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일본 점령에 도움 준 책 「국화와 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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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일본 점령에 도움 준 책 「국화와 칼」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8.02.18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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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왕실의 국화와 사무라이의 칼을 은유하며 일본인의 이중성 파헤쳐

 

일본은 참으로 미스터리한 나라다. 우리에게 가장 가까이 있는 나라이면서도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먼 나라이기도 하다. 친절하고 검약하며 깔끔한 일본인들의 생활양식에 마음속에서 존경심이 우러나오기도 하지만, 그들이 과거에 저지른 만행을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 초록색 메뚜기 한 마리 를 볼 때엔 윤기나고 순하지만, 떼를 지어 습격할 때에는 색깔이 거무튀튀해 지고 온 누리의 식물을 먹어치우는 공격성을 발휘하는 족속이나 다름없다. 저 깔끔하고 친절한 일본인이 어떻게 무서운 살인마로 변한 것일까.

▲ 미국판 /위키피디아

이 의문을 나름 풀어준 책이 미국인 문화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Ruth Benedict, 1887~1948)가 쓴 「국화와 칼」이다. 원명은 ‘The Chrysanthemum and the Sword: Patterns of Japanese Culture'다.

베네딕트가 미국 전쟁 정보국(OWI: United States Office of War Information)의 요청으로 집필을 시작한 것은 2차 대전 말기인 1944년 6월. 2년후인 1946년에 초판이 나왔다.

국화(菊花)는 한번도 혈통이 단절된 적이 없다고 주장하는 만세일계(萬歲一系)의 일본 황실을 상징하는 꽃이고, 칼은 일본 사무라이의 상징이다. 베네딕트는 일본 민족 영혼 깊숙이 숨어 있는 전혀 다른 두 성질을 ‘국화와 칼’이라는 메타퍼를 사용했다. 예의바르고 온순하고 겸허하지만, 거칠고 야만스러운 일본인, 국화를 재배하며 아름다움을 추구하지만, 무사도의 칼을 염예스럽게 생각하는 민족의 그 이중성을 다뤘다.

 

이 책은 베네딕트가 학술적 관점에서 저술한 작품이 아니라, 미국의 국가 이익이 개입된, 의도적 저술이다. 책을 읽으면서 미국이 일본을 연구한 목적이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미국은 오키나와 전투에서 수만명의 목숨을 잃은 후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일본을 굴복시킬 방법을 연구했다. 베네딕트가 제시한 힌트는 천황의 항복을 받아내는 것이다. 즉 국화를 따면 칼을 내려놓는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1945년 8월 두 번의 원자폭탄을 투하하며 천황의 항복을 받아냈다. 천황의 항복 선언 이후 놀라우리만큼 일본군은 총을 내려놓았다. 다른 나라의 전쟁에서처럼 군대가 왕의 지시를 거부할 경우 미국은 전쟁에서 이기더라도 엄청난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그녀의 일본 문화적 연구가 무기를 개발하고 군대를 훈련시키며 외교적 압력을 넣는 것만큼이나 중요했다.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군정기간 미국은 일본의 통치기관을 유지한채 점령지를 통치했다. 일본 문화에 대한 이해가 있었기 때문이고, 베네딕트가 책을 저술하는 도중에 일본의 문화적 특징을 요약해서 국무부에 보고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책이 국내에서 번역된지 오래되지만, 읽은 것은 최근이다. 책의 제목을 보고 가벼울 것이라 생각한 것은 오산이었다. 인류학자가 쓴 일종의 사회과학서적류였다.

베네딕트는 이 책을 쓰기 전에 일본을 방문한 적이 없다. 저술작업을 하던 기간엔 미국과 일본은 교전중이었기에 더욱 일본을 갈수 없었다. 그녀는 많은 자료와 데이터를 수집하고, 책, 영화, 미국에서 살고 있는 일본 이민자들을 만나 정보를 수집했다. 그렇게 해서 일본인들의 독특한 행동, 가치관들을 비교적 이해하고 책을 썼다.

 

베네딕트는 미국의 관점에서 이해되지 않는 일본인들의 행동을 예의 주시했다. 이런 대목이 나온다.

 

일본인의 병력 소모 이론을 가장 극단까지 이르게 한 것은 그들의 무항복주의였다. 서양의 군인들은 최선의 노력을 다한 후에 중과부적이란 점을 알면 항복을 한다. 그들은 항복한 뒤에도 여전히 자기들을 명예로운 군인이라 생각하며, 그들이 살아 있음을 가족에게 알리기 위해 명단이 본국으로 통치된다. 그들은 군인으로서도 또 그들 자신의 가정에서도 모욕을 받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 경우 일본인은 사태를 전혀 다른 식으로 규정한다. 일본인에게 명예란 죽을 때까지 싸우는 것이었다. 절망적 상황에 몰렸을 때에는 일본군은 최후의 수류탄 하나로 자살하든가 무기 없이 적진으로 돌격하여 집단적 자살을 하든가 해야지 절대로 항복해서는 안 된다. 만일 부상당했다든가 기절하여 포로가 된 경우조차도 그는 '일본에 돌아가면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다.'라고 여긴다. 그는 명예를 잃었다. 그 이전의 생활에서 본다면 그는 '죽은 자'였다.

 

베네딕트는 일본인들이 전쟁에서 정신력이 물질력을 이긴다고 생각한 점을 흥미있게 연구했다.

상관이 물을 마시지 말라고 명령을 내린 경우 물 부족으로 죽은 병사의 수통에는 물이 담겨 있었다는 내용과 지하벙커에 숨어 추위와 굶주림에도 체력을 단련하기 위한 체조로 병약함을 극복한다고 믿었던 사실 등을 들었다.

 

일본인은 공격적이면서 수동적이고, 호전적이면서 심미적이며, 무례하면서도 공손하고, 충성스러움과 동시에 간악함을 지녔으며, 용감하면서도 비겁한 모습을 드러냈다. 베네딕트는 봉건사회의 위계체계와 메이지 유신의 과정, 가족제도와 조상숭배, 육아방식 및 사회화 과정, 종교 등을 짚어 가면서 일본인 특유의 모순적 성격을 밝히려 노력했다.

또한 언뜻 보기에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행동양상이 공존하게 된 그들의 민족성을 위계서열의식, 은혜와 보은, 의리에 대한 독특한 도덕체계, 죄와 악에 대한 의식 대신 수치심을 기본으로 하는 일본의 문화체계로 설명하면서, '손에는 아름다운 국화, 동시에 허리에는 차가운 칼을 찬 일본인'으로 결론짓는다.

 

▲ 번역본 표지사진

「국화와 칼」은 미국에서 흥행에 실패했다. 전쟁 직후 일본에 대한 증오심이 컸기 때문일까, 아니면 미국인의 관점에서 일본인의 행동의식이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일까. 1946년에서 1971년까지 15년 동안 이 책은 미국에서 2만8,000권 밖에 팔리지 않았다.

하지만 일본에선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1953년 첫 일본어판 번역본이 나온 이후 250만부나 팔렸다.

일본 학자들은 베네딕트가 일본 문화를 일부 잘못 판단했다고 지적했다. 아마도 너무 실랄하게 비판한 게 듣기 실었던 게다. 미국이 일본을 지배하기 위해 썼다는 지적도 있었다. 그건 맞는 표현인 것 같다.

1974년 대만에서 중국어로 번역되었는데, 이 책은 중국으로 건너가 7만부나 팔렸다.

 

(필자가 읽은 책은 ‘그림으로 보는 국화와 칼’이다, 김진근 옮김. (주) 봄풀출판. 2010년간.)

 

<루스 베네딕트 (Ruth Benedict)>

 

▲ 베네딕트 /위키피디아

1887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나 배서 대학(Vassar College)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교사와 시인으로 활동하다 생화학자인 스탠리 베네딕트와 결혼했다. 1921년 34세의 나이에 컬럼비아 대학에 입학해 스승 프란츠 보아스를 만나게 되면서 인류학 연구에 빠져들었다. 아메리칸 인디언 종족들의 민화와 종교를 연구하여 컬럼비아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모교에서 인류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저서로는 <문화의 패턴Patterns of Culture>(1934), <종족 Race: Science and Politics>(1940), <국화와 칼The Chrysanthemum and the Sword>(1946) 등이 있다.

베네딕트는 문화를 인성의 확대로 보았으며, ‘문화와 인성'이라는 미국 인류학의 주도적인 영역을 개척했다. 후에 미국인류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1947년에는 컬럼비아대학에 현대문화연구소를 설치해 대규모 연구 과제를 추진하다 1948년에 사망했다. 향년 61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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