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고] '한국 침대 시장 개척자' 안유수 에이스침대 회장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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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 '한국 침대 시장 개척자' 안유수 에이스침대 회장 별세
  • 김솔아 기자
  • 승인 2023.06.27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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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유수 에이스침대 회장. 사진=에이스침대
안유수 에이스침대 회장. 사진=에이스침대

[오피니언뉴스=김솔아 기자] 에이스침대 창업주인 안유수 회장이 지난 26일 밤 향년 94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안유수 회장은 국내 침대 시장을 개척한 선구자적 인물로 꼽힌다.

1930년 황해도 사리원에서 태어난 안유수 회장은 1951년 1·4 후퇴 때 부모와 떨어져 월남했다. 서울 광성고와 동아대 정경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 경영대학원을 수료했으며 단국대에서 명예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안 회장은 부산에 있는 미군 부대에서 잡역부로 일하며 생활하던 중 미군 야전에서 침대를 처음으로 접했다. 이후 한국에서도 침대 시장이 성장할 수 있으리라는 신념으로 1963년 서울 성동구 금호동에 현재 에이스침대의 전신인 에이스침대공업사를 세웠다. 당시 국내에서는 침대라는 개념조차 생소하던 때였다.

국내에 침대 스프링 제조 기술은 물론 기기도 없던 시절이었으므로 안 회장은 제대로 된 스프링 침대를 만들기 위해 나무를 스프링 모양으로 깎고, 손으로 직접 강선을 꼬아보는 등 제품 개발에 나섰다. 여러 시행착오 끝에 국내 최초로 매트리스 스프링 제조기기를 만들었다.

그러던 중 1975년 12월 서울 금호동 공장이 전기 누전으로 전소되는 시련도 겪었다. 이후 1976년 서울 성수동으로 공장을 이전하고 1977년 에이스침대 공업사를 법인으로 전환하며 현재의 '에이스침대'가 탄생했다. 

이후 안 회장은 당시 기업들에게 생소했던 '품질관리실'을 만들고 표준화와 품질관리에 힘썼다. 1978년에는 경기도 성남으로 공장을 이전한 뒤 품질관리 1등급 업체 지정과 KS마크 인증을 받았고, 1991년에는 JIS 마크를 획득했다.

1980년대에 에이스침대는 당시 미국 침대시장 1위 업체인 씰리침대와 기술 제휴를 맺으며 본격적으로 도약했다. 

1992년 안 회장은 품질에 대한 욕심으로 '에이스침대 침대공학연구소'를 설립하고 독자적인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설립 당시 세계적인 연구소와 견줄 만한 장비를 갖췄던 침대공학연구소는 국내 침대 기술과 문화를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에이스침대의 대표적인 캐치프레이즈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과학입니다"도 이 시기 만들어졌다.

에이스침대 침대공학연구소는 2006년 국가기술표준원으로부터 국내 침대업계 유일 국제 공인 시험 기관으로 인정받기도 했다.

안 회장은 '노블리스 오블리주' 실천에도 힘써온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1999년부터 25년째 설과 추석 명절에 불우한 이웃을 위해 백미를 기부해왔다. 현재까지 지역사회에 기부한 백미의 누적량은 10kg 기준 13만 6560포(1356톤)에 이르며, 금액 환산 시 약 32억 수준이다. 지난 2008년에는 복지재단인 에이스경암을 설립한 바 있다.

안 회장은 지금까지도 에이스침대 회장과 에이스경암 이사장을 맡아 왔다. 그는 철탑산업훈장, 금탑산업훈장, 이탈리아 국가훈장 등을 받았다. 

자녀는 2남 1녀로, 장남이 안성호 에이스침대 대표를 맡고 있으며 차남은 안정호 시몬스침대 대표다. 안 회장은 지난달에는 딸인 안명숙 씨에게 에이스침대 지분 5%를 증여했다.

안 회장의 빈소는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에 마련됐으며 장지는 용인 선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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