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잔 속 태풍'...행동주의펀드 주총서 연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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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잔 속 태풍'...행동주의펀드 주총서 연패
  • 박대웅 기자
  • 승인 2023.03.31 14: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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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주의펀드 "내년 주총에서도 주주권 강화 나설 것"
재계, 선제적 리스크 점검 나서야
주주총회 참석을 위해 주주들이 주주명부 등을 확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오피니언뉴스=박대웅 기자] '동학 개미들의 반란'이 '찻잔 속 태풍'으로 그치는 모양새다. 

3월 주주총회 시즌을 앞두고 큰 주목을 받았던 행동주의 펀드가 주주총회 표 대결에서 연이어 패하고 있다. 행동주의 펀드들은 배당 규모 확대, 자사주 소각 등을 전면에 내새우며 소액주주들의 지지를 받았지만 국민연금과 자문기관, 최대주주의 반대에 부딪혀 주총 문턱을 넘지는 못했다. 때문에 행동주의 펀드발 동학 개미들의 반란이 '찻잔 속 태풍'에 그치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행동주의 펀드의 배당 확대 등 주주 제안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표 대결'서 패배한 행동주의 펀드

주총 시즌을 앞두고 행동주의 펀드의 목소리가 컸던 기업은 ▲KT&G ▲DB하이텍 ▲JB금융지주 ▲태광산업(이상 시가총액 순) 등 4곳이다. 

먼저 지난 28일 열린 KT&G 주총에서 행동주의 펀드들은 패배의 쓴잔을 마셨다. 안자자산운용과 플래시라이트캐피털(FCP)은 ▲현금 배당 최대 1만원 ▲평가보상위원회 관련 규정 개정 및 신설 ▲자사주 소각 ▲분기 배당 신설 ▲사외이사 확대 ▲감사위원 추가 선임 등을 제안했다. 하지만 표 대결에서 패했다. KT&G의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지분율 7.08%)은 회사의 손을 들어줬다. 

29일 열린 DB하이텍의 사정도 비슷하다. 반도체 설계 회사(팹리스) 분할 안건을 두고 표 대결을 펼쳤다. 행동주의 펀드와 소액주주들은 기업가치를 훼손한다며 반대 의사를 피력했지만 DB하이텍의 팹리스 사업 물적분할 안건은 찬성 87%의 압도적 득표율을 기록하며 주총을 통과했다. 

30일 열린 JB금융지주 주총에서 얼라인파트너스는 배당 확대와 사외이사 추가 선임안 등을 표결에 부쳤다. 하지만 세계 양대 의결권 자문사인 ISS와 글래스루이스 등이 JB금융지주의 손을 들어주면서 원하던 바를 이루지 못했다. 31일 열린 태광산업 주총 역시 마찬가지다. 트러스톤자산운용이 주주 제안한 주당 1만원의 현금배당과 자사주 매입, 액면분할 등 3개 안건은 표대결 끝에 부결됐다.

지난 24일 개최된 BYC 주총에서도 트러스톤자산운용이 제안한 감사위원 선임, 배당 확대, 자사주 취득, 액면 분할 등 안건 모두가 주총의 높은 벽을 실감했다. 같은 날 KISCO홀딩스와 그 계열사인 한국철강의 주총에서도 소액주주가 제안한 감사위원 선임과 자사주 매입은 부결됐다. 광주신세계 주총에서도 소액주주들이 배당 확대 및 감사위원 선임을 요구했지만 표 대결에서 고배를 마셨다. 

3월 정기주총 시즌을 맞아 행동주의 펀드들이 연이어 표 대결에서 패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내년에 다시 온다"

비록 올해 주총에서 고배를 마셨지만 행동주의 펀드들은 내년을 기약하고 있다. 얼라인파트너스는 JB금융지주 주총이 열렸던 30일 입장문을 통해 "이번 주총은 장기 캠페인의 한 과정"이라면서 "JB금융지주 이사회가 합리적인 자본배치 및 주주환원 정책을 도입해 극심한 저평가 문제를 해소할 때까지 장기적으로 다양한 주주권 행사를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BYC를 상대했던 트러스톤자산운용의 이성원 부사장 역시 입장문을 통해 "올해 주총에서 모든 승부를 건 건 아니었다"면서 "내년 주총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에서도 주주행동주의는 길게는 3~4년 기간을 잡는다"면서 "장부 열람 등 주주로서 외부에서 할 수 있는 감시활동 및 다른 주주 관여 활동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KT&G를 상대했던 FCP 이상현 대표 또한 "향후 지분율을 더욱 늘려나갈 계획"이라면서 "올해 주총에선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가 KT&G의 손을 들어주고 다른 국내 기관투자자들도 그 결정을 따랐던 것이 패인"이라고 설명했다. 

행동주의 펀드 등의 공세가 심화되는 가운데 재계에선 선제적 리스크 요인 점검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새어 나온다. 사진=연합뉴스

"재계, 리스크 요인 점검 나서야"

재계에선 행동주의 펀드의 공세에 대비해 리스크 요인을 사전에 점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국내외 행동주의 펀드의 적극적인 기업경영 개입 사례는 최근 늘어나고 있다. 대표적으로 2015년 엘리엇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 반대, 2016년 삼성전자의 지주회사 전환 요구, 2019년 현대차와 현대모비스에 배당확대 및 독립적 사외이사 선임, 지배구조 개편 반대 등이 있다. 

전문가들은 행동주의 펀드의 경영권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기업이 적극적으로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한다. 현재의 기업 상황을 재점검하고 업계 대비 기업성과와 배당, 지배구조의 취약점,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추진 현황 등 행동주의 펀드에 빌미를 줄만한 사항이 있는지 살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낸다. 

또한 국민연금의 의결권 동향도 면밀히 살펴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2015년 스튜어드십 코드 제정 이후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 강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민연금 기금 적립금은 890조5000억원으로 잠정 집계됐다. 이 중 국내 주식 비중은 14.1%인 125조4000억원 수준이다. 이는 상장 총액의 5.3% 수준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31일 기준 코스피와 코스닥, 코넥스에 상장된 상장기업수는 2589개사이며 시가총액은 2356조원이다. 

유정주 전국경제인연합회 기업정책팀장은 "국내기업의 보호를 위해 감사위원 분리선임, 대주주 의결권 제한 등 글로벌 스탠다드와 맞지 않는 지배구조 규제를 개선하고 차등의결권, 포이즌필 등 경영권 방어수단을 도입하는 방안을 살펴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포이즌필(신주인수선택권)'은 적대적 M&A(인수합병)에 대한 방어장치 중 하나로 적대적 M&A 시도가 있을 때 인수시도자를 제외하고 기존 주주에게만 저가의 가격으로 신주인수를 부여하는 것을 말한다. 포이즌필이 발행되면 인수 시도자의 지분은 심각하게 감소돼 인수가 불가능하거나 인수비용이 크게 증가한다. 이런 권리는 매수자의 매수시도를 좌절시키는 치명적인 독이 될 수 있다고 해서 '독poison)'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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