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수에세이] 북악스카이웨이, 도심 속의 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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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수에세이] 북악스카이웨이, 도심 속의 여유
  • 조병수 프리랜서
  • 승인 2017.09.09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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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수 프리랜서] 8월 하순의 어느 날, 요즘 들어 보기 드물게 청명한 날씨다. ‘그래, 하늘이 이 정도는 되어야지. 전에는 그래도 파란 하늘, 맑은 공기였는데···.’

늦은 오후에 신촌과 광화문을 오가다가 불현듯 북악스카이웨이 생각이 났다. 이런 날에 그리로 가면 멋질 것 같았다.

 

청운파출소를 끼고 옛길을 따라 자하문 고개로 올라가 본다. 자하문 터널이 생기고 난 뒤로는 웬만해서는 들릴 일이 없던 길이다. 청와대 쪽에서 연결되는 길 주변은 조금 낯설어졌지만, 그래도 이 고갯길만은 여전히 옛 정취가 남아있다.

1968년 1·21 무장공비 침투사건 때 청와대로 향하던 공비(共匪)들을 저지하다가 전사한 경찰관들의 동상과 비석들도 여전하다. 벌써 반세기 전의 도발(挑發)인데, 요즘은 "미사일이니, 핵이니" 하고 있다.

고개마루에 차들이 붐빈다. “근처에 안개가 많이 끼어서 자하동(洞)이라고 했고, 그 동네에 있는 문이라서 자하문(紫霞門)이라고 불린다”는 그 ‘창의문(彰義門)’은 쳐다 볼 겨를도 없다.

그곳에서 정릉 아리랑고개에 이르는 길이 약 8km의 2차선 도로가 ‘북악스카이웨이’이다. 무장공비사건이 일어난 그 해 9월, 수도(首都)방위와 관광도로 겸해서 개통된 길이란다.

 

오르막길로 들어서서 꼬불꼬불 돌다 보니 어느새 팔각정이다. 평일 날 늦은 오후라서 그런지, 주차장 입구 쪽이 텅 비어있다. 간혹 한번씩 올라왔어도 늘어선 차들 때문에 그냥 스쳐가기만 했었는데, 왠 횡재냐 싶다.

펼쳐지는 녹색과 시가지 모습에 눈과 마음이 시원해진다. 저 멀리 반짝이며 흐르는 한강물까지 선명하다. 모처럼만에 맑은 날씨 덕을 본다. 대도시의 중심 높다란 곳에 이런 공간이 있어서 좋다.

한때 ‘대남문이니, 비봉이니’ 하고 오르내리던 산등성이도 살갑게 다가선다. 그 아래로 예전에 살던 동네 쪽을 더듬어 본다. 언젠가 저 산에 다시 한번 올라가보고 싶다.

 

팔각정공원에도 사람들이 별로 없다. 오랜만에 여유롭게 서울의 향기를 느낄 수 있어서 좋다. 이렇게 좀 덜 붐비고 살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늘 이렇게 맑은 하늘이면 얼마나 행복할까도 싶고···.

북악스카이웨이, 그 호젓함이 좋아서 북악터널을 마다하고 일부러 이 산길로 돌아가곤 하던 때가 벌써 40여년 전이다. 그래도 이곳만은 큰 변화 없이 그대로 있어주어서 고맙다.

 

▲ 북악스카이웨이 팔각정 /사진=조병수

 

내려가는 길에, 성북동 골목 성벽아래쪽으로 예전에 자주 들르던 ‘···국시’ 집을 찾았다. 한창 때는 수육에다 칼국수를 곱빼기로 먹고도 젓가락이 녹는 듯 했는데, 이젠 그냥 국수 한 그릇도 부대낀다. 세월이 많이 흐른 모양이다.

한적하던 길에 오가는 차들이 많아지고 곳곳에 주차위반 감시카메라가 돌고는 있지만, 그런대로 옛모습이 남아있어서 반갑다. 늘 우리 곁에 가까이 있는 이 여유로움을 왜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지냈는지 안타깝다.

 

파스칼은 “인간의 모든 문제는 홀로 방안에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는 말을 남겼다고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차분한 마음을 안겨주는 자연 그대로의 공간들이 우리 곁에 남아 있으니, 바깥나들이가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자연 그대로’라는 낱말에, 며칠 전, 새로 뚫린 홍천-양양간 고속도로를 달릴 때의 느낌이 떠오른다. 동해의 푸른 물과 태백준령의 산하를 만끽하고 싶었지만, 절반의 성공이었다. 아름다운 산천경관(景觀)은 간곳없고, 온통 회색 빛 터널뿐이었다.

빠름을 찾아 그 긴 터널을 뚫느라 엄청난 고생을 한 분들의 노력은, 눈 쌓이는 겨울철에나 빛을 발할 것 같다.

 

한창 뉴스에 오르내리던 “자연을 품은 내린천 휴게소”는, 말 그대로 ‘위용(威容)’ 이었다. 잔뜩 호사(豪奢)를 부린 시설물들이 왠지 내게는 부자연스럽게만 보였다. 지금은 사라진 청계고가도로를 만들고 우리의 발전상을 자랑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그냥 소박하게 자연에 안겨있으면 좋았을 텐데, 왜 자연마저 품으려고 했는지 모르겠다. 알프스 산록의 여유롭고 목가적인 공간 같은 것을 고려해볼 순 없었을까 싶기도 하고···.

휴가철이고 휴일임에도, 비가 내려서인지 동해안 바닷가는 한결 여유로웠다. 비바람과 거센 파도 몰아치는 해변에서 잠시나마 자연에의 경외감을 맛보고는, 옛길을 타고 돌아왔다. “인생의 여로에도 가끔씩 돌아가라는 푯말이 붙는다”는데, 산천경계 둘러보는데 한두 시간 더 걸리면 어떠랴 싶었다.

이런 한가로움을 선택할 수 있는 것만도 고마운 일 아닌가? 그나마 이리저리 새 길들이 뚫리지 않았으면 이만한 여유도 즐길 수 없었을 테니 말이다.

 

▲ 속초 장사항 부근 해안 /사진=조병수

 

‘자연(自然)스러움’을 찾는 마음이 북악(北岳)과 동해(東海)를 오갈 때, 시가지에는 어느덧 어둠이 내려 깔렸다. 오랜만에 "내 놀던 옛 동산에 오늘 와 다시 보니", 왠지 기분이 촉촉해진다.

가로등 불빛 속에 정겨운 도읍지(都邑地)를 돌아 나오려니, 아일랜드 옛 민요(民謠)를 재구성했다는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의 시(詩) 구절이 흥얼거려진다.

“···강둑에 풀들이 자라듯 인생을 느긋하게 살라고 했지만

···She bid me take life easy, as the grass grows on the weirs;

그때 나는 젊고 어리석었기에

But I was young and foolish,

지금은 눈물이 가득합니다.”

and now am full of tears.

(『Down by the Salley Gardens(버드나무 정원 아래에서)』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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