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탐험, 서울이야기]㉔ 홍대 거리, 예전엔 기찻길 지금은 걷고 싶은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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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탐험, 서울이야기]㉔ 홍대 거리, 예전엔 기찻길 지금은 걷고 싶은 길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6.11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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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강대호 칼럼니스트] 홍대 앞은 걸어 다니기 좋은 동네입니다. 그래서 관청에서 ‘홍대 걷고 싶은 거리’라는 지명을 붙인 길도 있고,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며 자연스럽게 ‘홍대 거리’로 불리는 길도 있습니다. 마포구는 이미 정체성이 충만한 ‘홍대 거리’를 붉은 계열로 칠하고선 ‘레드로드’라는 정체성을 더 부여해주고 싶어 했지만요. 

이 거리의 정식 도로명은 ‘어울마당로’입니다. 그런데 홍대 앞을 찾는 이들이 유독 몰리는 ‘어울마당로’가 예전에는 기차가 다니던 철길이었습니다. 당인리선 철도가 놓였던 곳이지요.

당인리선은 지금의 서울화력발전소인 ‘당인리발전소’에 석탄을 공급하던 열차 노선입니다. 용산역에서 출발한 열차가 지금의 경의선숲길을 따라오다 경의선 책거리에 자리한 경의중앙선 홍대입구역 즈음에서 홍대 방향으로 갈라졌지요. 경의선 책거리에서 갈라진 길은 완만히 휘어지며 어울마당로를 만나는데 과거 철로의 진행 방향을 보여주는 흔적이기도 합니다. 

서울화력발전소는 1930년 11월에 준공됐고 이때부터 당인리선 철길을 이용해 석탄을 나른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발전소의 연료로 석탄을 쓰지 않게 되자 1980년에 열차 노선이 폐지되었습니다. 폐선 연도가 1982년이라는 기록도 있습니다.

1957년 당인리발전소. 지금의 합정동 방향에서 바라본 모습. 사진제공=서울역사아카이브

석탄 발전이 멈추며 사라진 열차 노선

당인리선이 석탄만 운반한 건 아닙니다. 한때 통근 열차도 운행하며 여객을 운송하기도 했습니다. 그때 모습을 1939년 6월 7일 <조선일보>에 실린 ‘주택난의 해결책은 근교로 분산에 전재(專在)’라는 기사에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기사는 경성의 주택난을 해결하기 위해 도심 외곽으로 인구를 분산해야 한다며 당인리선 주변 지역을 추천합니다. 그 이유로 경성 서부 교외를 도는 당인리선의 열차 운행을 더 늘리려고 한다는 철도국의 계획을 꼽습니다. 그렇게 되면 서강 신촌 방면에서 시내로 내왕하기에 편하게 되어 당인리선 주변 지역에 사람이 많아질 것으로 분석하지요.

1940년에는 당인리역을 증축한다거나 인근의 방송소앞역을 간이역으로 신축해 역무원을 두게 되었다는 기사가 나오는 걸로 봐서 당인리선을 이용하는 승객이 많아진 걸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며 당인리선의 역할은 축소되며 역들도 서서히 사라집니다. 

1972년 6월 7일 <경향신문>의 ‘동막역 고별. 근대화에 밀리고 승객 적어 철거’라는 기사에서 당인리선이 처했던 현실을 엿볼 수 있습니다. 동막역은 지금의 마포구 대흥동에 있던 역입니다. 경의중앙선 대흥역이 그 전통을 이었지요. 

이 기사에 따르면 동막역은 1928년 9월 20일 문을 열어 마포강의 새우젓 등 생선과 당인리발전소로 운반하던 석탄의 수송을 주로 하되 많은 대소화물과 승객을 싣고 날랐던 곳이었습니다.

한때 하루 평균 187량의 화차가 15회 오가며 많은 화물과 여객을 수송하는 등 서울 서부 지역의 교통 중심지 역할을 다했던 역이지만 이 기사가 나온 당시에는 하루에 18량의 화차만 오가는 초라한 역이 되어버렸습니다. 게다가 용산-당인리간을 하루 5회 왕복하는 통근 열차마저 1970년 폐지되어 하루 30여명만 이용하는 노선이 되었다고 하네요. 

통근 열차가 없어진 당인리선의 방송소앞역은 1974년까지, 석탄만 나르게 된 당인리역은 1980년까지 운영되었습니다. 

그런데 역 이름으로 쓰인 방송소를 두고 저는 홍대 인근에 있는 극동방송국을 말하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방송소는 1933년 경성방송국이 신설한 연희송신소를 의미했지요. 일제강점기에는 서교동이 연희면에 속해서 그렇게 이름이 붙여졌는데 자료들을 참고하면 지금의 서교동 사거리 근처, 즉 합정역과 홍대입구역 사이에 송신소가 있었던 걸로 보입니다. 

연희송신소는 1971년 시흥의 소래로 옮겨갑니다. 그리고, 1974년 8월 <경향신문>에서 방송소앞역이 없어진다는 기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용 승객이 하루 100명 미만인 간이역들을 폐역하게 되었는데 여기에 속하게 된 거죠. 이때 효창역도 함께 폐역됩니다. 경의선 숲길 용산 구간에서 효창폐역에 관한 안내를 볼 수 있습니다.

중앙의 도로가 오래전 당인리선 열차가 다니던 ‘어울마당로’이고, 왼쪽 점포들 있는 곳에 방송소앞역이 자리했었다. 마포구는 이 길을 붉은 계열로 포장하고 ‘레드로드’로 명명했다. 사진=강대호

그렇다면 방송소앞역은 어디에 있었을까요? 저는 어디에 있었는지 기억하고 있습니다. 초등학생 시절 학교에 가려면 그 앞을 지나가야 했거든요. 저는 1974년부터 1976년까지, 마포구 서교동에서 살았고 ‘어울마당로’ 가까이에 있는 서교초등학교에 다녔습니다. 2학년부터 4학년 시절이었지요. 

지금의 합정역 4번 출구 근처에 살았던 저는 서교동 주택가 사이를 걸어서 통학했습니다. 그렇게 주택가를 빠져나오면 기찻길을 만났고요. 역 건물이 따로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철로 옆에 자리했던 플랫폼은 분명 기억합니다. 제가 초등학교 4학년 시절이던 1976년의 항공사진을 보니 기찻길과 플랫폼의 윤곽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방송소앞역의 흔적을 지금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다만, 철도 동호인들이 수년 전 당인리선 구간을 탐사하며 방송소앞역 플랫폼으로 추정되는 흔적을 사진으로 담은 블로그 등에서만 확인할 수 있지요. 

그 사진들에는 도로와 보도 사이의 포장이 벗겨져 옛 플랫폼의 윤곽이 드러난 게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방송소앞역이 있었던 어울마당로가 인도와 차도 구분 없이 아스팔트로 꽁꽁 덮여 옛 윤곽을 확인할 수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혹시나 하고, 그 플랫폼 사진이 찍혔던 자리에 들어선 점포의 직원에게 예전에 가게 앞으로 열차가 다녔고 가게 자리에 간이역이 있었던 걸 아느냐고 물어봤습니다. 역시나, 금시초문이라며 별걸 다 물어본다는 표정이 돌아왔지요.

홍대 주차장길로 불렸던 '어울마당로'

철로가 놓였던 홍대 ‘어울마당로’는 사람들이 홍대 주차장길로 부르기도 했습니다. 철로를 걷어 낸 빈터를 주차장으로 이용했으니까요. 주차장길 끝자락에서 만나는 ‘독막로’에서 당인리사거리를 건너도 어울마당로는 계속 이어집니다. 다만 편의점이 입주한 건물이 가로막듯 서 있어 어울마당로의 폭은 좁아집니다.

그 건물 뒤부터 서울화력발전소까지는 쭉 연립주택이 들어섰는데 이 건물들은 모두 당인리선 철길을 걷어낸 자리에 건축한 겁니다. 당인리역 터에는 어린이집이 들어섰고요. 항공사진으로 확인하니 옛 철로 자리에 건물들이 들어서게 된 건 1990년대부터인 걸로 보입니다. 

주차장길로도 불렸던 어울마당로 건너편에 마주한 건물. 건물 뒤로는 연립주택들이 들어섰다. 이 건물들은 모두 당인리선 철로를 걷어내고 건축한 것이다. 사진=강대호

어린 시절 고향이기도 했던 서교동과 홍대 일대를 저는 틈날 때마다 탐사하곤 하는 데 갈 때마다 달라지는 곳을 볼 수 있습니다. 이번에도 1년 남짓 사이에 사라진 데가 있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당인리선 철로 터에 들어선 건물 바로 옆에 있었던 ‘환희마트’가 보이지 않았던 거죠. 그 자리에는 카페가 들어섰고요. 

환희마트는 이 동네의 오랜 터줏대감이었다고 합니다. 제가 당인리선 노선 주변을 탐사할 때마다 들러서 사장님과 대화를 나눴었는데 아쉬웠습니다. 

그런데 동네 주민들과 이야기 나누다 보니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마트 사장님 아들이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면서요. 아쉽게도 제가 카페를 방문한 시간에 당사자를 만날 수 없어서 자초지종을 알 수는 없었습니다. 

다만 시대가 바뀌며 예전 것들이 새로운 것들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걸 다시 한번 더 확인하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당인리선 기찻길 옆 동네인 서교동 365번지의 변화를 따라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매주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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