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의 대중문화 읽기] 다큐 ‘길 위에 김대중’...정치인 DJ가 걷고자 한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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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의 대중문화 읽기] 다큐 ‘길 위에 김대중’...정치인 DJ가 걷고자 한 길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4.01.20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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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 칼럼니스트] 갓 개봉한 다큐멘터리 한 편이 의미 있는 성적을 거두고 있다. <길 위에 김대중>이 그 주인공이다. 지난 10일에 개봉해 18일 기준으로 7만2392명의 관객이 상영관을 찾았다. 상영관을 많이 잡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진귀한 자료를 기반으로 제작한 높은 완성도의 다큐멘터리라는 호평에 힘입어 관객을 끌고 있다.

<길 위에 김대중>은 정치인이자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이었던 김대중의 일대기를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로 그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작풍이기도 하다. 

다큐멘터리의 미덕을 담다

영화로서 다큐멘터리는 감독이나 제작자의 시각으로 어떤 사건이나 현상, 혹은 인물이나 자연을 영상 문법으로 이야기하는 장르다. 보통은 감독이나 제작진이 카메라를 들고 영상을 촬영한다. 때로는 기존의 자료를 취합하고 분석한 이야기를 영상으로 옮긴다. <길 위에 김대중>이 후자의 경우다.

이 영화는 청년 사업가에서 정치인으로 변화해가는 김대중의 모습이 담긴 다양한 사진과 영상 자료, 그리고 김대중 본인 목소리로 남긴 회고와 주변 인물들의 인터뷰로 구성되었다. 해방 즈음부터 1987년 9월 무렵까지 격동 속에 살아가는 김대중의 모습이 시계열처럼 배치되었다.

<길 위에 김대중>을 감상하다 보면 감독과 제작진의 발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만큼 발로 뛰어 확보한 희귀한 영상과 사진이 많이 등장한다. 민환기 감독은 언론과 인터뷰에서 ‘김대중평화센터’에서 방대한 자료를 제공했다고 그 공을 돌렸다. 

하지만 방대한 자료를 낱낱이 검토하고 분석해 하나의 이야기로 만드는 작업은 쉽지 않은 과정이었을 것이다. 김대중은 세상을 떠났지만, 여전히 그를 기억하는 이가 많은, 어쩌면 역사 속에서 살아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는 사실에 기반하지만, 감독의 의도와 개입이 존재하는 장르이기도 하다. 이런 점을 고려하더라도 <길 위에 김대중>은 사실이 주는 묵직한 감동이 있다. 아마도 대중들에게 처음 공개된 듯한 영상들에 등장한 인간 김대중이 격동의 역사 속에 던져진 모습은 여느 블록버스터와는 달리 실제 벌어진 일이라서 놀라움과 함께 감동을 준다는 평이다.

인간 김대중의 이런 모습

<길 위에 김대중>에 등장하는 그의 모습 중 특히 세 장면이 인상적이다. 무엇보다 김대중이 전두환 정권에 의해 사형수가 되어 감옥에 갇힌 모습은 그 자체로 많은 메시지를 던져 준다. 

가족에게 편지를 쓰고 담담한 표정으로 담배 연기를 내뿜는 장면, 전두환 정권이 계획한 미국 망명 권유를 거부하자 그런 남편을 설득하는 김희호 여사와의 면회 장면, 망명을 설득하는 부인에게 미국 생활의 불안감을 토로하는 장면, 마침내 미국 망명을 받아들인 처연한 표정의 김대중. 

이런 모습들이 영상으로 기록되었다는 거 자체가 감옥 속에서까지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려 한 권력의 모습이 거울처럼 비쳤다. 그리고 <길 위에 김대중>을 다룬 여러 기자와 칼럼니스트가 감옥 속 장면을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으로 꼽기도 했다. 

미국 망명 중 김대중의 활동도 인상적이다. 특히 미국의 유명 앵커인 ‘ABC 나이트 라인’의 ‘테드 코플’과의 대담 영상은 압도적이었다.

테드 코플은 남한 정권이 다소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북한의 독재에 비할 바는 아니지 않느냐는 취지로 물었는데 김대중의 대응은 단호했다. 남한의 민주주의가 어떠한 위기에 처해 있는지 의견을 밝혔고, 앵커가 그의 말을 끊자 김대중은 이를 제지하고는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독재 정권이 다스리는 남한의 현실을 조목조목 나열했다. 이 모든 말을 영어로 했다.

어쩌면 김대중의 영어 인터뷰는 발음이 어색하고 다소 투박한 표현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기가 하고픈 표현을 싹 해버렸다. 그것도 미국의 유명 앵커의 입을 막아버리고서.

다큐멘터리 '길위에 김대중' 포스터

영화를 본 후 감상을 메모할 때 1987년 9월 광주 망월동 묘역을 찾은 김대중의 오열 장면이 잔상으로 짙게 남아있는 걸 느꼈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학살이 벌어질 때 김대중은 중앙정보부에 갇혀 있었고 학살 소식은 한 달여가 지난 다음에 접했다고 한다. 

어쩌면 인간 김대중에게 ‘5월 광주’는 아픈 기억이라고만 치부할 수는 없지 않았을까.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할 이유였을 수도 있고.

<길 위에 김대중>은 1987년 9월 광주를 찾아간 김대중의 모습을 끝으로 1편이 마무리된다. 청년 사업가가 정치인이 되어 가는 김대중의 모습을 1편에서 다뤘는데 만약 2편이 제작된다면 본격적 정치 활동에 나서는 그의 모습과 대통령 이후의 모습이 담기지 않을까.

김대중 다큐멘터리의 메시지

이 영화 개봉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길 위에’라는 표현이 어색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길 위의 김대중’이라는 표현이 더 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화 거의 마지막 부분에 “난 늘 길 위에 있었다.”라는 김대중의 육성이 나온다. 그제야 이해가 됐다.

그러고 보니 ‘길 위의’라는 표현은 다소 정적이고 수동적이다. 반면 ‘길 위에’는 뭔가 역동적인 모습이 그려진다. 김대중의 회고처럼 그는 항상 '길 위에' 있었다. 여기서 길은 도로나 보도 같은 길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그가 만들고 싶었던 세상으로 향하는 험난한 과정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렇듯 묵직한 이야기가 담긴 <길 위에 김대중>이 큰 영화에 비해 적지만 의미 있는 흥행 성적을 거두고 있다. 관객들은 이 영화에서 무엇을 봤길래 다른 이에게 소문을 낼까. 아마도 한 시대를 풍미한 정치인의 모습을 보기도 했겠지만, 한편으로는 지금 세상을 떠올리진 않았을까.

그런 면에서 <길 위에 김대중>은 상대 당의 정책을 무조건 반대하기보다는 꼼꼼히 분석해 국민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결과를 도출해내는 정치인으로서의 김대중, 그런 그의 신념과 정치 전략을 재조명한 의미가 있다. 그래서 나와 다르면 무조건 증오 대상으로 몰아가는 작금의 정치판을 돌아보게 만드는 영화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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