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상집의 인사이트] 은행에 대한 불신만 키운 ELS 사태의 교훈
상태바
[권상집의 인사이트] 은행에 대한 불신만 키운 ELS 사태의 교훈
  • 권상집 한성대 기업경영트랙 교수
  • 승인 2024.02.05 09: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권상집 한성대 기업경영트랙 교수] ELS 사태의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ELS가 손실 나면 국내 은행이 망할 것이라고 말하며 은행 직원들은 적극적으로 고객을 유인해왔다. 은행 직원만 탓할 일도 아니다. 주요 은행들은 ELS 판매에 높은 가산점을 부여, 성과평가를 도입했다. ELS 금융상품 판매에서 엄청난 실적을 거둔 직원은 막대한 인센티브를 받는다. 재앙이 시작되는 구조다.

사회적 책임, 안전성과는 거리가 먼 ELS 

코로나 이후 국내 거의 모든 기업은 업종을 막론하고 사회적 책임(CSR), 공유가치(CSV), ESG 등을 부르짖었고 그 핵심에 고객이 있다고 강조했다. 모 은행은 고객이란 말보다 가족이라는 말이 더 타당하다며 고객을 가족 이상으로 생각하라고 강조한다. 가족같이 생각하는 고객에게 조금이라도 더 높은 이자를 주고 싶어 ELS를 가입시킨 것일까?

은행 직원의 말을 믿고 노후자금을 날렸다는 사람도 있고 내 집 마련을 위한 자금, 등록금을 위해 모아둔 아르바이트 급여를 투자해 손실을 봤다는 이도 적지 않다. 은행은 모든 고객에게 상세히 ELS를 설명했다고 강조했지만 사실일 가능성이 없다. 은행지점 창구에 방문하면 누구나 알 수 있다. 설명서에 관한 안내는 커녕 클릭하고 넘기기 바쁘다. 

대학, 대학원에서 경제학·경영학을 전공한 학생도 ELS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이는 거의 없다. 그러니 ELS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하고 여기에 투자한 피해자 역시 드물 것이다. 코로나 당시 예금과 적금금리가 너무 낮기에 이것보다 더 좋은 이자를 제공하고 안전성이 확실한 상품이 있다고 안내한 직원의 유혹에 대부분 넘어갔을 가능성이 크다. 

ELS는 무엇일까? 말 그대로 Equity Linked Securities(주가연계 증권)이다. 특정 주가에 연계된 상품이니 당연히 주식과 동일하게 손실 가능성이 존재한다. 무엇 무엇에 연계된다는 의미는 나의 투자자금이 어떤 것의 움직임에 의해 변동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여기서 무엇은 바로 은행이 말하는 기초자산의 가격. 파생상품은 대개 이런 식이다. 

그 후, 특정 종목 또는 특정 지수(코스피, 홍콩H지수 등)에 연계해서 상품을 내놓고 만기 3년으로 상환조건을 설정한다. ELS를 예로 들면, 2021년 중순 주식시장 종료시점의 지수를 토대로 향후 3년간 해당 지수가 50% 이상 하락하지 않으면 원금뿐 아니라 연 4%이자를 지급한다. 주가가 50% 폭락할 가능성은 없으니 은행은 안전하다고 강조해 왔다. 

그러나 당시 ELS 투자에는 두 가지 함정이 존재한다. 첫째, 2021년은 코로나로 인해 전 세계 주가가 최고 상승세에 있던 시기다. 단적인 예로, 국내기업 엔씨소프트의 주가는 2021년 1월, 100만원을 넘어섰지만 현재 엔씨소프트의 주가는 20만원에 머물고 있다. 2021년 홍콩H지수 역시 마찬가지다. 최고조의 주가가 50% 거품이 빠지는 건 일상이다. 

둘째, 홍콩H지수는 홍콩 주식시장에 상장된 중국의 우량 국영기업을 모아 만든 지수다. 중국의 우량기업이라고 하나 안심하긴 이르다. 미국과 중국의 충돌 등 지정학적 위기를 넘어 지경학적 위기가 일상이다. 경제와 안보가 분리되기 어려운 상황, 지정학적 위험보다 지경학적 위험은 극심한 변동성을 유발한다. 중국 기업의 불확실성은 숙명이다. 

지난달 1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홍콩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 기초 주가연계증권(ELS) 투자자들이 피해 보상 등을 촉구하며 삭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달 1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홍콩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 기초 주가연계증권(ELS) 투자자들이 피해 보상 등을 촉구하며 삭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시중 은행을 불신으로 읽는 시대 

결과적으로 ELS는 주식투자 실패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주식투자는 만기가 없지만 ELS는 만기가 존재해 투자자가 가치가 오를 때까지 버틸 수도 없다. 그리고 미국과 중국의 주도권 충돌은 일반 투자자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다. 이런 상황을 충분히 설명하고 투자를 권유했다면 지금처럼 수많은 투자자가 불만과 억울함을 호소하진 않았을 것이다.

국내 시중 은행이 사회적 책임, 고객만족, ESG를 외쳐도 늘 그들은 더 많은 수익이 도출되는 상품을 고객에게 권유하고 해당 상품이 내재하는 손실 가능성은 철저히 숨긴다. 불완전 판매는 은행 지점을 방문하는 고객에게 일상이 되고 있다. 그 결과 올해 상반기, 만기가 끝나는 ELS는 10조원이 넘었고 예상 손실은 무려 6조원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번 ELS 사태는 은행의 구조적 문제와도 직결된다. 수십년 간 국내 은행은 혁신보다는 돈 넣고 돈 먹기와 같은 손쉬운 장사로 수익을 창출해왔다. 2019년 금융감독원이 투자자가 오인할 수 있는 고위험 상품판매를 시중은행에게 자제시켰을 때 은행은 강력히 반발했다. 결국 금감원은 소비자 보호조치 강화를 조건으로 파생상품 판매를 허용했다.

그러나 또 다시 ELS 사태가 발생했고 그 피해는 대부분 중서민층 투자자에게 집중되었다. 안전성을 외면한 손쉬운 파생상품으로 고객을 현혹하다 보니 젊은 고객일수록 오프라인 은행 지점을 외면하고 있다. 한 마디로 그들의 상품 권유를 못 믿겠다는 것이다. 은행 지점이 축소되면서 은행은 혁신할 의지보다 영업을 통해 고령 투자자를 자꾸 유인한다.  

불완전 판매를 성과로 측정하는 은행의 평가 체계를 손질해야 한다. 그래야 은행 직원도 더 안전한 투자를 권유할 수 있다. 그리고 은행 차원에서 투자자에게 경제교육을 한 달에 1회 제공하는 서비스만 제공해도 신뢰는 손쉽게 회복한다. 지금의 대중은 시중 은행을 불신으로 읽는다. 젊은 사람일수록 은행 직원의 투자 권유는 믿지 않는다고 얘기한다. 

금융기관은 신뢰를 잃어버리면 그대로 끝이다. 더 이상 은행에 방문하는 고객을 볼모로 여겨서는 곤란하다.

 

●권상집 교수는 CJ그룹 인사팀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으며 카이스트에서 전략경영·조직관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활발한 저술 활동으로 2017년 세계 최우수 학술논문상을 수상했다. 2020년 2월 한국경영학회에서 우수경영학자상을 수상했으며 '2022년 한국경영학회 학술상' 시상식에서 'K-Management 혁신논문 최우수논문상'을 받았다. 현재 한국경영학회와 한국인사관리학회, 한국지식경영학회에서 편집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