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소개한 기사를 썼다는 이유로 북한이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기자를 향해 “공화국의 존엄을 엄중히 모독하는 특대형 범죄를 감행했다”고 엄포를 놓았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래서 더 궁금했다. 도대체 무슨 내용이길래, 북한이 이리도 협박을 할까, 궁금해서 책을 구입해 읽어 보았다. 북한의 협박이 남한 사람들에게 오히려 이 책을 더 읽도록 홍보해준 결과가 된 셈이다.
책 제목부터 눈길을 끈다. 『조선자본주의공화국』이다. 북한의 공식 국명은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이고 공산주의 체제다. 그런데 조선자본주의공화국이라는 제목이 흥미롭다. 책표지엔 미국 달러화가 하늘에서 빛나고 핸드폰과 돈다발이 그려져 있다.
로이터통신 서울 주재 특파원 제임스 피어슨(James Pearson)과 이코노미스트 한국 특파원으로 근무했던 대니얼 튜터(Daniel Tudor)가 공동집필한 책이다. 스키니진, BB크림, 스마트폰 등이 인기를 끄는 북한 내부의 변화와 주민 생활상을 기자의 시각으로 가감 없이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영국 국적의 두 기자가 쓴 이 책의 원제는 ‘North Korea Confidential’으로, 2015년 해외에서 먼저 출간됐다.
책을 읽어보면, 남한에 알려진 것보다 북한에 자본주의적 요소가 많이 확산되고 있음을 느꼈다. 1990년대 중반 수십만명을 아사로 몰아 넣은 대기근을 겪으면서 국가가 더 이상 인민들에게 식량을 배급할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고, 백성들도 더 이상 국가에 기대하지 않는 상황이 되면서 자생적으로 자본주의가 발생, 확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두 영국기자는 북한의 장마당의 확산에 관심을 집중했다.
끔찍한 대기근을 겪으면서, 더 이상 배급에 기댈 수 없게 된 이들은 저마다 살아남기 위해 사적 거래의 장을 펼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서는 일종의 ‘이중경제’가 존재하게 된다. 하나는 국가가 정해 준 직장에서 받는 형편없는 월급과, 다른 하나는 합법적이지 않지만 사적으로 넓게 통용되는 방식, 즉 ‘회색시장’에서 얻는 돈이다. 그리고 북한의 지배층 또한 이 같은 회색경제에 대해 암묵적인 공모의 역할을 하고 있다.
<스키니 진을 입은 북한, 그들의 은밀한 여가 생활> “북한주민들은 여가를 누리기 위한 비밀스러운 방법을 찾고 있다. 예컨대 KBS나 중국을 통해 송신되는 한국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신호가 잡히는 곳에선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다. 더구나 영화나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DVD나 USB 메모리 스틱을 통해 중국에서 수입되고, 장마당에서는 놀랄 만큼 많은 이들에게 팔려 나간다. 체제에 대한 충성심의 약화 때문인지, 단순히 외국 매체와 방송을 본 사람들도 뇌물만 건넬 수 있다면 대개 처벌받지 않는다. 각종 그림책(만화) 또한 ‘책매대’라는 이동식 노점 책방을 통해 구할 수 있으며, 최근 평양의 엘리트들은 태블릿을 일종의 신분적 상징으로 여기기도 한다. 이른바 평해튼(평양+맨해튼의 합성어)에서,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모바일 기기에 시선을 빼앗긴 남녀의 모습은 이제 흔한 풍경이 되었다. 북한의 보통 사람들은 음주가무 또한 즐겨서, 공원에서 사람들이 모여 ‘평양소주’나 ‘대동강 맥주’를 마시는 풍경을 흔히 볼 수 있다. 다만 가닌한 사람들은 대부분 집에서 만든 밀주를 즐긴다. 그들은 사회 계급을 불문하고 서로의 집에 모여서 파티를 열기도 한다. 담배 산업도 한창이다. 김정은은 ‘727’이라는 값비싼 담배를 좋아한다. 이외에도 ‘새봄’, ‘크레이븐 A’, ‘아침’ 등 수많은 담배들이 있고 이 중 일부는 중동에 수출되어 북한 권력층에게 짭짤한 수익을 준다. 북한에서의 패션은 보수적이고 의류 범죄와 패션 경찰이 존재하지만,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북한의 패션 수도로 일컬어지는 청진은 북한 최초로 스키니 진이 인기를 끈 지역이다. 당연히 스키니 진이나 몸매를 드러내는 옷은 금지되어 있지만, 이처럼 맵시를 과시하는 것이 북한의 젊은 여성에게는 해방감을 주는 경험으로 여겨진다. 청바지는 여전히 미국산이라는 이유로 단속의 대상이 된다. 미용 상품 수입도 활발해서 중국에서 BB크림을 수입하고, 젊은 여성 사이에서는 불법적이지만, 쌍꺼풀 수술이 확산되고 있다. 이처럼 패션이나 미용 분야의 확산에는 한국 TV와 영화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한다.“ (출판사 서평) |
그렇다면 북한의 시장경제 확산이 북한 체제를 뒤집을수 있을까. 저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답변한다. 아직도 강력한 감시구조와 감옥(수용소)가 있기 때문이다.
<장마당이 북한체제 뒤집을까> “북한 주민들에게 불어 닥친 자본주의적 바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견고한 체제와 형벌의 시스템도 있다. 김정은이 물려받은 체제는 김씨 일가의 개인숭배에 기반을 두며, 김정은 개인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한다. 특히 조직지도부는 “모든 것을 보고 모든 것을 아는” 국가의 유일한 부서로, 김정일 시기부터 국가를 통제하는 주요 수단으로 활용되어 왔다. 또한 개인비서국은 최고 지도자인 김정은의 일정을 짜고 경호를 조정하는 등의 역할을 하며 체제를 강화한다. 다만 여기에는 일종의 힘의 균형이 작용한다. 김정은이 각 부서의 막강한 힘을 위시해 북한을 모조리 장악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각자의 이해관계와 다른 성향을 가진 권력자들로 이뤄진 층위가 존재하는 것이다. 최룡해 실각설을 비롯해 이른바 ‘장성택 라인’의 부상과 축출도 이와 관련이 있다. 이는 김정은뿐만 아니라 어느 개인도 북한을 홀로 좌지우지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더불어 북한에는 일반 범죄자를 다루는 인민보안부(현 인민보안성)의 비정치적 수용소도 존재하지만, 문제는 정치범수용소다. 북한의 비밀경찰과도 같은 국가안전보위부(현 국가안전보위성)가 책임지는 정치범수용소는 사실상 사법 체계의 바깥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바일 통신망인 ‘고려링크’와 공무원 등에 대한 감시를 비롯해, 정치적인 의심이 있는 대상자를 조사한다. 누군가 심문소로 끌려가 혹독한 심문을 당하고 유죄를 받아 정치범수용소로 가게 된다면, 그 과정에서 국가안전보위부는 막대한 자의적 힘을 행사한다. 각종 ‘구역’으로 나눠진 정치범수용소가 ‘돌아오지 못할 지점’이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출판사 서평) |
그러면 『조선자본주의공화국』의 국내 발간에 북한이 협박을 한 까닭은 무엇일까.
그들의 존엄을 모독했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북한에서 신격화하는 김일성을 끌어내렸다. 다음 문장을 보자.
“김일성이 북한의 지도자로 부상하는 데 굉장한 운이 따랐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
그는 교육이 부족한 인물로 간주됐다. 심지어 한국어 실력도 떨어졌다. 해외에서 너무 오랜 시간을 보낸 결과였다. 그를 북한 괴뢰 정부의 미래일원으로 봤던 소련 관료들은 그가 마르크스 이론 시험에서 거둔 성적을 보고 실망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김일성은 악명높은 소련 비밀경찰의 우두머리인 라브렌티 베리야의 눈에 들었고..[…] 김일성처럼 자기모순적인 지도자가 출현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그리 놀랍지만은 않다.“
김정일, 김정은에 대해서도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이 책은 신성화를 무시했다.
그렇다면 북한은 어떻게 될 것인가. 저자들은 결국엔 국가 개방으로 갈 것으로 보았다. 두 영국 기자는 북한 정부의 사실상 파산상태와 체제 불안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처한 지정학적 환경이 놀랄 만큼 잘 균형 잡혀 있다고 말한다.
저자들은 중기적으로 북한에 일어날 가능성이 큰 시나리오로 “현 정권 지배하에서의 점진적 국가 개방”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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