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상희의 컬쳐 인사이트] 인간 고유의 영역일 수 없는 감정, 영화 ‘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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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희의 컬쳐 인사이트] 인간 고유의 영역일 수 없는 감정, 영화 ‘Her’
  • 권상희 문화평론가
  • 승인 2019.06.25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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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뉴스= 권상희 문화평론가] 인공지능 운영체제와 인간의 사랑,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기발한 상상력이 꽤 독특했던 영화 ‘Her’.

이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의 느낌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데 불과 5년이란 시간이 흐른 지금, 다시 만난 영화는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묘하게 흔들어 놓는다.

어쩌면 머지않은 미래에 OS(컴퓨터 운영체제)와의 러브스토리가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예감, 그 또한 받아들여야 할 사랑의 형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뜨거운 한낮과는 다른 서늘한 밤공기를 휙 뚫고 지나간다. 

우리는 욕망하는 것들이 빛의 속도로 이루어지고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럼에도 ‘사랑’이란 이름은 여전히 그것과 닮아있는 이름, ‘사람’에게서 찾아야 한다고 믿고 사는데...

극장을 나서며 이런 믿음조차 어느 순간 구태의연한 유물 취급을 받게 되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든다. 

영화 ‘Her’ 스틸 컷.

◆더 이상 인간 고유의 영역일 수 없는 ‘감정’

대필 손편지 작가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의 무미건조한 일상에 찾아온 맞춤형 OS 사만다(스칼렛 요한슨)는 어느 순간 그의 연인이 된다.

실체가 존재하지 않음에도 그녀의 목소리는 보이는 것, 손에 잡히는 그 무엇보다 강력하다. 남을 위해 아름다운 사랑의 언어들을 기계처럼 쏟아냈던 테오도르의 삶에 사랑을 알려준 사만다 역시 프로그래밍 된 감정이 아닌 진실한 감정을 갈구한다.

마치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에서 사랑하는 이를 위해 인간이 되기를 소망했던 로봇 앤드류처럼. 이들에게 더 이상 감정은 인간 고유의 영역이 아니다. 

실체가 없음에도 서로를 간절히 원하고 느끼는 감각은 시각화된 어떤 것보다 강렬하다. 두 사람의 호흡은 어둠을 가득 채우고도 남는다. 대상이 누구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치 사랑의 본질이 그러하기라도 하듯이. 

“난 당신 것이기도, 당신 것이 아니기도 해요”


자신과 소통하는 사람들 중 641명과 사랑에 빠졌다는 사만다. 감정을 스스로 조절할 수 없는 인공지능 운영체제의 한계다. 이런 방식의 사랑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또한 인간의 한계이듯이. 뜨겁던 사랑도 태생적 한계를 어쩌지 못한다.

◆그래도 ‘사람’에게서 답을 찾고 싶다

테오도르가 길에서 마주친 사람들은 저마다 손안에 든 작은 기계와 소통하고 있다. 어쩌면 그 대상이 프로그래밍 된 사만다일지도 모른다.

영화 ‘Her’는 그래서 낯설지가 않다. 사람을 대면하기보다 스마트폰 안에 든 세상에서 누군가를 찾고 잘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위로를 받기도 하는 세상, 그것이 좀 더 진화하게 되면 사만다라는 OS와 소통하는 모습일지도 모를 일이다. 

2025년에는 로봇과의 성관계가 흔해질 거라고 한다. 그리고 2050년에는 사람간의 성관계를 로봇이 거의 대체할 거라는 예측까지 나와 있는 상태다. 다가올 미래를 위해 법률적, 윤리적 제도 마련을 해야 한단다. 살 부비는 일조차 기계가 대신한다니 섬뜩하기만 하다. 

테오도르처럼 사람들은 저마다 외로운 존재다. 그 외로움이 버거워 사만다를 찾게 될 수도, 섹스 로봇에게 의지하게 될 지도 모른다. 얼마든지 독특한 러브스토리가 현실에서도 탄생할 수 있다. 그것도 머지않은 미래에.

하지만 결국 사만다와 헤어진 테오도르는 소울 메이트인 에이미(에이미 아담스)의 어깨에 기댄다. 프로그래밍 되지 않았기에 교감의 한계가 없는 ‘사람’만이 채워줄 수 있는 정서, 그래서 여전히 사랑에 대한 해답은 ‘사람’이라고 믿고 싶다. 

 

●권상희는 영화와 트렌드, 미디어 등 문화 전반의 흐름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글을 통해 특유의 통찰력을 발휘하며 세상과 소통하길 바라는 문화평론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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