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의 책 이야기] 동남아 문학의 과거와 오늘을 보여주는 소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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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의 책 이야기] 동남아 문학의 과거와 오늘을 보여주는 소설들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9.23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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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 칼럼니스트] 아시아의 소수 민족에 관심 있어 유튜브에서 관련 영상을 찾아보곤 한다. 그런데 유튜브는 내가 원치 않는 영상을 추천할 때가 있다. 동남아에 사는 한국인들이 현지인들과 교류하는 영상이다. 그들 중에는 현지인과 현지 문화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행동하는 이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다. 

특히 동남아를 가난하고 미개한 문화의 나라, 한국을 잘살고 발전된 문화의 나라라는 프레임으로 제작된 영상이 의외로 많다. 편견이 아닐 수 없는데 우리나라 자체가 서구 문화를 우월한 것으로 여겨왔기 때문은 아닐까. 문학 분야만 보더라도 영미문학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영미문학의 영향을 받은 일본 문학의 영향을 받기도 했고.

그래서인지 한국에서 동남아 문학은 변방으로 취급받는다. 대형서점에서 동남아 문학은 ‘기타 국가 소설’이나 ‘기타 세계 문학’ 등과 같은 범주에 묶여있고, 도서관에서는 ‘기타 아시아 국가 문학’ 정도로 동남아의 문학을 분류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렇게 소개된 작품의 수도 적지만 대개 현지어를 영어나 불어로 번역한 판본을 다시 한국어로 옮긴 작품이 많다. 

그런 가운데 현지어와 문학을 공부한 번역가가 한국어로 옮긴 작품들이 있어 읽어 보았다. 태국의 '인생이라는 이름의 연극', 인도네시아의 '판데르베익호의 침몰', 그리고 베트남의 '영주'가 그 작품들이다. 

식민지 조국의 독립과 발전을 위하여

'인생이라는 이름의 연극'은 태국의 ‘아깟담끙 라피팟’이 1929년에 발표한 작품으로 태국 최초의 장편소설로 꼽힌다. 방콕 왕조 라마 5세의 증손자라 ‘왕족 작가’로도 불린 ‘아깟담끙 라피팟’은 태국의 선구적 문학가이다. 그는 1920년대 중반 영국 유학 시기에 <런던타임스> 기자로 글을 쓰기 시작했고, 이후에는 미국에서 공부하기도 했다. 

'인생이라는 이름의 연극'은 그런 작가의 경험이 녹여진 자전적 소설이다. 태국 상류층으로 태어난 주인공이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미국을 돌아다니며 본 세상은 마치 연극 무대와 닮았고 사람들 또한 그 무대에서 연기하는 배우가 아닐까 하는 성찰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다.

이 소설이 발표된 즈음 태국은 서구 열강의 영향권 안에 있었다. 작가는 당시 세상을 지배하던 유럽과 새로운 강대국으로 올라선 미국을 누비고 다니는 주인공의 서사를 통해 태국인들이 조국의 발전을 위해 더욱 힘써주길 바라는 바람을 작품 속에 담아내기도 했다. 

'판데르베익호의 침몰'은 인도네시아 작가 ‘압둘 말릭 카림 암룰라’가 1939년에 발표한 소설이다. ‘함카’라는 필명으로 알려진 그는 ‘이슬람’을 깊이 공부했으며 네덜란드에 맞서 독립 전쟁에 투신하기도 했다. 그런 그는 ‘인도네시아 국가 영웅’ 칭호를 받은 작가이다.

'판데르베익호의 침몰'의 주요 서사는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다. 하지만 외부인에 대한 차별과 여성에 대한 속박을 묘사하며 당시 인도네시아의 폐쇄적 관습을 비판하고 있다. 다양성이 모인 인도네시아가 화합하고 발전하길 바라는 작가의 염원이 작품에 담았다.

그런데 제목으로 쓰인 네덜란드 선박 ‘판데르베익호’는 무슨 의미로 쓰였을까? 소설의 대미를 장식하는 비극적 장치로 쓰였지만, 한편으로는 ‘판데르베익호’가 당시 인도네시아에 영향을 끼치고 있던 네덜란드에 대한 저항적 의미를 상징하는 건 아닐까 하는 느낌을 주기도 했다.

이 두 소설을 읽으며 일제강점기에 쓰인 우리나라 문학 작품들이 떠올랐다. 특히 두 나라의 문학 분야에서 선구자였던 두 작가의 삶은 일제강점기의 우리나라 문학가들의 삶과 겹쳐 보이기도 했다. 외세의 지배를 받는 식민지 청년들은 문학으로 자기 민족의 혼을 되살리고자 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독립과 자주의 힘을 펼친 동질감이 읽히는 작품들이다.

동남아 소설 '영주', '판데르베익호의 침몰', '인생이라는 이름의 연극'

베트남의 전통과 이념이 짙게 밴 '영주'

오래전에 쓰인 두 작품과 달리 베트남 소설 '영주'는 2015년에 발표되었다. 1975년생인 ‘도빅투이’ 작가는 베트남 국방부 산하 잡지 <군대문예>의 부편집장을 역임했다. 작가는 소수 민족인 ‘몬족’이 과거에 처형 도구로 썼던 돌기둥과 그에 관한 전설에서 영감을 얻었다.

소설 제목으로 쓰인 ‘영주’는 한 지역을 다스리는 왕을 말한다. 작품 속 영주는 처형 도구인 돌기둥을 앞세워 백성을 공포로 다스린다. 강제로 여성을 취하는 등 무자비하게 백성을 수탈하는 영주와 이에 맞서 봉기하는 민초들의 이야기가 소설의 주요 서사이다.

또한 '영주'는 여성이 남성의 노리갯감으로 여겨졌던 시대를 그리며 여성이 독립적 존재임을 역설적으로 이야기한다. 작가는 “여성 역시 꿈을 가질 권리가 있다”고 ‘작가의 말’에서 강조하기도 했다. 

'영주'를 읽으면 베트남의 향토색 짙은 전통의 모습을 느낄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베트남의 국가 정체성이 느껴지기도 한다. 영주의 폭정에 순종적이기만 했던 백성들이 각성하기 시작한 것이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고 존중받아 마땅하다고. 그래서 수탈을 일삼는 영주를 백성들이 힘을 합쳐 몰아낸다. 베트남의 국가 이념인 사회주의 사상이 밴 작품인 것.

이러한 작품 경향은 작가의 신분을 보면 이해할 수 있다. 출판사의 저자 소개에 따르면 '영주'를 쓴 도빅투이 작가는 베트남 국방부 산하 잡지 <군대문예>의 부편집장을 역임한 후 같은 잡지의 창작위원회에서 일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영주'는 국방부 소속 작가가 쓴 소설이다. 국가가 바라는 이념과 목적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영주'는 분명 베트남 향기 짙은 문학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낯설지만 신비로워 흥미로운 문학

이번에 경기도의 여러 시립도서관을 방문해보았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동남아 문학 서적은 ‘기타 아시아 국가 문학’으로 분류된 서가에 꽂혀있었다. 

거기엔 인도와 그 주변 국가는 물론 서남아시아 국가의 문학까지 함께 있었다. 우리가 동남아시아로 분류하는 국가의 도서는 그 서가 중 한 개의 책장에서도 두 칸이 모자라는 분량이었다. 우리나라에서 부여한 동남아 문학의 지위를 여실히 보여주는 모습이기도 했다.

한국 사람들에게 친숙한 동남아시아는 이국적 풍경과 맛을 즐길 수 있어 여행하기 좋은 나라일 것이다. 동남아문화는 어쩌면 그들의 전통춤과 종교 시설 정도로만 알고 있을 것이고. 

그런데 알고 보면 동남아의 국가들은 우리나라 못지않은 역사와 전통, 그리고 문화를 자랑하는 나라들이다. 무엇보다 동남아라고 한데 묶어 일반화하기엔 개성이 뚜렷한 나라들이기도 하다. 

아마 문학도 그렇지 않을까. 비록 몇 권 읽지 않았지만, 동남아의 문학은 낯설고 흥미로운 문학적 경험을 선사하는 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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