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호가 될 13번째 「사슴섬 간호일기」…23년간 책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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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호가 될 13번째 「사슴섬 간호일기」…23년간 책작업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8.06.10 13: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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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록도 한센인 일상을 담은 책 출간…“사랑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아”

 

“할아버지, 오늘도 오셨네요. 집에서 좀 쉬지 않구요?” ……

하지만 할머니는 그저 음냐, 음냐 하는 소리만 낼 뿐 다른 대답은 없다. 눈 한 번 마주치지 않아도, ‘영감’하고 불러주지 않아도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보기 위해 어제도 그제도 그랬듯이 오늘도 여전히 병동을 찾는다.

 

국립소록도병원에 근무하는 간호조무사들이 마지막으로 출간한 열세번째 「사슴섬 간호일기」의 내용이다. 전남 고흥군 소록도는 민간의 출입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사슴이 많이 살아 사슴섬이라 한다.

국립소록도병원(원장 박형철) 간호조무사회는 5월 한센인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소록도 간호조무사들의 경험담을 담은 열세 번 째 「사슴섬 간호일기」를 출간했다고 보건복지부가 10일 자료를 냈다.

이번에 출간한 열세 번 째 「사슴섬 간호일기」에는 지난 창간호부터 12번 째 책에 수록된 글 중 63편과 2016년 병원 개원 100주년을 맞아 소록도를 다시 찾은 간호조무사 동문들의 글 8편, 그리고 자원봉사자들의 이야기 등 총 93편을 수록했다.

소록도 간호조무사회 김오복 회장은 발간사를 통해 “근무를 하면서 틈틈이 원고를 수집하고 편집하며 3년 만에 완성된 책인 만큼 너무 소중하다”고 밝혔다.

편집을 도운 고은아 전 회장은 “23년간의 책 작업은 소록도에서 간호조무사의 입지와 그 지난한 수고를 기록하기에 충분했으며, 책을 발간하면서 기른 능동적인 의식과 자긍심은 한센 어르신들의 삶의 여정을 최일선에서 마지막까지 기쁘게 돌볼 수 있는 힘도 길러주어 어르신들과 우리 자신을 함께 치유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록도 간호조무사회는 이번 열세 번째 「사슴섬 간호일기」를 끝으로 더 이상 출간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현장에서 울릴 사랑의 간호, 소록도 어르신들과 나누는 아름다운 이야기꽃은 끊임없이 이어질 것을 약속했다.

 

「사슴섬 간호일기」는 간호조무사 양성소 출신들이 주축이 되어 1993년 첫 발행을 시작했으며, 지난 2015년에는 12번째 책을 발간한 바 있다.

1977년 개설된 간호조무사 양성소는 1978년 1기를 시작으로 매년 30여 명의 인력을 양성해 1년간 의무복무기간을 두고 병원의 부족한 간호인력을 보충했는데, 2002년 24기까지 614명을 배출하고 2003년에 폐쇄됐다.

1993년 당시 이들은 섬이라는 고립된 환경 속에서 한센인들을 위해 일한다는 사명감과 보람, 애환을 한데 뭉쳐 책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간호업무를 하면서 겪었던 자신들의 이야기 그리고 한센인으로 살면서 느꼈던 환자들의 생생한 삶을 담담하게 그려냈다.

특히, 편견과 차별의 그늘 속에서 침묵하며 살아온 한센인들의 고달픈 삶과 애환, 그리고 그것을 이겨내기 위한 몸부림과 그들의 곁을 묵묵히 지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했다.

 

▲ '사슴섬 일기' /보건복지부

 

열세번째 「사슴섬 간호일기」 내용중 일부

 

<일방통행 사랑>

김영진(2008년/16기)

 

“할아버지, 오늘도 오셨네요. 집에서 좀 쉬지 않구요?”

“힘들더라도 와 봐야지.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해.”

특별한 일 없는 한, 하루에 세 번 병상의 할머니를 찾아오는 할아버지가 계시다.

할아버지를 알게 된 건 4년 전 구북리에서 근무할 때다. 당시 할머니는 걷지 못해도 말씀을 잘하셨고 엉덩이로 방을 밀고 다닐 정도는 되었다. 할아버지는 집안 살림에 구북리 사무실 일이며 밭일까지 쉴 틈 없는 바쁜 일상에도 불구하고 항상 웃음과 농담을 잃지 않았다. 그렇게 일 년을 구북리에서 근무하고 세월이 흘러 5병동에서 할아버지를 만난 반가움도 잠시, 눈만 깜빡거릴 뿐 아무 말씀도 못하고 누워만 계신 할머니를 본 순간 마음이 무거웠다. 불러도 대답 없이 눈 한 번 맞추지 않는 할머니지만 그래도 뭐가 그렇게 좋은지 할아버지는 오실 때마다, 할머니 등 뒤에서 꼭 안으며 따뜻한 체온과 사랑을 전한다. 그런 할아버지의 마음을 할머니가 느끼기는 하는 걸까? 한참을 안아주고 식사수발을 마친 후 자리에 눕힌다. 그리고 날마다 묻고 또 묻던 질문을 오늘도 반복하신다.

“내가 누구여?”

하지만 할머니는 그저 음냐, 음냐 하는 소리만 낼 뿐 다른 대답은 없다. 눈 한 번 마주치지 않아도, ‘영감’하고 불러주지 않아도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보기 위해 어제도 그제도 그랬듯이 오늘도 여전히 병동을 찾는다.

할아버지의 일방통행 사랑은 참으로 감동이고 지극하다. 할머니가 살아계시는 동안 그 일방통행 사랑은 계속될 것이다.

 

<사랑하는 아버지!>

허옥희(행복의 집)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는 앞 못 보는 아버지와 딸이 주고받는 인사말이 되었네요. 언제나 눈 보이는 사람처럼 항상 당당하고 일에 지친 간호들에게 산소처럼 힘을 실어주신 아버지!

당신은 하모니카합주단원으로 제주를 비롯해 서울까지 안 간 곳 없이 연주하러 다녔지요. 연주를 통해 소록도를 알리고 한센병 환우들이 의지를 가지고 은혜롭게 산다는 것을 산 증인으로 보여주었지요.

당신은 건강한 사람들 앞에서 정신적인 건강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몸소 보여주었습니다. 합주단원이 하나둘씩 천국으로 떠나면서 슬픔에 잠긴 당신. 스무 명으로 출발한 단원이 세 명으로 줄었지만 생일잔치 때마다 ‘실력을 뽐내 달라’는 부탁받으면 늘 주저하지 않았지요.

<중략>

연세가 75세인 데도 어쩌면 그렇게 늘 밝게 살 수 있는지요. 젊은 저희들에게는 모범입니다.

요즘 아버님께 하루 두 편씩 시를 읽어드렸는데 그 또한 반기며 좋아하셨지요. 그리고보면 아버지는 어느 것 하나 싫어하는 게 없습니다.

늘 감사의 삶을 사시는 아버지! 다시 한 번 생신을 축하드리며 늘 건강하세요. 저희 또한 사랑으로 하늘과 사람만 보며 살겠으니 그 사랑 많이 받아 남은 여생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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