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육사 순국 80주기···중국 베이징 골목에 차려진 조촐한 제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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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육사 순국 80주기···중국 베이징 골목에 차려진 조촐한 제사상
  • 이상석 기자
  • 승인 2024.01.13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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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수도 베이징의 한 골목 담벼락 아래에 조촐한 제사상이 차려졌다. 사진=연합

[오피니언뉴스=이상석 기자] 일제 강점기 대표적인 민족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인 이육사(1904∼1944) 순국 80주기를 앞두고 중국 베이징(北京) 교민들이 13일 오전 추모행사를 개최했다.

추모 행사가 열린 곳은 베이징의 명동으로 불리는 왕푸징(王府井)에서 1.5㎞ 떨어진 둥창후퉁(東廠胡同) 28호다.

북어포와 과일 몇 개에 소주 한 병이 전부였지만 10여명의 참석자는 영하의 추운 날씨에도 숙연한 표정으로 술잔을 올리고 절을 했다.

이육사는 국내 무기 반입 등을 이유로 1943년 가을 경성에서 체포된 뒤 베이징으로 압송돼 이듬해 1월 16일 새벽 고문 끝에 숨졌다.

둥창후퉁 28호는 일본 헌병대가 지하감옥으로 사용했던 곳으로 국내 학자들과 이육사 후손들은 일제 헌병들의 시신 인계장소 등을 고려할 때 이육사가 이곳에서 숨을 거뒀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독립기념관이 운영하는 국외 독립운동사적지 홈페이지도 둥창후퉁 28호를 이육사 순국지로 표기하고 있다.

베이징에 거주하는 교민과 주재원으로 구성된 '재중 항일역사기념사업회'(이하 기념사업회)는 매년 이맘때가 되면 둥창후퉁 28호를 찾아가 추모행사를 진행하며 시인의 저항정신을 되새기고 있다.

기념사업회는 이날 사합원(四合院·사방이 'ㅁ'형태로 둘러싸인 건축 양식) 형태로 지어진 주택 내부에서 행사를 진행할 계획이었으나 주민들이 외부인의 출입을 막으면서 골목 담벼락 아래에 제사상을 마련했다.

행사에 참석한 한 교민은 "몇 년 전만 해도 감옥으로 활용된 것으로 보이는 지하공간과 오래된 쇠창살 등이 그대로 남았지만 지금은 리모델링과 함께 모두 사라졌다"며 "이제는 추모행사도 제대로 못 하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1904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난 이육사는 1925년 독립운동단체 의열단에 가입했다.

본명은 원록으로 1927년 독립운동가 장진홍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루돼 대구형무소에서 3년간 옥고를 치렀는데 당시 수인번호 264를 따서 호를 '육사'라고 지었다고 한다.

출옥 후 베이징대 사회학과에 입학한 뒤 중국 문학가 겸 사상가인 루쉰(魯迅) 등과 사귀면서 독립운동을 계속했다.

1933년 귀국해 '육사'란 이름으로 시 '황혼'을 발표해 등단했다. 신문사·잡지사를 옮겨 다니며 논문·시나리오를 썼고 루쉰의 소설 '고향'을 번역하기도 했다.

그는 시작 활동 못지않게 독립투쟁에 헌신해 전 생애를 통해 17회나 투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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