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제의 포철③…경영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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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제의 포철③…경영 스타일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7.12.06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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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임 박태준 회장과 신임 김만제 회장, 서로 화해 제스추어

 

포철 경영을 맡은 김만제 회장은 이른바 「박태준사단」에 대해 다독거려주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포철을 떠난 전직 임원들을 만나 포철경영에 관한 자문을 듣기도 하고,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자리를 마련해주는 등 박태준 인맥에 대해 유연한 자세를 보여 그들로부터 호감을 샀다.

한 전직임원과의 대화에서 김회장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나보고 박태준 전회장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라고 하는데, 내가 어찌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겠습니까.”

김 회장이 박태준보다 「더 나은」 경영자가 되어야 한다는 주문을 현재 김영삼 대통령으로부터 받았다는 얘기는 포철 내에서 나왔다. 그러나 김 회장은 박태준의 시대와는 다른 포철을 이끌어야 할 임무를 지닌 경영인이었다.

포항제철을 25년간이나 이끌어온 박태준과 신임회장 김만제. 그들은 서로에 대한 감정의 골을 가질 여건은 아니었다. 오히려 서로에 대해 좋은 평을 해주는 제스츄어를 보냈다. 박태준은 일본에서 김 회장의 취임에 대해 호의적인 평을 내렸는가 하면, 김 회장은 박태준사단으로 매도돼 회사를 떠났던 전직임원들을 구제해주기까지 했다.

먼저 박태준은 동경에서 있은 한 사석에서 후임 김만제 회장에 대해 호의적인 평을 했다. 박태준은 “김 회장은 경제를 잘 아는 사람이기 때문에 포철을 잘 이끌어 갈 것”이라며 “김 회장이 자신의 이름을 소중히 여기고 있는 사람”이라고 코멘트했다고 한다.

박태준은 행여 포철의 최고경영진에 정치인출신이 들어와 포철을 잘못된 방향으로 몰고나가지는 않을까 걱정했지만 경제인으로 덕망을 쌓은 김 회장의 취임으로 나름대로 마음을 놓고 있다는 얘기가 전해졌다.

그의 이같은 발언은 정치적 이유로 일본에 장기체류하고는 있지만 포철에 대한 끊임없는 애정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자신이 25년이나 몸담으면서 분신처럼 여겨온 포철이 믿음직한 경영자의 손에 의해 맡겨진데 대한 안도의 표현이기도 했다.

 

한편 김만제 회장도 취임한 이후 일련의 활동 가운데서 박태준사단을 의식한 몇가지 발언을 했고 또 그들에 대한 유화적 제스추어를 보냈다.

김 회장은 한 사석에서 이른바 박태준사단이라는 이유로 포철을 떠나야 했던 전직 임원들과의 화해를 시사하는 발언을 했다.

“최근 1년여 사이에 물러난 포철의 전직임원들 가운데 억울하게 퇴임한 사람들을 구해줄 생각입니다. 알아보니까 구제해야 할 사람이 20여명이 되는 것 같습니다.”

김 회장의 이러한 발언은 비공식석상에서 한 것이기는 하지만 전임인 정명식 회장-조말수 사장으로는 할수 없는 발언이었다. 정-조 체제는 박태준 퇴임후 1년간 이른바 「포철개혁」을 수행하면서 크게 3차례에 걸쳐 포철의 임원을 퇴임시켰다. 「개혁」을 명분으로 짤린 임원들만 하더라도 1백여명(자회사 포함)에 가깝다. 박태준과 동향이란 이유로, 그가 발탁했다는 이유로, 그에게 노골적인 충성을 표시했다는 이유로 개혁의 물살에 휩쓸려갔다. 물론 그중에는 소명의 기회도 없이, 개혁의 동참을 다짐할 기회도 없이 직장을 떠난 억울한 사람들이 있었다.

김 회장이 이러한 억울한 전직임원들을 구제해주겠다는 것은 물론 합리성에 근거한 것이기는 하겠지만 해석 여하에 따라 박 전회장과의 화해의 시도로 볼수 있었다.

그 첫단계로 김 회장은 1993년 3월 주총에서 물러난 차동해(車東海) 전감사를 자회사의 부사장에 복귀시켰다. 차씨는 박 전회장과 같은 경남양산 출신이라는 것 이외에는 포철을 떠나야 할 이유가 없는 사람이었다.

차씨는 4월초 포철 자회사로 포철의 용광로를 수리, 관리하는 업체인 포항로공업의 촉탁부사장으로 포철이라는 매머드기업군의 한쪽 귀퉁이에 복귀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게 됐다. 촉탁부사장, 촉탁전무등 촉탁직 임원은 상법상 주총에서 선임된 등기임원이 아닌 임원을 말한다. 정식등기임원이 아니지만 김 회장 취임후 전직임원의 첫복귀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던 케이스였다.

 

김회장의 이같은 움직임에 대해 포철의 전직 임원들은 비교적 좋은 평가를 내렸다. 전임 박태준 회장과 후임 김만제 회장은 서로 삶의 궤적은 달리했지만 여러 곳에서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우선 두 사람은 경제인과 정치인으로서의 양측면에서 활동을 했지만 정치보다는 경제인으로 자신들의 입지를 세운 인물이라는 점이다. 박 전회장이 세계2위의 철강회사를 일군 철강인으로서 국제적인 명망을 얻은 경제인이라면, 김 전회장은 5공시절 한국개발원(KDI)원장과 재무장관, 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을 경유하면서 경제관료로 터를 닦아온 인물이다. 또 김 회장은 지난 91년 삼성생명회장을 역임, 기업인으로서의 활동에도 약간이나마 맛을 보았다.

김 회장이 경제기획원과 재무장관을 할 때인 5공시절, 박태준은 전국구의원으로 국회에 진출, 국회 경과위등에서 서로 접촉할 기회가 있었다. 두사람은 서로를 잘 아는 사이였다.

92년 3월 제14대 총선에서 김 회장이 서울강남乙에서 민자당 후보로 출마, 낙선의 고배를 마셨을 때 박태준은 민자당최고위원으로 있었다. 집권당의 한지붕 밑에 함께 있던 두 사람은 제14대 대통령선거를 즈음해서 길을 달리한다. 한사람은 YS진영에, 다른 한사람은 反YS진영에 가담한다. 이 차이가 현재 포철의 전현직 회장이라는 위상을 만드는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이기는 하지만...

두 사람은 또한 정권교체로 인한 고통을 겪은 경험의 소유자다. 박태준은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기 전후해서 개인적인 세무조사와 검찰조사를 받았지만, 김만제 회장은 6공초 국제그룹해체에 간여한 혐의로 국회청문회와 검찰조사를 겪은 바 있다.

박태준과 김만제. 포철을 논할때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절대비중을 갖는 인물들이다. 박태준은 수세에 몰려 외국으로 떠났지만, 그가 남긴 포철의 족적은 지울래야 지울수가 없다. 포철의 정서속에 박태준이 깊이 자리잡았고, 그가 이룩해 놓은 조강생산능력 2,100만톤의 토대위에 김회장체제의 포철미래가 그려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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