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중랑구와 경기도 구리시 사이에 '망우산(忘憂山)'이 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자신의 묻힐 장지를 건원릉의 위치에 정하고 한양으로 돌아오다가 이 산 언덕에서 '이제 오랜 근심을 잊게 됐다‘(忘憂)라고 말한 데서 유래됐다고 한다. 아차산과 이어져 있는 능선이다.
일제 강점기였던 1930년대 서울에 인구가 몰려들면서 이태원, 미아리 등지의 공동묘지가 수용한계를 넘으면서 공동묘지 대체지역을 찾았다. 일제 경성부(지금의 서울시)는 1933년 당시 경기도 땅이었던 망우산 일대 247만9,000㎡(75만 평)를 공동묘지 부지로 매입하고 이 중 171만9천㎡(52만 평)를 공동묘지로 활용하도록 했다. 이후 경성 사람들은 죽은 후에 대부분 망우 공동묘지에 묻히게 됐다.
2004년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학과의 우동선 교수의 팀이 구리시 아차산성에서 능선을 따라 근대 유구를 찾아 나서면서 표식 없는 망우리 묘역에 안장된 30여명의 역사적 인물의 분묘를 확인했다. 세상을 떠난 독립운동가 상당수가 이 묘지에 비석도 없이 묻혀 있었다. 역사학자 호암 문일평(1888∼1939년), 아동문학가 소파 방정환(1899∼1931년), 의학자이자 사화사업가 오긍선(1879∼1963년), 서예가이며 언론인, 독립유공자 오세창(1864∼1953년), 독립유공자이자 의학자 유상규(1897∼1936년), 독립운동가이며 정치가인 설산 장덕수(1895∼1947년), 죽산 조봉암(1899∼1959년), 만해 한용운(1879∼1944년) 등의 묘가 확인되었다.
이 중에 한용운 묘소는 2012년 10월에 등록문화재 제519호로 문화재청에 등록됐다.
수필가이자 작가인 김영식씨는 십여년전부터 망우리에 뭍힌 역사적 인물의 묘소 위치를 확인하고 묘비의 내용을 분석하는 한편 유가족, 유관단체와 접촉해 한 사람의 인물사를 구성한 다음 그들의 유택과 관련된 이야기를 완성했다. 그는 '그와 나 사이를 걷다-망우리 사잇길에서 읽는 인문학'(2015년)을 출간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동지였던 유상규가 먼저 세상을 뜨자 그를 망우리에 안장한 후 자신을 그 옆에 묻어줄 것을 부탁했다. 안창호 선생의 묘는 1938년 3월10일 별세 후 유지를 따라 유상규 묘역의 윗단에 묘소를 마련했다. 그 후 1973년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도산공원을 조성하면서 묘역도 새로 만들어 미국 LA에 모셔져 있던 부인 이혜련 여사의 유해를 옮겨 와 합장했다. 이에 따라 망우공원의 도산 묘소는 가묘 상태로 존치돼 있다.
망우리 공동묘지는 ‘묘지'의 부정적 이미지를 지우기 위해 '망우리 공원'으로 명칭을 바꿨다가 '망우공원'으로 단순하게 부르고 있다
문화재청은 23일 「망우 독립유공자 묘역」을 문재재로 등록했다.
「망우 독립유공자 묘역」은 일제에 항거해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해 헌신한 공로로 서훈을 받은 한 여덟명의 독립지사를 모신 곳이다.
① 오세창((吳世昌) 묘소 (제691-1호) ② 문일평(文一平) 묘소 (제691-2호) ③ 방정환(方定煥) 묘소 (제691-3호) ④ 오기만(吳基萬) 묘소 (제691-4호) ⑤ 서광조(徐光朝) 묘소 (제691-5호) ⑥ 서동일(徐東日) 묘소 (제691-6호) ⑦ 오재영(吳哉泳) 묘소 (제691-7호) ⑧ 유상규(劉相奎) 묘소 (제691-8호) 등이다.
2012년 문화재로 등록된 ‘만해 한용운’ 선생의 묘소가 함께 자리하고 있다.
한편 문화재청은 이날 「당진 소난지도 의병총」 등 항일독립 문화유산 2건과 근대문화유산으로서 가치가 있는 「영광 원불교 신흥교단 대각전」, 「광주 관덕정」, 「통영 소반장 공방」, 「목포 정광정혜원」, 「수원 구 소화(小花)초등학교」, 「수원 구 부국원」 등 총 8건을 문화재로 등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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