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란드 얼음에서 밝혀진 로마 경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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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란드 얼음에서 밝혀진 로마 경제사
  • 김현민
  • 승인 2018.05.18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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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코어에 함유된 납성분을 통해 로마 은화 주조량을 측정

 

▲ NGRIP 프로젝트 위치 /암스테르담 대학 사이트

그린란드의 두꺼운 얼음 층에 드릴을 박아 구멍을 내고 원주형의 얼음덩어리(ice core)를 꺼내 지구의 역사를 알아보는 작업이 기후학자들 사이에 추진되었다. NGRIP라는 프로젝트는 그린란드 북부에서 1996년에 시작해 2004년까지 진행되었다. 얼음 표면에서 드릴 작업을 해 수직으로 3,085m를 뚫었더니, 지표가 나왔다. 12만년 동안 쌓인 얼음이 조각조각 올라왔다. 이 얼음은 역사에 기록되지 않는 12만년의 기후 데이터를 보관하고 있다.

 

연구팀에는 각국에서 온 학자들이 참여했다. 그중 미국의 사막연구소 과학자들도 참여했다. 그들은 로마시대로 분류되는 아이스 코어에서 납(lead) 성분을 추출했다.

멀리 BC 8세기에서 시작해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476년까지, 이 시기에 그린란드는 사람이 살지 않는 얼음의 땅이었다. 이 동토에서 수백 동안 납 성분이 추출된 이유는 무엇일까.

과학자들은 그린란드 얼음 속에서 캐낸 아이스 코어의 납은 바로 로마제국이 은화를 주조하는 과정에서 배출된 납 성분이 연기와 함께 대기 중에 배출되었다가 바람을 타고 그린란드에 떨어진 것으로 파악했다. 고고학자, 역사학자, 기상학자들이 참여해 로마의 납 배출의 역사를 재구성한 결과 이같은 추론이 유추되었다.

 

▲ 로마시대 납성분의 대기흐름

 

로마제국은 영토를 확장하고 제국을 유지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은화를 주조했다. 이베리아 반도(스페인)의 은광에서 광석을 채취해 뜨거운 불로 녹여 은을 추출하는 과정에서 은과 납, 구리가 추출되었고, 이 과정에서 납으로 오염된 대기가 형성되었다. 이 납 성분이 그린란드 얼음 덩어리에서 추출된 것이다.

미국 네바다 주의 사막연구소에서 수문학(hydrology)을 연구하는 조 맥코널(Joe Mcconnell) 박사는 “문헌에서 로마제국 경제에 관한 디테일을 찾을수 없었다”면서 “얼음에서 드러난 기록은 당대의 해결방식과 시기의 정확도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펜실베니아대 세스 버나드(Seth Bernard) 박사는 연구물을 보고 “과학 연구로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 /그래픽=김현민

 

과학자들은 그린란드 아이스코어에서 추출된 납 오염량을 로마 역사를 대비해 은화 주조의 양을 추출했다. 예컨대 BC 218년 로마가 카르타고와 싸운 제2차 포에니 전쟁 때, 납 오염량이 크게 떨어졌고, 전쟁이 끝난후 다시 증가했다. 카르타고군이 스페인의 은 광산을 점령해 은화주조가 중단됐기 때문이다.

또 서기 64년 네로황제가 은의 함유량을 저하시켰을 때 납 오염도가 떨어졌다.

BC 134년에서 BC 27년까지 로마가 극심한 내전에 시달리며 공화정의 위기가 닥쳐왔을 때 경제가 침체하고 은화 주조량이 급감한 사실도 얼음 기록은 보여주었다.

아이스코어에서 납 성분이 가장 많았을 때는 기원후 206년까지 이른바 ‘팍스 로마나(Pax Romana) 시대’로, 로마가 제국의 영토를 최대로 늘릴 때였다. 제국은 물자를 구입하고 군인 봉급을 주고 노예를 사기 위해 대량의 은화를 주조했으며, 이때 납의 배출량은 1,800년후 산업혁명기의 배출량보다 많았다고 분석되었다.

안토니우스 역병(165~180년)과 키프러스 역병(250~270년)이 창궐하던 때에는 일시적으로 납 배출량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로마제국의 내부 붕괴 조짐이 시작된 235~284년 기간에는 납 배출량이 최저치를 보였다. 아이스코어의 납 검출량은 영국에서의 로마군대 철수, 서로마제국 멸망(476년)을 계기로 바득을 드러냈다. 제국이 멸망기에 접어들면서 은화주조도 퇴조한 것이다.

 

▲ 아이스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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