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경희 도보기행 칼럼니스트] 새벽에는 긴팔을 입고도 약간의 서늘함이 있었다. 식지 않을 것 같은 태양의 열기가 9월이 되니 시간의 흐름을 아주 천천히 순응한다.
변산 마실길은 코스가 다양하다. 이때만 볼 수 있는 상사화를 만나고, 코스에 상관없이 여러 마실길 중 변산에서 유명한 장소와 연결하여 걸었다.
마실이란 전라도를 위시하여 여러 지방에서 사용하는 말로서 근처 이웃집에 놀러 간다는 뜻이 있다. 마실이란 이름부터 친근하게 다가오는 길이다.
변산해수욕장은 서해안 3대 해수욕장의 하나로 하얀 모래와 푸른 소나무를 자랑하는 곳이다. 1988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후에 화장실도 만들지 못하는 곳이 되었다고 한다. 이로써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아 낙후된 곳이라는 글을 보았다.
▶트레킹 일시 : 2023년 9월2일(토)
▶트레킹 코스 :변산해수욕장~송포항~성천항~고사포해수욕장~하섬 전망대~적벽강~수성당~채석강
개발로 호텔과 위락시설이 들어서야만 발전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무분별한 개발을 피해서 조금은 불편하더라도 자연의 멋진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 더 가치가 있었다고 본다.

새만금 공사로 변산해수욕장 모래가 유실되는 현상이 일어난다고 하니 무분별한 개발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송포항에서 성천항까지 변산 마실길 제2코스의 노루목 상사화 길은 상사화와 함께 걷는 길이다. 이 길로 절정으로 피고 있는 상사화를 만나러 갔다.


상사화는 잎이 봄에 나와 5월경에 사라진 후 7~8월경에 꽃대만 나와 꽃을 피우기 때문에 꽃과 잎이 서로 만나지 못한다.
수선화과인 상사화는 꽃이 피면 잎이 지고 없고, 잎이 있을 땐 꽃이 피어 있지 않는다. 꽃은 잎을, 잎은 꽃을 그리워한다고 해서 상사화라 한다. 게다가 결실을 맺지 못하는 슬픈 꽃이기도 하다. 알뿌리로 번식을 하고 7~8월에 피기 시작하여 9월 초순쯤 절정을 맞이한다.
마실길의 주인공인 붉노랑사상화는 연한 노란색이다. 연한 노란색인 꽃송이가 직사광선이 강한 데서는 붉은빛을 띠기 때문에 붉노랑상사화라 부른다.

이 지역에서 자생한 붉노랑상사화를 가꾸고 보호하여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상사화 길 초입에는 붉노랑상사화가 환영하듯 길 양쪽으로 줄지어 피어 있다. 감탄사와 함께 눈 맞춤을 하며 따라가다 보면 바다를 배경 삼아 피어 있는 상사화 언덕이 펼쳐진다.

상사화가 피어 있는 언덕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모델이 되고 싶나 보다. 꽃과 바다를 배경으로 이리저리 예쁘게 모습들을 담기 바쁘다.
주 무대인 상사화 언덕에서는 주인공인 붉노랑사상화보다 위도사상화라 하는 흰사상화가 절정의 시간을 맞이하고 있었다. 위도상사화란 이름은 부안 위도에서 처음 발견되었다 해서 붙여졌다. 순백색은 아니고 상아색을 품고 있는 흰색이다.

위도상사화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흰색으로 피는 상사화라 한다. 부안 위도에서 자생하는 흰상사화를 이곳 변산 마실길에 옮겨 심었다고 한다.
보통 상사화하면 연한 홍자색의 상사화를 가리킨다. 사찰이나 산과 들을 걷다 보면 만날 수 있다. 여러 꽃대가 모여 꽃을 피우면 아름다워 가정집 화단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마실길의 붉노랑상사화와 흰상사화 무리 속에 홍자색의 상사화는 거의 홍일점으로 몇 개만 피어 있었다.
변산 마실길 2코스 노루목 상사화 길에 핀 상사화는 하얀 백사장과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산들산들 불어오는 바람에 상사화가 꽃 파도를 일으켜 바다로 향기를 날려 보내는 것 같다.
붉노랑상사화는 길을 따라 피어 있어 걷는 동안 아름다운 도반이 되어준다. 상사화가 있는 구간은 길지 않으나 해안을 따라 걸으면서 즐길 만큼은 충분하다. 상사화를 볼 수 있는 마실길 2코스는 해안을 따라 어렵지 않게 걸을 수 있는 길이다. 이웃집에 놀러 가듯이 꽃을 보면서 걸어가는 마실길이란 이름과 참 잘 어울리는 길이다.
걸으면서 해수욕장의 송림과 백사장도 즐길 수 있다. 바다와 하얀 백사장을 보면서 걷는 해변길은 상사화가 피는 계절이 아니더라도 언제나 찾아와 걸어도 좋을 것이다.
마실길 2코스만 걷고 끝내도 되고, 연계하여 더 진행하여도 된다. 송림과 넓은 백사장이 아름다운 고사포 해수욕장을 지나 적벽강과 채석강을 향해 걸었다.

명승지 적벽강은 중국의 적벽강만큼 경치가 뛰어나 붙여진 이름이다. 절벽과 암반으로 펼쳐진 2km의 해안선으로 이루어졌다. 천연기념물인 후박나무 군락지가 있고, 붉은색을 띤 바위와 절벽의 해안이 석양빛을 받아 진홍색으로 물들 때 장관을 연출하는 곳이라 한다. 적벽강의 물때를 맞추지 못하여 2km의 해안 절경은 만나지 못하였다.
적벽강 위쪽에는 서해를 다스리는 개양 할머니와 그의 딸 여덟 자매를 모신 당집인 수성당이 있다. 매년 음력 정초에 이 지역 주민들은 풍어와 마을의 평안을 비는 마을 공동 제사인 수성당제를 지낸다.


수성당 주변에는 코스모스 꽃밭을 조성해 놓았다. 절정은 아니었지만 피어 있는 코스모스꽃이 뜨거운 햇살 아래 가을의 분위기를 돋우고 있었다. 절정으로 피는 시기가 되면 가을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겠다,
걷기 종착지인 채석강은 오랜 세월 바닷물에 깎인 퇴적층이 마치 수 만권은 책을 쌓은 듯한 모습으로 알려진 곳이다. 파도에 침식돼 형성된 해식절벽, 동굴과 더불어 변산반도의 대표적 관광 명소이다.

태양이 나오니 새벽의 서늘함은 온데간데없이 너무나 더운 날씨라 땀을 많이 흘리면서 걸었다. 그리고 당일로 왔다 가니 적벽강, 채석강의 물 때도 맞추지 못하고, 서해안의 아름다운 해넘이의 모습도 보지 못하였다.
상사화가 핀 언덕에서 노을빛으로 붉게 물들어가는 상사화의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가 있다고 한다. 이것은 꽃이 피는 시기와 맞아야 할 수 있다. 1박이나 오후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적벽강, 채석강에서 유명한 멋진 노을은 언제든지 볼 수가 있는 곳이다.
어느 가을날 변산 해변 도로를 지나가면서 바다를 끼고 해변 길을 직접 걷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상사화를 보면서 그 소망을 이루었다. 때를 맞춰야 볼 수 있는 상사화가 핀 절정의 모습을 품을 수 있었으니 행운이 따라주는 즐거운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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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상사화 처음보는데 너무 예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