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상희의 컬쳐 인사이트] 생존, 그 기적이 빚어내는 전율 ‘호텔 뭄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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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희의 컬쳐 인사이트] 생존, 그 기적이 빚어내는 전율 ‘호텔 뭄바이’
  • 권상희 문화평론가
  • 승인 2019.05.11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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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희 문화평론가] 생(生)과 사(死)는 종이 한 장 차이라고, 그렇게 가까이 맞닿아 있는 거라고 누군가 얘기했지만 성자(聖者)가 아닌 범인(凡人)에게 있어 삶은 당연한 것이고, 죽음은 나와는 무관한 일이라며 치부하고 살아가게 된다.

마치 영원히 살 수 있을 것처럼. 그것이 삶을 대하는 우리네 태도다. 극장을 나서며 이런 막연한 믿음이 살아 있음에 대한 직무유기가 아닐까 곱씹어 본다. 

◆ '살아 있음'을 향한 처절한 분투

영화 ‘호텔 뭄바이(감독 안소니 마라스)'는 한순간에 벌어진 테러사건으로 인해 죽음으로 내몰리는 사람들의 생존을 향한 분투를 처절하게 그려낸다. 그들에게 생사의 갈림길은 단지 종이 한 장 차이일 뿐이다. 그 긴박함을 관망으로 일관하기에는 매 순간순간이 너무도 강렬하다. 관찰자로 영화적 상상력을 마주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 

누군가는 테러범들의 눈에 띄어 죽을 것이고, 생(生)을 향한 힘든 여정을 견뎌낸 소수의 사람들은 살아갈 것이다. 위기상황에서 어려움을 무릅쓰고 살신성인하는 용감한 히어로가 있을 것 같은 예상 가능한 뻔한 구조에 딱 들어맞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작품은 몰입을 넘어 마치 삶과 죽음을 간접경험 하게 만드는 듯 살 떨리는 체험을 제공한다.

'살아 있음'으로 가는 여정은 뉴스 보도처럼 단지 물리적인 시간만으로는 말할 수 없는 격한 심리적 통증을 수반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과한 긴장감으로 온몸의 근육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듯 뻐근하다. 숨 막히는 순간을 지나며 살아 있음이 기적처럼 여겨져 심장 가득 전율이 느껴진다. 

영화 '호텔 뭄바이' 스틸 컷.
영화 '호텔 뭄바이' 스틸 컷.

‘호텔 뭄바이’는 실제로 2008년 뭄바이 테러 사건을 영화화했기에 더 아프게 다가온다. 테러를 소재로 했지만 기대했던 액션신은 없다. 그래서 더 사실적이다. 테러범들의 비뚤어진 종교적 신념이 빚어낸 광기가 극한의 공포를 조성하고 오직 살아내야 한다는 일념으로 가득한 이들의 분투가 진리처럼 다가온다. 그렇다고 종교적 대립을 직접적으로 그리지 않는다. 이 영화의 포커스는 오로지 ‘살아냄’이다.

자신의 갓난아기를 찾기 위해 나선 아빠 데이빗(아미해머)의 죽음과 급박한 순간에서도 결코 아이를 포기하지 않는 보모 샐리(틸다 코브햄-허비), 그 보모의 노력으로 결국 엄마 자흐라(나자닌 보니아디)의 품에 안긴 아기의 모습에서 울음을 강요하는 신파적 요소는 없다.

위급한 상황에서 호텔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희생과 용기를 보여준 호텔 직원 아르준(데브 파텔)은 히어로임에 틀림없지만 요란하지 않다. 그가 보여준 묵묵함이 더 큰 존재감을 발휘한다. 이처럼 평범한 사람들의 인간애는 삶으로 향하는 지난한 여정을 버티게 해주는 힘이 된다. 

◆ '무탈한 일상'에 감사함을 느끼다

결국 이 영화의 진정한 히어로는 일순간 휘발돼 버린 것 같은 안타까운 이들의 죽음을 마주하고 살아남은 자들이다. 계속되는 긴장감에 어찌하지 못하다가 맥없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되는 순간, 그들을 향한 울림이 코끝을 찡하게 만든다. 살아있음에 눈물 난다. 생(生)은 감동이 된다.

영화는 테러가 발생한 타지 호텔의 재건 소식을 전해주며 끝을 맺는다. 하지만 어찌 할 수 없이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얼마 전 부활절에 있었던 스리랑카의 연쇄 폭발 테러가 오버랩 되며 여전히 끝나지 않은 현실의 참혹한 이미지가 뇌리에 와 닿는다. 영화는 끝났는데... 불행한 현실, 결코 끝은 없는 걸까?

그러나 살아있는 이 순간 그것도 무탈한 일상 속에서 삶을 마주할 수 있음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그 평범하지만 놀라운 진리에 감사해야 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생(生)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인지도 모른다.

 

●권상희는 영화와 트렌드, 미디어 등 문화 전반의 흐름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글을 통해 특유의 통찰력을 발휘하며 세상과 소통하길 바라는 문화평론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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