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 "사우디-미국 긴장 더욱 고조될 것"
美 강한 반발...옐런 장관 "비건설적 행위"
[오피니언뉴스=김지은 기자]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비 OPEC회원국들의 협의체인 OPEC플러스(+)가 자발적 감산을 발표, 원유시장이 큰 폭으로 움직이고 있는 가운데 깜짝 감산에 대한 배경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OPEC+는 "국제 원유시장의 안정을 위해 '예방적으로' 단행했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전략비축유(SPR) 보충에 나서지 않은 것이 사우디아라비아의 심기를 건드렸고, 결국 OPEC+가 예상치 못한 시점에서 감산을 발표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OPEC+의 감산 조치로 인해 원유 가격이 급등세를 연출하면서 인플레이션 완화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미국 또한 타격이 불가피해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갈등은 더욱 고조될 것으로 예상된다.
포브스 "美 SPR 재매입 유보가 감산 계기"
파이낸셜타임스(FT)는 3일(이하 현지시간) "원유 가격을 지지하려는 시도는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의 긴장 고조를 강조한다"고 설명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하는 OPEC+는 지난 2일 하루 100만배럴 이상의 감산을 깜짝 발표하면서 시장을 놀라게 했다. 이같은 조치는 브렌트유와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을 장 중 한 때 8% 이상 끌어올리기도 했다.
미 경제지 포브스는 OPEC+의 감산 결정은 조 바이든 행정부가 SPR 재비축에 돌입하지 않는 점과 관계가 깊다고 설명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해 유가 안정을 위해 1억8000만배럴의 비축유를 방출했다. 지난 2월에도 예산법 의무 조항에 따라 비축유 2600만배럴을 오는 4월부터 6월까지 추가 방출할 계획임을 밝혔다. 미국의 비축유 재고는 1983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까지 떨어졌다.
미 백악관 측은 지난해 12월 당시 성명을 통해 "WTI 원유 가격이 배럴당 67~72달러 수준이거나 혹은 이를 하회하면 원유를 구매할 것"이라고 밝혔다.
백악관 측이 제시했던 수준으로 유가가 떨어지자 미 정부가 SPR을 재매입할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렸다. 유가가 배럴당 60달러대에 머물던 3월 중순 FT는 "원유 가격 급락으로 미 정부가 SPR을 다시 채워 넣을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미 정부는 움직이지 않았다. 지난달 24일 제니퍼 글랜홀름 미 에너지부 장관은 "SPR을 보충하는데 몇 년이 걸릴 것"이라며 단기적인 SPR 비축 가능성에 선을 그었다. 이 발언 이후 유가는 한 때 배럴당 64달러까지 떨어졌다.
골드만삭스 분석가인 댄 스트루이벤과 제프 커리는 "바이든의 SPR 정책과 관련한 사우디아라비아의 분노가 OPEC+ 감산 결정에 기여했을 수 있다"며 "OPEC+는 최근의 유가 하락세를 막기 위해 힘을 쏟고 있다"고 평가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 역시 "이번 OPEC+ 삭감은 경기침체에 대한 방어적인 움직임 뿐만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 등 최대 회원국들의 단호한 움직임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SPR 보충이 무산된 데 따른 실망감에 대해 원유 공급을 줄임으로써 대응을 하는 모습이라는 설명이다.
헬리마 크로프트 RBC 캐피털 마켓 연구원은 "사우디아라비아가 더 단호해지고, 다른 동맹국들 사이에서 주도권을 갖고 있음을 미국에 보여주기 위한 행동일 것"이라며 "사우디가 양국 관계에서 고조되는 갈등을 견뎌낼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평가했다.
美 강한 비판...사우디-미 갈등 고조될 듯
미국 측은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감산에 따른 원유 가격의 급등은 은행권에 대한 우려를 애써 진정시키고 인플레이션 완화에 다시 집중하려는 미국에는 상당한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OPEC+의 결정은 유감스럽다"면서 "인플레이션을 낮추려는 미국의 노력에 타격을 줄 수 있는 비건설적인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어 "가격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 아직 확실하지 않다"며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좀 더 기다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일에는 미 국가안보회의(NSC)의 대변인이 "시장의 불확실성을 고려할 때 현재로서는 감산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미국이 지난해 SPR을 대거 방출한 이유 중 하나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 자금 조달을 차단하기 위한 의도였다는 점에서도 미국 측의 사우디에 대한 불만은 커질 수 있다.
SPR 방출을 통해 유가 급등을 억제하고, 산유국인 러시아의 경제에 타격을 주려는 의도였으나, 러시아 경제는 예상보다는 적은 타격을 입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같은 상황에서 OPEC+의 감산 조치는 러시아에는 더욱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번달부터 3개월간 하루 50만배럴 감산을 발표했던 러시아 또한 감산 기한을 연말까지 연장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FT는 "앞서 발표된 러시아의 감산에 대해 많은 이들은 서방국가들의 제재에 대한 단호한 대응으로 해석했다"며 "이같은 상황에서 러시아와 협력하겠다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의지는 미국과의 긴장을 높일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OPEC+의 감산 조치가 연방준비제도(Fed, 연준)의 일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CNBC는 "이번 감산 조치는 이미 은행 부문의 변동성과 높은 인플레이션에 맞서고 있는 미국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라며 "전세계 중앙은행들의 금리 인상에 대한 더 매파적인 입장을 유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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