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탐험, 서울 이야기](64) 대학로와 서울대병원, 그리고 의과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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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탐험, 서울 이야기](64) 대학로와 서울대병원, 그리고 의과대학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4.03.17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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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강대호 칼럼니스트] 대학로 하면 떠오르는 다양한 모습이 있습니다. 많은 연예인이 신인 시절에 꿈을 키우는 공간이었던 공연장들이 있고 많은 이의 발길을 끌어들이는 카페와 식당 등이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대학로는 문화의 거리로 불리기도 합니다.

1966년에 붙여진 대학로라는 도로명은 과거 이 거리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지금의 대학로 주변에 대학교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니까요. 장충공원 입구까지였던 대학로 구간이 현재의 혜화동로터리부터 종로5가 사거리까지로 정해진 건 1984년부터였습니다. 그리고 1985년에는 ‘문화예술의 거리’로 지정되기도 했습니다.

혜화동에 들어선 가톨릭 수도원과 근대식 학교

지금의 대학로 일대는 과거에 동촌이라 불렸습니다. 동소문인 혜화문이 이 지역의 관문이었습니다. 조선시대에 한양 도심에서 혜화문 부근으로 가려면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연남동 근처에서 창경궁을 거쳐 성균관을 지나 혜화문에 이르는 길과 동대문 근처 종로에서 흥덕동천을 따라 올라와 혜화문에 이르는 길입니다.

하지만 숲으로 우거져 있거나 하천을 여러 차례 건너야 하는 좁은 도로를 지나가야 했습니다. 그래서 한양도성 내 다른 지역과 비교해 주거지가 발달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런 대학로 일대에 학교가 들어서게 된 건 이미 주거지로 빽빽한 도심에 비해 토지 확보가 수월한 덕분이었습니다. 

그 시작은 가톨릭계에서 열었습니다. 1909년에 성 베네딕토 수도회가 ‘백동’으로 불린 지금의 혜화동로터리 인근에 ‘백동수도원’을 열었습니다. 혜화문 바로 옆 성곽 아래, 즉 낙산 자락이었습니다. 그리고 1910년에 서양식 기술을 교육하는 숭공학교를, 1911년에 2년제 사범학교인 숭신학교를 수도원 안에 설립했습니다. 숭공학교는 1923년까지 운영했고 숭신학교는 1913년까지 운영했습니다. 

1927년 성 베네딕토 수도회가 원산으로 이전한 후 수도원 터를 가톨릭 서울대교구에서 매입했습니다. 그 자리에 혜화동성당과 해방 후 동성중학교와 동성고등학교로 발전하는 동성상업학교가 들어섰습니다. 

이 학교에 예비 신학교인 소신학교(小神學校) 과정이 함께 있었습니다. 해방 후에는 용산에 있던 대신학교(大神學校)가 옮겨왔는데 이 신학교의 교명이 1947년에 성신대학으로, 1959년에 가톨릭대학으로 바뀌었습니다. 가톨릭 사제를 양성하는 혜화동의 가톨릭대학은 1994년에 성심여자대학교와 통합했고, 지금은 가톨릭대학교 성심교정으로 불립니다.

서울대학교병원 본관. 사진=강대호

학교촌이 된 대학로 일대

1912년부터 일제는 일종의 도시개발인 ‘경성시구개수사업’을 벌였습니다. 이때 혜화문 안쪽 도로가 확장되었고, 그 일대의 논밭이 택지화되었습니다. 그러며 동촌, 즉 지금의 대학로 일대에 학교가 들어서게 되면서 이른바 학교촌이 되었습니다. 

대학로를 지나다 보면 한 근대식 목조건물이 눈에 띕니다. 1906년 근대 기술 교육을 위해 설립된 공업전습소의 본관입니다. 공업전습소는 1916년에 경성공업전문학교로 승격되었습니다. 1908년에 준공된 이 건축물은 한국방송통신대학 구내에 자리하고 있는데 2024년 3월 현재 보수 공사 중입니다.

1920년에는 명륜동에 경성고등상업학교가 설립되었습니다. 문헌 등에 나온 주소로 확인해보면 혜화동로터리 바로 옆에 자리한 아파트단지가 그 부지로 짐작됩니다. 사립이었던 이 학교는 1922년에 관립이 되었고 1944년에는 경성경제전문학교로 승격되었습니다.

동숭동 한국방송통신대학 구내에 있는 공업전습소 건물. 1906년 근대 기술 교육을 위해 설립된 공업전습소의 본관으로 1908년에 준공한 근대 건축물이다. 2023년 공사 전 모습. 사진=강대호

경성제국대학도 대학로 일대에 들어섰습니다. 1924년에 예과가, 1926년에는 법학부와 의학부가 설치되었습니다. 그리고 동숭동과 연건동에는 9만2000 평 규모의 경성제대 건물들이 들어섰습니다. 

광복 후인 1946년에는 국립 서울대학교가 출범하게 됩니다. 이때 경성제국대학의 각 학부는 물론 경성경제전문학교, 경성치과전문학교, 경성법학전문학교, 경성의학전문학교, 경성광산전문학교, 경성사범학교, 경성공업전문학교, 경성여자사범학교, 수원농림전문학교 등의 전문학교들을 통합해 서울대학교가 되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경성공업전문학교도 이때 서울대 공대로, 경성경제전문학교 또한 서울대 상대로 통합되었습니다.

한편, 1975년 서울대 문리대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이 관악산 아래로 옮겨간 후에는 그 자리에 들어선 한국방송통신대학이 대학로의 명맥을 잇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울대학교 의과대학과 서울대학병원이 대학로에 자리했던 서울대학교의 전통을 잇고 있습니다. 

서울대학병원 구내에 있는 대한의원 건물. 대한제국 정부가 1907년에 개원한 대한의원은 서울대학교병원의 시초라 할 수 있다. 사적으로 지정된 이 근대 건축물은 현재 서울대학교병원 의학박물관이다. 사진=강대호

서울대학병원과 의과대학

연건동의 서울대학교병원 구내에 들어서면 본관 앞에 고풍스러운 건물이 한 채 보입니다. 서울대학교병원의 시초라 할 수 있는 대한의원 건물입니다. 건물 옆에는 ‘제중원 뜨락’이라는 표석이 서 있습니다. 

제중원(濟衆院)은 1885년 4월에 조선 정부가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병원입니다. 부지와 건물, 시설, 행정인력과 운영비 일체를 제공했고, 미국인 의사들을 고용해 환자 진료를 맡겼습니다. 당시 선교사들이 제중원을 ‘the government hospital’, 즉 정부병원이라 칭한 것을 두고 제중원을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국립병원으로 보기도 합니다.

제중원에서 서양식 의학교육도 시작됐습니다. 1899년에 의학교(醫學校)가 설립되었는데 이 학교는 훗날 서울대 의대로 발전합니다. 

서울대병원 구내에 있는 ‘제중원 뜨락’ 표석. 제중원은 1885년 4월에 조선 정부가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병원이다. 사진=강대호

한편, 병원 운영을 맡았던 선교사들이 1904년 서울역 앞에 세브란스병원을 설립하면서 제중원의 인력을 데려갑니다. 그래서 세브란스병원 역사를 보면 제중원에서 시작했다는 기록을 볼 수 있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서울대병원과 세브란스병원 모두 제중원이 자기네 뿌리라고 주장하고 있는 겁니다.

대한제국 정부는 1905년 제중원을 미국 북장로회 측으로부터 환수하고, 1907년 대한의원을 개원합니다. 이때 세운 대한의원 건물은 사적으로 지정되었고 지금은 서울대학교병원 의학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병원 구내에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도 함께 있습니다. 의대 역사를 살펴보면 두 학교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우선 제중원 시절에 설립한 의학교(醫學校)가 그 시작입니다. 의학교는 대한제국 정부에 의해 설립한 관립학교였습니다. 1910년에 대한의원은 조선총독부의원이 되었고, 의학교는 조선총독부의원 부속 의학강습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1916년에 의학강습소는 경성의학전문학교로 승격되었습니다. 

의학교육은 경성제국대학을 통해서도 진행되었습니다. 1926년에 경성제국대학 의학부가 설립되었고, 이때 조선총독부의원은 경성제대 의학부 부속 의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해방 후에 두 학교, 경성의학전문학교와 경성제대 의학부가 통합되어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이 발족했습니다. 경성제국대학 의학부 부속 의원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이 되었고요.

오늘날 서울대 의대뿐 아니라 한국의 모든 의대는 가장 성적 좋은 학생들이 가는 학교가 되었습니다. 의사는 많은 이에게 선망받는 직업이 되었고요. 하지만 요즘은 가장 욕을 많이 먹는 직업군이 된듯합니다. 덕분에 한동안 비난받던 이들과 그 논란들이 묻혀버린 감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다음 주에는 대학로 옆을 흐르던 하천, 지금은 복개된 대학천의 흔적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오는 다양한 장면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사진=강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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