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수 에세이] 한여름밤 조지워싱턴 브리지 건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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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수 에세이] 한여름밤 조지워싱턴 브리지 건너기
  • 조병수 프리랜서
  • 승인 2017.07.26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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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객기는 취중 낭만일지언정 삶과 가족에 대한 의무 소홀히 한 것

 

[조병수 프리랜서] 허드슨강(江)을 가로질러 뉴욕 맨하탄 섬 북부 워싱턴하이츠(Washington Heights)와 뉴저지주(州) 포트리(Fort Lee)를 잇는 길이 1,450미터, 폭 36미터, 높이 184미터 규모의 현수교인 조지워싱턴 브리지(George Washington Bridge)를, 우리끼리는 말하기 쉽게 ‘조 다리’라고 부르곤 했다.

처음 뉴욕에 갔을 때는 이 장대한 다리가 허드슨강 위로 높다랗게 철제 케이블에 매달려 있는 것이 무척이나 신기했다. 1927년 10월 착공, 1931년 10월 상부(上部)층 6차선 개통, 1946년 2개 차선 추가, 그리고 착공한지 35년만인 1962년 10월에 6차선의 하부(下部)층이 완공된 다리이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교통량이 많은 다리로서, 미국의 주간(州間)고속도로 I-95와 2개의 국도(US Route 1, 9)가 걸쳐져 있고, 하루 통행량이 약 28만대나 된다고 한다.

이런 규모의 다리가 마차들이나 다녔을 시기에 만들어지기 시작했다니, 이 사람들의 미래에 대한 혜안(慧眼)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 뉴저지주 포트리 쪽에서 바라본 조지워싱턴 브f리지 /사진=조병수

 

뉴저지에서 다리나 터널을 통해서 뉴욕 쪽으로 갈 때는 통행료(toll)를 내게 된다. 뉴욕에서 뉴저지로 갈 때는 통행료가 없지만, 그 편도(片道)통행료가 만만치 않다. 1990년대에 2달러 남짓하던 ‘조 다리’ 통행료가 지금은 현금기준으로 15달러라고 한다. 한두 시간에 30달러가 넘는 주차비용까지 감안한다면, 예나 지금이나 차 끌고 맨해튼 시내에 나가기도 쉽지는 않은 것 같다.

 

1990년대 초에는 한국에서 나간 주재원들의 대부분이 맨해튼 서쪽의 허드슨강 건너 뉴저지주에 살았었기에, 어지간해서는 승용차보다는 42가에 있는 버스터미널과 뉴저지를 오가는 버스들을 타고 출퇴근을 했다.

시장기가 감도는 퇴근 길에 그 버스를 타러 동료들과 함께 터미널로 향하다 보면, 도처에 널려있는 깔딱고개를 그냥 넘어가기가 쉽지 않았다. 길가의 식당이나 바(bar)들을 지나치다가 누군가의 입에서 “딱 맥주 한잔씩”이라는 말만 나오면, 사양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면서 서로의 이야기 보따리를 풀다가 보면 그만 발동이 걸려 버린다. 버스 타려고 터미널까지 갔다가도, 마지막 관문인 터미널 간이주점에서 막차까지 다 떠나 보내고는 콜택시를 불러서 가는 촌극도 벌어지곤 했다.

 

그러니 이래서 늦고, 일 많아서 늦고, 매일이 야근이 되어버린다. 생각만큼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은 해외생활과 일에 지치고 힘들어 하면서도, 틈틈이 그런 낭만도 어우러지는 날들이 이어져 갔다.

 

그러던 어느 여름 날, 사무실 근처에서 빈속으로 맥주 몇 잔씩 하다가 보니 어느새 버스편이 끊어질 시간이 되어버렸다. 다른 방향의 동료들은 콜택시를 불러서 떠나고, 같은 방향에 사는 과장과 둘이 남게 되었다. 마침 시내전철은 다니는 시간이니, 택시비도 아낄 겸 조지워싱턴 브리지 터미널까지 전철을 타고 가서 ‘조 다리’만 건너가면 그 과장 댁에서 픽업을 나오는 걸로 하고는 전철을 타고 올라갔다.

그런데 그곳에서도 뉴저지 쪽으로 건너가는 버스들이 이미 끊겨있었다. 요즈음처럼 휴대폰이라도 있었으면 ‘다리를 건너서 데리러 오라’고 하겠지만, 우리를 픽업할 차로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그 버스터미널에서 한 정거장거리, 바로 다리만 건너면 있는 포트리 어느 햄버거가게 앞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음에도···.

가로등 불빛만 처연(凄然)한 인적 없는 터미널에서 ‘조 다리’로 연결된 도로를 망연(茫然)히 바라보다가,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는 객기(客氣)가 발동되었다. 다리를 걸어서 가자는데 의기가 투합된 것이다.

그런데 막상 걸어가겠다고 다리 쪽으로 나아갔더니, 그 다리의 인도(人道) 출입문이 닫혀있었다. 하지만 1킬로미터 남짓만 걸어가면 차가 기다리고 있고, 달리 대안도 없던 사나이들에게 그 나지막한 쇠창살 문은 장애가 될 수 없었다. 다리 난간을 잡고 그 문을 타넘어 전진하기 시작했다.

다리를 매달고 있는 거대한 철사 줄 덩어리의 위용과 양쪽 강가의 절벽들, 그리고 캄캄한 강 위를 걷는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서 노래를 부르며 걸어가는 그 기분은 정말 짜릿했다. “수많은 교포나 주재원들 중에 우리같이 ‘조 다리’를 걸어간 사람이 있으면 나와보라고 그래!”라고 소리도 질러보았다.

 

까마득한 아래로,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강물을 내려다보며 세상을 발 아래로 보는듯한 기분으로 호쾌하게 웃음을 터트리던 그 밤의 허세(虛勢)는, 나중에 되돌아보니, 정말 어이없는 객기(客氣)였고 아찔했던 순간들이었다.

늦은 밤에, 요란하게 달리는 자동차 불빛만 간간히 보이는 캄캄한 다리를 그렇게 호기롭게 걸어갈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빈속에 들어간 몹쓸 알코올 기운이 남아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인적도 없는 밤중에 닫혀있는 출입문을 타넘다가, 까마득한 다리 위에서 칠흑 같은 강물을 내다보다가, 순간적으로 삐끗했으면 어쩔 뻔했나 싶었다. 남의 나라, 남의 땅에서 한밤중에 멋모르고 다리를 건너가다가 큰일 낼 뻔 했던 것이다. 그런 무모함을 취중(醉中)의 낭만이라고 치부하기엔 내 삶과 가족에 대한 의무를 소홀히 여긴 것만 같았다.

 

원래 술에 약한 체질이지만, 어쨌거나 그렇게 일을 핑계로, 분위기를 명분으로 젖어 들어가던 그 술에 대해서, 언젠가 어느 목사님이 주일 설교에서 이렇게 얘기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술은 중독성과 의존성이 있는 것이니 끊어야 된다.

소주 처음 먹는 사람들은 다 칵칵 거리며 ‘이 독한 것 뭣 하러 먹느냐?’고 한다.

소주가 바나나우유보다 맛있는가?

그런데 속 상한다고, 기분 좋다고, 바나나우유 먹으러 가자는 사람 있느냐?

그 맛없는 술을 먹는 것은 중독되고, 괜히 그 술에 의존해서 무언가 해보려는 것이다.

그러니 끊어야 한다.”

 

요즈음도 곳곳에 높다랗게 걸려있는 다리들을 지나다 보면, 그 여름 밤 조지워싱턴 다리 위의 적막했던 분위기와 몇 잔의 술기운에 호기롭던 그때의 모습들이 떠올리며 남모르는 미소를 짓곤 한다. ‘역시 술은 문제가 있어’라는 생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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