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와의 전쟁⑩…미국, 후세인 후 이라크 석유 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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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와의 전쟁⑩…미국, 후세인 후 이라크 석유 원해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7.10.22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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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전은 석유전쟁…9·11후 석유메이저들 중동에 눈독

 

2001년 ·11 테러 이후 미국의 반 테러 공격이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할 때 수면 아래에서는 언제나 석유의 이해관계를 놓고 협상이 진행됐다. 9·11 이후 세계 석유 시장에 나타난 현상은 미국이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와의 관계가 다소 소원해진 반면 새롭게 석유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러시아와 구 소련에 속했던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미국과 우호관계를 맺었다는 점이다. 그 결과는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국가의 석유 증산으로 나타났고, 석유 시장의 헤게모니를 놓치지 않으려는 사우디와 OPEC의 반격이다.

구소련이 붕괴되기 이전에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의 소비에트 공화국에서 생산된 원유는 하루에 1,250만 배럴에 이르렀다. 사우디의 생산량의 두배에 해당하는 물량이었다. 그러나 구소련이 해체되고 러시아는 가난해졌고, 석유생산시설이 마비됐다. 카자흐스탄, 아제르바이잔, 그루지아등 중앙아시아와 코카서스 지역의 산유 공화국들의 생산시설도 녹슬었다. 이에 따라 구소련 지역에서 원유 생산량은 1996년 현재 700만 배럴로 급감했다. 500만 배럴의 물량이 줄어든 것이다. 중앙아시아에서 감소한 공급분을 사우디와 중동 산유국이 메우면서 다시 중동이 세계 석유시장의 주도권을 장악했다. 사우디와 쿠웨이트는 예비 생산시설을 풀 가동하면서 검은 황금을 땅위로 끌어올렸고, 미국과 유럽, 일본등 선진국들은 중동 산유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갔다.

러시아도 1998년 아시아 위기의 여파로 국가파산을 겪었다. 러시아는 석유에서 나오는 세금이 국가 재정의 40%를 차지하는데 기름 값이 하락하면서 세금이 걷히지 않고, 국채를 발행해 세수 부족분을 메우려다 국가가 부도나고, 루블화를 절하해야 했다. 그러나 1999년 이후 아시아 위기가 해결되고 세계 경기가 살아나자 국제 유가가 배럴당 30달러로 치솟자 러시아는 세금이 잘 걷히고 빠르게 회복됐다. 그때 러시아가 국제석유시장을 장악해야 한다는 것을 절감했다.

9·11 테러를 전후로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산유국들이 생산물량을 하루 100배럴 증산했다. 그동안 경제가 회복돼 석유시설이 재가동됐고, 국영 석유회사를 민영화함으로써 국제 경쟁력을 높였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또 과거 공산시절에 국가가 원유 생산을 통제하던 시스템을 바꿔 국제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맡김으로써 석유 생산과 판매에 자본주의의 시장 원리를 도입했다. 러시아의 루크오일(Lukoil)은 미국의 엑손-모빌(Exxon-Mobil), 영국의 BP-아모코(BP-Amoco)와 셸(Shell)과 함께 세계 석유시장을 움직이는 4자매(four sisters)라고 자부할 정도로 성장했다.

러시아가 공급물량을 늘리면서 9·11 이후 국제원유가격은 최저 배럴당 22달러까지 하락했다. 사우디가 OPEC를 동원해 공급 감소를 주장해도 국제시장은 움직여지지 않았다. 러시아는 과거 구소련의 연방국이었던 중앙아시아 국가를 결합해 사우디가 중심이 된 중동산유국들에 대항할 자세를 보인 것이다. 러시아가 이처럼 사우디에 도전하게 된 것은 석유산업의 경쟁력이 높아진 것도 있지만, 카스피해 연안과 카자흐스탄등지에 새롭게 풍부한 원유 매장지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사우디가 방대한 원유 매장량을 전제로 세계 석유시장을 좌지우지하는데 대항할 능력을 서서히 갖추고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International Energy Agency)의 조사에 따르면 세계 석유수요는 해마다 하루 150~200만 배럴이 증가하고, 앞으로 20년 후에는 현재보다 하루에 770만~1,200만 배럴의 원유가 더 생산되어야 한다.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에 현재까지 신규로 확인된 원유 매장량은 750억 배럴에 해당한다. 중동 지역에 80년대 이후 유전이 새롭게 발견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러시아는 앞으로 석유 개발을 통해 세계 경제를 장악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세계 2위 매장량의 이라크와 3위인 쿠웨이트를 합치면 사우디의 매장량과 엇비슷해진다. 이라크가 90년대초에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유가 충분히 이해될 것이다. 사우디가 매장량과 생산량으로 세계 석유시장을 장악하고, 아랍의 종주국으로서 행세를 할 때 이를 미국이 지원했다. 그렇다면 이라크는 쿠웨이트를 점령, 석유시장에서 사우디의 주도권을 빼았고, 나아가 미국에 붙어사는 사우디 왕가를 아랍권에서 소외시켜 이슬람 아랍의 종주권을 빼앗을수 있게 된다. 이슬람이 사우디에서 창시되었을 뿐이지 중동 아랍세계의 중심은 메소포타미아가 아니던가. 고대 중동의 대제국 바빌로니아의 후세로 자처하는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은 석유시장을 장악함과 동시에 반미 구호를 통해 사우디를 배척하고 아랍 종주권을 되찾고자 했던 것이다. 이에 미국은 세계 석유 수요국인 유럽과 일본의 지원을 받아 쿠웨이트를 되찾아 서방세계에 충분한 원유를 공급하도록 함과 동시에 이라크의 원유 생산을 줄였다.

 

▲ 이라크 북부 키르쿠크 유전에서 원유가 분출하는 모습 /위키피디아

 

미국이 이라크 사태를 국제적 외교채널로 협공하면서 이라크 땅에 묻혀 있는 석유에 대한 주도권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것은 2002년 11월 8일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였다. 이날 미국의 요구로 열린 당시 유엔 안보리는 이라크 무장 해제 결의안을 15대0의 만장일치로 승인했다. 이 결의안은 이라크의 무장해제를 요구하는 것임과 동시에 이라크 유전에 대한 미국 주도권을 사실상 인정하는 것이었다.

안보리 논의의 배경에는 석유 지배권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는 것이 석유전문가들의 해석이다. 미국이 이라크를 점령하면, 세계 2위의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는 유전을 확보, 국제 석유시장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게 된다. 유전개발에 대규모 자본을 투자하고 있는 러시아, 중국, 프랑스는 이라크산 원유의 대량 방출에 따른 유가 하락을 우려, 미국의 전쟁에 반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마지막 협상에서 러시아측 석유사절단이 워싱턴을 방문, 전쟁이 끝난후 유가를 배럴당 20 달러대로 유지하고, 이라크에 투자한 러시아 자금 100억 달러를 회수하도록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미국은 러시아에 경제적 피해가 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는 중동지역에 운항중이던 유조선이 테러 공격을 받아 더 이상 미국의 전쟁을 저지하기 힘들었으며, 경제안정을 위해 유가 하락이 필요하다는 인식으로 미국과 대타협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산유국인 멕시코도 처음엔 이라크 공격에 반대했으나, 원유가를 안정시킬 것이라는 명분을 얻어 돌아섰으며, 시리아는 홀로 반대할 경우 미국의 금수조치(엠바고) 제재가 두려워 결의안에 찬성했다

이라크 반정부단체들은 미국과 영국이 이라크를 점령, 사담 후세인 대통령을 제거할 경우 원유 공급권을 미국과 영국에 제공할 것임을 밝히고 있다. 이에 러시아는 이미 투자한 이라크의 유전 개발권을 인정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이에 대해 모른척 했다 러시아를 안달하게 하려는 속셈이었다.

 

이라크는 걸프전 이전에 하루에 500만 배럴을 생산, 사우디 아라비아에 버금가는 산유국이었으나, 패전 이후 이라크 국민들의 생계를 유지하는 선에서 하루 150만 배럴로 생산이 제한되었다. 전문가들은 미국에 의해 후세인이 축출되고, 그후 이라크에 대한 석유 금수조치가 풀리면 국제유가가 배럴당 20달러 이하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그렇게 되면 미국은 유가를 떨어뜨려 미국인들에겐 세금 감면의 혜택을 주고, 장기적으로 안전한 석유공급원을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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