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제의 포철②…현대 제철소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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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제의 포철②…현대 제철소 추진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7.12.04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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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 확대에 현대그룹, 제철소 추진 선언…포철도 증산 결정

 

김만제 회장이 취임할 무렵인 1894년 3월 현대그룹이 작성한 2페이지짜리 보고서가 상공자원부에 보고됐다. 그 안에는 현대그룹의 제철소건립을 위한 자금조달 계획과 부지조성 계획 등의 내용이 들어 있었다.

현대강관 임평규(林平圭) 사장이 보고한 현대그룹의 제철소건립계획은 간단했다.

“2000년대에 국내철강소비량이 5,1030만톤에 이르고 공급량은 3,500만톤에 그쳐 1,560만톤의 부족분이 발생한다. 현대는 이러한 공급부족을 메우기 위해 연간생산량 1,000만톤규모의 제철소를 건립, 이중 650만톤은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에서 소화할 예정이다.

자금조달은 현대그룹 계열사들이 현대강관에 6,000억원을 투자해서 마련하며, 300만톤짜리 고로 3기를 건립할 예정이다.“

포항제철의 조강능력이 2,100만톤, 정확히는 2,080만톤이므로 현대의 계획은 포철능력의 절반에 해당하는 규모다. 현대의 이런 거대한 계획은 김만제 회장 취임 이전서부터 시작됐다.

현대그룹이 제철소건설프로젝트를 검토하기 시작한 것은 1993년말부터였다.

현대강관의 임 사장이 93년 하반기 정몽구(鄭夢九) 현대정공 회장에게 제철소건립에 관한 보고를 했고, 정 회장이 “해보시오”라며 적극적으로 나왔다.

정주영 현대그룹명예회장의 차남인 정몽구 회장은 장남이 사망했기 때문에 사실상 장남격이다. 현대정공, 강관, 자동차써비스, 산업개발, 인천제철등 현대그룹내에서 주요회사 5개사의 회장을 맡고 있는 정몽구 회장은 삼촌인 정세영 그룹회장과도 상의없이 제철소추진을 강행했다.

정몽구 회장은 아버지인 정주영 명예회장에게는 제철소건립 추진 사실을 알렸다. 그러자 아버지는 “현대강관 하나만으로는 벅찬 사업이니 현대건설, 현대중공업과 함께 하라”며 사실상 아들의 일을 승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버지인 정주영 명예회장은 1970년대말에 일관제철소 마스터플랜을 세울만큼 제철소사업을 평생 숙원으로 삼아왔다. 그리고 대선에서 실패한후인 93년초 제철소건립을 공언할 정도였다. 아들이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제철소사업을 추진하게 된 것이다.

정몽구 회장의 지시를 받은 임평규 사장은 제철소 프로젝트팀을 현대정공에 파견, 현대정공의 인력과 함께 극비리에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했다. 현대정공에 설치된 태스크포스팀은 다른 사람의 눈에 띠기 쉬웠고, 그래서 팀은 모처로 자리를 옮겨 일을 계속했다.

93년말 현대의 제철소건설 태스크포스팀은 어느 정도 사업성검토를 마쳤다. 정몽구 라인은 본격적으로 정부에 사업가능성을 타진하기 시작했다.

94년초 정몽구라인의 한임원은 권력핵심에 가까운 사람을 만나 의견을 떠봤다. 이때 정몽구회장이 요로에서 고위층을 직접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측은 부산의 가덕도, 전남율촌공단, 울산등지의 몇군데 제철소후보지를 제시했다. 현대제철소 건은 주무당국인 상공자원부에 보고되기 앞서 정치권에 먼저 타진됐고, 청와대비서실을 거쳐 상공자원부가 알게 됐다. 청와대 비서실로부터 검토지시를 받은 상공자원부는 불쾌한 감정을 가지고 현대강관 임평규 사장을 비롯, 관계자들을 불러 브리핑을 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현대의 보고를 받은 상공자원부는 포철에 현대의 보고자료를 보내 검토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포철은 현대의 제철소건설은 철강과잉을 불러일을킬 것이라며 반대입장을 표명했다.

현대의 제철소 건립계획은 정부요로에 가능성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언론에 흘러나왔다. 정세영 회장에게 보고도 않고 진행된 비밀작업이었던 만큼 현대의 제철소건립에 관한 보도에 현대측은 처음에는 입장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었다. 같은 정몽구회장의 계열사로 철강회사인 인천제철 백창기(白昌基) 사장도 그룹내 철강업체가 있는데도 다른 곳에서 제철소 프로젝트를 연구한데 대해 항의했다. 정세영회장도 처음에는 미온적인 반응을 보였으나 그룹차원에서 제철소건립을 밀기로 했다.

7월 20일 서울삼성동 KOEX빌딩에서 열린 철강공업민간협의회는 현대와 포철의 일대 격전장이 됐다. 협의회에 앞서 임평규 사장은 과천정부종합청사에 있는 상공자원부를 들러 현대의 입장을 정리한 보고서를 재차 냈다.

철강공업민간협의회에서 포철은 철강공급과잉을 주장하리라던 예상을 깨고 2000년까지 15조6천억원을 투자, 587만톤의 조강생산능력을 늘리겠다고 나왔다. 현대의 공세에 정면으로 대응한 것이다.

현대강관의 임 사장은 민간협의회가 끝나고 한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기업의 설비투자는 정부의 허가사항이 아니라 기업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 이뤄져야 합니다. 현대의 제철소건설도 마찬가지의 관점에서 보아야 합니다. 상공자원부가 포철의 조강생산량 580만톤 증설에 대해서는 아무 말을 하지 않으면서 현대의 제철소 건설에 대해서만 어떻게든 막겠다고 반대입장을 표시하는 것은 형평의 원칙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현대는 포항과 광양제철소 건설과정에서 충분한 노하우를 쌓았고, 건설, 엔지니어링,기계분야의 계열사가 많아 광양제철소보다 저렴하게 제철소를 건설할 수 있습니다. 포철이 현대의 제철소건립에 반대하고 있는 것은 현대가 제철소건설의 노하우를 갖고 있어 자신들을 위협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대의 제철소 신규건설 추진은 많은 논란의 여지를 남겨 놓았다. 그러나 민간기업에서 더이상 공기업인 포철의 독점을 용납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만큼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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