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준 떠난 포철⑫…세계철강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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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준 떠난 포철⑫…세계철강협회 부회장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7.11.21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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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이 한국협회장이고, 사장이 세계협회 부회장인 어색한 구도 추진

 

1993년 10월2일 프랑스 파리의 몽파르나세호텔. 정명식 회장과 조말수 사장이 동시에 세계철강협회(IISI) 제27차 총회에 참석했다. 포철창립 이래 회장과 사장이 동시에 IISI 총회에 참석하기는 처음 있는 일이다. 포철측은 최고경영자 두사람 모두 국제회의에 나란히 참석한 것은 그동안의 내부개혁이 어느 정도 성공했고, 국제 철강외교에 경영진들이 나서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조말수 사장이 IISI 총회에 참석한 것은 이런 대외적인 의미보다는 다른 중요한 목적이 있었다. 그는 IISI 부회장이 되고 싶었고, 일본 신일철(新日鐵)의 이마이 다카시(今井敬))사장과도 내락이 있었다.

당시 조 사장은 파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철강업계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포철만 해도 조강생산능력에서 세계 제2위로 부상하지 않았습니까. 지금까지 미국, 유럽, 일본등이 세계철강업계의 주도권을 잡아왔지만 이제부터는 국내업계도 국제무대에서 제 위상을 찾아나가야 합니다.

앞으로 우리 철강업계가 국제회의에 인원을 많이 참석시켜 포철뿐 아니라 국내 철강업계의 국제적 위상을 높여 나가겠습니다.“

IISI 파리총회에 앞서 조말수 사장은 그해 여름 동경을 방문, 신일철 뿐 아니라 일본의 주요철강회사를 방문했다. 동경 방문에서 조 사장은 신일철 이마이 사장을 만나 IISI 차기회장에 관한 의견을 주고받았다.

이마이 사장은 조 사장에게 다음해 IISI 총회에서 부회장을 맡을 것을 제의했다. 세계 1위의 철강회사인 신일철과 2위의 포철의 사장들이 막후에서 논의한 사실이었으므로 미국이나 유럽의 철강회사들만 설득하면 IISI 회장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파리에서 열린 IISI총회에서는 우리 철강업계의 위상이 한층 높아졌다. 포철은 조강생산능력 2,000만톤을 초과, 프랑스의 유지노사실로사를 제치고 세계2위의 철강회사로 부상함에 따라 일본의 신일철과 함께 3표의 투표권을 행사했다. 한해전까지만 해도 2표의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했었다.

조 사장은 퇴임후 이에 관해 언급한 적이 있다.

“내가 물러나지 않았다면 IISI 부회장을 맡았을 것입니다. 신일철의 이마이 사장과 이미 다 이야기된 일이었습니다.”

 

총회 후에 열린 7개 분과위원회별 토론회에서는 포철 산하 연구기관인 산업과학기술연구소의 전성일(全聖一) 박사가 경제조사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위원회 회의를 주재하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조 사장이 정 회장을 뛰어넘어 국제적인 단체의 부회장을 맡을 수 있느냐 하는 문제였다. 정 회장은 국내에서 한국철강협회 회장직을 맡고 있고, 조 사장이 세계철강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게다가 정 회장도 조 사장이 IISI 부회장을 위해 뛰고 있음을 파리총회에서 감지했던 것 같다. 신임 경영진 출범 직후 회사내부의 일은 조 사장이 맡고 회사 외부의 일, 즉 국제적인 문제나 기관과 단체에서 회사를 대표하는 일은 정 회장의 몫으로 서로 일을 분담한 터에 조 사장이 정 회장의 영역을 뛰어든 것이다. 게다가 회장을 건너 뛰어서 IISI라는 권위 있는 국제단체의 회장을 꿈꾼다는 게 정 회장으로선 마음에 썩 내키지 않는 일이다..

93년 후반서부터 시작된 경영진 갈등의 뿌리를 여기서 찾는 사람들도 있다. 포철의 홍보팀이 10월을 기점으로 그 전에는 정 회장을 중심으로 인터뷰 등 홍보활동을 펼쳐왔으나, 그 후부터는 조 사장을 중심으로 한 홍보가 전개됐다.

당시 이 일을 추진했던 사람의 말을 인용해보자.

“당시 조말수 사장을 IISI 부회장으로 옹립하는 문제를 조 사장과 장중웅 상무, 그리고 몇 명의 소수 인원만이 알고 추진했습니다. 물론 정 회장에게는 비밀로 했지요. 그런데 IISI 총회가 끝나고 임원 중 한사람이 그 사실을 정 회장에게 알렸습니다. 정 회장은 무척 화를 냈고 그후부터 조 사장을 보는 눈이 달라졌습니다.”

조 사장은 IISI 파리총회에서 돌아온 후 한국철강협회의 일도 손수 챙겼다. 철강협회 내에서 조 사장은 이사 자격을 갖고 있었고, 따라서 철강협회 임원들은 협회장인 정 회장에게만 보고하고 조 사장에겐 보고할 공식적인 의무는 없었다. 그러나 철강협회의 예산중 70%를 대는 포철사장을 무시할 수도 없었고, 철강협회 간부들은 정 회장에게 할 보고자료도 조 사장에게 일단 보여주어야 했다.

(1994년 10월 미국덴버에서 열린 IISI총회에서 김만제 회장이 IISI 부회장에 선임된다. 물론 김 회장의 은 한국철강협회회장을 역임하고 있기 때문에 정 회장과 조 사장의 관계에서 나타난 불협화음은 없었다.)

정 회장과 조 사장은 IISI와 철강협회를 둘러싸고 서로에 대해 감정적으로 상할 수 밖에 없었고, 이러한 감정의 누적은 결국 경영갈등을 초래, 서로에겐 치명상을 입혔다. 김만제 회장이 등장은 이러한 정-조체제의 공조가 무너지면서 생겨난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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