투자자에게 있다고 말하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다. 물론 80대가 넘는 고령층 등 투자의 개념도 부족하고 파생상품을 이해할 능력이 없는 이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상품이 판매된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고수익 고위험을 인지한 많은 투자자들도 떼법에 편승해 보상받음으로써 같은 사태가 반복될 거라는 걱정은 기우에 불과할까.

지난 1월 19일 서울 여의도의 금융감독원 앞에서 ELS 투자자들이 피해 보상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1월 19일 서울 여의도의 금융감독원 앞에서 ELS 투자자들이 피해 보상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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