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상집의 인사이트] '관객 수 대신 매출액' 박스오피스 기준, 문제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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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집의 인사이트] '관객 수 대신 매출액' 박스오피스 기준, 문제없나
  • 권상집 한성대 기업경영트랙 교수
  • 승인 2023.09.11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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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집 한성대 기업경영트랙 교수] 올해 개봉한 영화 중 최고의 흥행작은 무엇일까? 5월 31일 개봉한 마동석 주연의 <범죄도시3>가 그 주인공이다. <범죄도시3>는 1068만 관객을 동원하며 지난해 <범죄도시2>에 이어 2년 연속 해당 시리즈로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범죄도시 제작진은 지난 여름, 지금까지 1~3편을 통해 국내에서 3000만 관객을 돌파했다며 관객들에게 감사함을 전했다.

천만 관객에서 천억 매출로의 전환 

우리나라는 예전부터 영화, 드라마의 흥행지표를 관객 수 또는 시청률로 평가해왔다. 천만 관객, 시청률 40% 돌파는 신드롬을 일으킬 수 있는 핵심지표로 수십년 작용해왔다. 넷플릭스 등 OTT의 등장 그리고 다양한 종편, 케이블 채널이 생겼음에도 여전히 방송사들은 드라마의 흥행지표로 시청률을 삼고 있다. 얼마나 많이 봤느냐는 지금도 중요하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1999년 <쉬리>가 600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영화는 예술을 넘어 산업의 영역으로 전환되었다. 2003년 연말과 2004년 초,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가 연이어 1000만 관객을 넘어서자 산업화된 영화계에서도 영화진흥위원회의 KOBIS(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을 도입하게 된다. 체계적으로 관객 수와 매출을 기록한다는 의미다.

문제는 관객 수가 핵심지표가 되다 보니 초반 흥행을 위한 과도한 여론몰이가 업계 관행이 됐다. 여론몰이에 필요한 요소는 두 가지다. 첫째, 흥행을 선점하기 위한 스크린 독과점 현상.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3개 회사의 상영관 점유율은 97%를 넘어선다. 유명한 A급 배우가 등장하는 영화, 150억 이상이 투자된 영화는 스크린을 몰아준다. 

둘째, 이른바 초대권 뿌리기를 통한 유령 관객 동원이다. 100억~200억 이상의 제작비가 투입되면 제작사, 배급사는 반드시 손익분기점을 넘어서야 한다. 영화는 보기 전까지 사람들이 구매를 망설이는 상품이다. 관객이 몰린다는 소문이 나야 손익분기점을 넘어설 수 있다. 손익 압박에 실제로 가 보면 관객이 없는데도 전석 매진이라는 기현상이 등장한다. 

그 동안 유령 관객은 영화사들도 모두 아는 불편한 진실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비상선언> 등 일부 영화의 관객 조작 혐의가 나오자 경찰 수사가 이어졌고 불편한 진실은 뚜껑을 열고 모든 이에게 그 관행이 공개되었다. 코로나19가 영화계 그리고 영화관의 장기침체를 일으키자 유령 관객 동원이 사람들 눈에 더 쉽게 그리고 더 빨리 포착된 것이다. 

결국, 천만 관객은 앞으로 등장하지 않을 홍보문구가 될 가능성이 크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직접 영진위에 박스오피스 집계를 관객 수에서 미국처럼 매출액 중심으로 변경하도록 지시한 것이다. 이벤트성 초대권으로 관객 수를 조작하고 여론몰이하는 행태를 벗어나 실제로 해당 영화가 얼마나 수익을 창출하는지에 집중해서 평가, 집계하라는 뜻이다.

​박스오피스 집계기준을 기존의 관객수에서 매출액으로 바꾸기로 하면서 이와 관련한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박스오피스 집계기준을 기존의 관객수에서 매출액으로 바꾸기로 하면서 이와 관련한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매출액 평가, 여론몰이 과열을 막을 수 있을까

미국은 매출액을 기준으로 흥행을 평가한다. 미국에서 할리우드는 예술을 넘어 경제, 산업 그 자체로 통한다. 산업의 핵심은 얼마나 많이 보느냐보다 얼마나 많은 돈을 버느냐에 있다. 2009년 12월 개봉한 영화 <아바타>는 29억 2370만 달러를 벌어들여 14년이 지난 지금도 역대 박스오피스 1위를 수성하고 있다. 아바타는 전 세계에서 4조원을 벌었다. 

매출액을 중심으로 흥행지표를 전환하면 국내 역대 1위는 무엇일까? 2014년 개봉 영화 <명량>은 1761만 관객을 동원했지만 매출액 중심으로 지표를 바꾸면 1위는 2019년에 개봉한 영화 <극한직업>이 차지한다. 1626만 관객을 동원했지만 매출액은 1396억원으로 <명량>의 1357억원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업계는 매출액 지표가 중요하다고 얘기한다.

매출액을 중심으로 평가하면 제작사가 유령 관객을 동원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얘기한다. 유령 관객을 동원해서 매출액이 늘었다고 신고하면 유령 관객으로 인해 세금만 더 내기에 그럴 필요가 없어진다고 업계는 주장한다. 그리고 영화는 예술임과 동시에 산업이기에 매출액 등 수익으로 관리하는 것이 흥행의 가장 정확한 지표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매출액으로의 전환이 가장 타당한지 고찰할 필요는 있다. 과거와 달리 지금은 2D관, 4DX관, 아이맥스관으로 영화관의 형태가 변화되었고 좌석도 일반석에서 고급석까지 천차만별이다. 매출액으로 전환되면 영화관은 돈이 되는 좌석과 영화관을 전진 배치할 가능성이 높다. 제작사와 영화관은 저예산 독립영화에겐 절대 자리를 내주지 않는다. 

특히 매출액 중심으로 지표가 전환되면 인플레이션, 영화관람료 상승으로 인해 매해 역대 최고의 흥행작이 뒤바뀐다. 물가상승률을 적용해서 보정한 박스오피스 역대 최고의 1위는 1939년 개봉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39억 2200만 달러다. 그러나 역대 박스오피스를 위해 물가상승률을 보정하는 이는 어디에도 없다. 매년 여론몰이는 지속될 것이다. 

1980년대 대한극장, 서울극장 등 단관 중심의 영화관은 1990년대 멀티플렉스로 전환되었고 2020년대 좌석과 영화관의 차별화로 인해 같은 영화를 보더라도 티켓 가격이 최소 5000원~최대 5만원 이상의 차이가 난다. 제작사, 배급사 입장에서는 흥행배우를 통해 안정적인 시리즈물을 내놓을지 언정 창의적인 독립영화를 실험할 의지는 계속 줄어들 것이다.

관객 수를 기준으로 한 이유는 영화를 산업보다 예술 그리고 문화라는 측면에 비중을 두었기 때문이다. 많은 돈을 버는 것보다 우리는 많은 관객이 함께 공감하고 경험한 것을 더 가치 있게 평가해왔다. 매출로 지표가 전환된다면 일반 좌석에 앉은 이와 고급 좌석에 앉은 이의 경험은 절대 같은 경험과 공감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자본주의의 논리다. 

관객 수에서 매출액 기준으로 성급히 변경하기보다 무엇을 개선해야 할지 영화인들의 목소리를 듣고 무엇을 보완해야 할지 경청하는 게 순서가 아닐까? 영화는 지금도 산업논리에 종속되어 있다. 산업논리로 보면 관객은 고객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참고로, 내 좌석을 돈으로 환산, 평가하려 할수록 관객은 영화를 더 외면할 것이다. 

 

●권상집 교수는 CJ그룹 인사팀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으며 카이스트에서 전략경영·조직관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활발한 저술 활동으로 2017년 세계 최우수 학술논문상을 수상했다. 2020년 2월 한국경영학회에서 우수경영학자상을 수상했으며 올 2월 '2022년 한국경영학회 학술상' 시상식에서 'K-Management 혁신논문 최우수논문상'을 받았다. 현재 한국경영학회와 한국인사관리학회, 한국지식경영학회에서 편집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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