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수 에세이] 피서지에서 생긴 일③…못다 한 휴가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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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수 에세이] 피서지에서 생긴 일③…못다 한 휴가여행
  • 조병수 프리랜서
  • 승인 2017.07.11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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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던진 공을 꼭 받아야 할 필요는 없는데···색다른 체험에의 감사

[조병수 프리랜서] 이른 아침부터 모두들 놀라고 신경을 써서 피곤한데다가, 밤중에 병원에서 다시 추가 조치를 받고 나니까 조금 안심이 되어서 일단 디종 시내 호텔에서 쉬고 아침에 다시 출발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절대 자기 차를 두고 갈 수가 없다고 하니까 어떻게든 런던으로 차를 끌고 가야 할 텐데, 이 상태로는 더 이상 운전도 어려워 보였다. 그래서 내 가족과 차를 그곳 호텔에 머물게 하고, 내가 그 친구 차를 몰아서 런던에다 데려다 주고 오겠다고 했다. ‘내가 런던에서 디종으로 차를 가지러 오는 교통비만큼은 자네가 부담하라’고 했더니, 그러겠다고 했다.
그런데 막상 다음날 아침 그 친구 차로 출발하려는데, 아내가 “무조건 같이 가겠다”는 것이었다. 생판 어딘지도 모르고 말도 안 통하는 도시에서 혼자 어린아이 데리고 방안에서 지내려니 막막했던 모양이었다. 거기다가 아침에 호텔복도에 나갔다가 발가벗고 걸어 다니는 남자를 보고는 기겁을 했고···.
밤에 아무렇게나 찾아 든 호텔이라 그 지역 성향조차 알 길이 없는 곳에 아내와 아이를 두고 떠나기도 황당했다. 그리고 내 가족도 내가 지켜야 했다. 그래서 무리를 해서라도 파리까지 가서 아내와 아이를 두고 움직일 요량으로, 내 차만 그 호텔에 남겨두고 그 친구 차에 두 가족이 같이 타고 출발했다.
그런데 디종에서 파리 쪽으로 네 시간 가까운 거리를 달리다가 보니까 그 친구의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그래서 파리의 드골 공항으로 가서 그 친구가족들을 비행기로 태워 보내고 나는 그 친구 차로 나의 가족들과 함께 런던으로 가기로 또다시 계획을 수정했다.

공항에서 환자의 상태를 설명했더니, "비행기내에서 특별 관리를 받았고, 런던에 도착하니까 바로  구급차가 대기하고 있다가 병원으로 옮겨서 치료를 받게 되었다"고 한다.

그 친구를 그렇게 비행기에 태워 보내고 난 뒤, 나는 또다시 깔레(Calais)에서 출발하는 카페리 시간에 맞추느라 정신 없이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어쨌든 마지막 배편을 타야 새벽녘에라도 런던에 도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가보고 싶던 파리를 지나치면서도 구경도 못해보고, 차는 프랑스 중부의 낯선 도시 디종에 내버려둔 채, 남의 파국을 막아주려고, 남의 차를 끌고, 남의 집 앞에 시간 맞춰 대령해놓기 위해서, 깔레로 가는 고속도로를 엄청난 속도로 내닫는 그 기분을 어느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완곡히 거절했건만, 끝까지 고집을 피우더니 결국 이게 무슨 꼴이람’ 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어차피 닥친 일이니 사람은 살려놓아야겠고, 같이 여행을 간 동료로서 도와주기는 해야 했지만, 그래도 '도대체 무슨 이런 경우가 있나?' 싶었다.
그렇게 해서 겨우 마지막 배를 타고 도버에 도착하니 한 밤중이었다. 연 이틀을 잠시도 쉬지 못하고 긴장 속에 내달린 몸이라, 영국에 도착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피곤이 몰려오는지 제대로 운전을 할 수가 없었다. 당시만 해도 영국의 고속도로에서는 운전을 해볼 엄두도 못 내던 아내가 옆에서 이야기를 걸고는 했지만, 아내 역시 엄청 피곤했던 터였다.
어찌 달리다가 보면 어느 틈엔가 고속도로의 차선이 차 중간에 와있는 것을 보고는 화들짝 놀라기를 반복했다. 더 이상 견디기 힘들면 손바닥으로 뺨을 때려가면서 쏟아지는 잠과 싸웠지만, 그 무거운 눈꺼풀을 감당하기란 역부족이었다.
그럴 땐 어쩔 수 없이 고속도로 갓길에 차를 세우고 잠깐씩 눈을 붙여가는 악전고투 끝에, 새벽 녘에야 간신히 그 친구 집 앞에다 차를 세워줄 수 있었다.

그런 생고생 끝에 집에 돌아와서 잠에 곯아떨어졌다가 깨어나보니, 정말 어이가 없었다. '이게 무슨 경우인가? 내 휴가는 어디로 날아가 버렸는가?' 그리고 혼자서 다시 프랑스로 날아가서 차를 가져올 일도 막막하였다. 이틀이나 걸리는 그 먼 길을 혼자서 다시 운전해올 자신이 없었다.
더군다나 그날이 목요일이었다. ‘일요일까지 사흘 넘게 휴가날짜는 남았고, 어차피 내 비행기 값은 그 친구가 부담하기로 했으니 아내와 딸애 것만 부담하면 다시 날아가서 며칠 더 돌아볼 수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그날 오후에 가족과 함께 다시 파리 행 비행기에 올랐다. 애당초 휴가계획에는 없었지만 꿈에 그리던 파리를 가게 된 것이다. 개선문 주변과 샹젤리제 거리도 거닐어보고, 뒷골목의 맛있는 음식도 맛보고, 에펠탑의 야경과 센 강 유람선 관광도 하면서 파리에서의 하루 밤을 지냈다.
그리고는 다음날 아침에 테제베(TGV) 열차를 타고 디종으로 향했다. 생전처음으로 타보는 고속철 열차의 출입구에 가방 등을 놓는 공간이 따로 있는 것이 신기했다. 그 당시로는 처음 보는 문화였다. 더구나 비행기 같은 좌석에다가, 빠르면서도 부드럽게 달리는 열차의 창가로 펼쳐지는 광활한 프랑스 평원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디종의 호텔에 세워둔 차를 찾아서 또다시 정신 없이 달리는 ‘실적 채우기 여행’을 시작했다. 남은 휴가 시간이 아까웠다. 처음 예정에 두었던 북부 이태리지역까지는 갈 수 없었지만, 남은 3일 동안 가볼 수 있는 데까지는 달려보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다시 스위스의 루체른(Luzern)호수 주변도 돌아보고, 또다시 밤잠을 자지 않고 스위스 산악지대를 넘나들며 새벽녘에 독일의 하이델베르크(Heidelberg)로 올라왔다.
그렇게 밤낮없이 달리고 있을 때, 늦은 밤 독일의 고속도로 휴게소 주차장에서 커피를 끓여 마시는 여행객들의 낭만이 참 부러워 보였다. 그곳에 주차한 채로 차 안에서 잠시 눈을 부치고는, 퉁퉁 부은 채로 네카어(Neckar)강가의 어느 호텔 화장실에서 잠깐 얼굴을 닦는 실례를 범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새벽의 하이델베르크 대학가와 황량한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동이 트고 하이델베르크 고성(Heidelberg Schloss)의 문이 열릴 때를 기다렸다.
그리고 『황태자의 첫사랑』이란 영화에 나오는 맥주집(Gasthof zum Roten Ochsen)의 오래된 목조의자와 탁자들을 보면서 옛 것들을 잘 간수하는 선진국의 모습에 감명을 받기도 하고, 헤겔, 야스퍼스, 하이데거 등 여러 철학자들이 산책하며 명상에 잠기고 영감을 얻었다는 철학자의 길(Philospenweg)을 찾아보기도 했다.
그때 네카어 강가에서 하이델베르크 성(城)과 칼 테오도르 다리(Karl-Teodor Brucke)를 배경으로 찍은 딸아이의 사진은, 내 마음 속의 아름다운 장면으로 고이 간직하고 있다.

 

▲ 하이델배르크 고성 /사진=조병수

하이델베르크를 떠나서 또다시 프랑스 칼레를 향해서 전속력으로 내달렸다. 6시간 넘게 달려서 카페리 출발시간에 맞추고, 도버해협을 건넜다. 그리고는 런던까지의 밤길을 다시금 비몽사몽간에 운전해서야 간신히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 때는 어디서 그런 어리석은 용기와 기백이 나왔는지는 모르지만, 밤잠을 자지 않고 달리는 중에 정말 아찔아찔한 순간들이 많았다. 돌이켜보면, 그런 위험을 불사(不辭)하던 무모한 시절을 무사히 지나온 것만도 큰 축복이요, 감사할 일이라 하겠다.

그런데 여름휴가가 끝나고 피서지에서 생긴 일의 충격도 일상에 묻혀져 갈 즈음까지도 그 친구로부터 고맙다는 말을 제대로 들어보지 못했다. 
그 친구로서도 예상치 못한 불상사였겠지만, 나로서는 일생에서 한번 가볼까 말까 한 나라들로의 휴가여행마저 중단되었다. 그리고 꼬박 이틀에 걸쳐 밤잠도 못 자고 목숨을 건 후송조치를 했던 덕분에, 그 친구는 직장에서도 별 탈 없이 넘어가고 상처도 완전히 치료되어 정상화 되었다.
그런데도 감사는커녕 오히려 쭈뼛쭈뼛 피하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되니까, 삶과 사람들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되었다. 사실 그 정도의 상황이었으면 전투에 같이 참가한 전우애(戰友愛) 같은 것도 생겼을 법한데, 참 희한하게 발전된 경우였다.
어쨌거나 그냥 모든 것을 잊어버리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래야 내가 편해질 것이기에···.

리차드 칼슨이 쓴 『사소한 것에 목숨 걸지 마라』라는 책에서, “누군가가 공을 던진다고 해서 그것을 꼭 받아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라는 장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본 적이 있다.

“친구가 당신을 끌어들이려고 유혹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당신이 그 일에 끼어 들 필요는 없다는 뜻입니다. 만약에 당신이 그 미끼를 물지 않는다면, 친구는 아마 다른 누군가를 불러 그가 자신의 일에 끼어 들 자세가 되어 있는지 알아 볼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이 희생당한 듯한 기분을 느끼거나 분개해 있거나 압도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않도록 자신에게 던져진 공을 받아야 할 때를 잘 아는 것입니다.”
이제는 생각도 가물가물한 옛이야기지만, 그 때 차라리 처음부터 별로 내키지 않는 동반여행을 처음에 딱 잘라서 거절했더라면 나중에 더 서운한 마음도 없었을 것이고, 서로 쭈뼛쭈뼛한 관계로 가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괜스레 마음이 약해져서 동의했다가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관계도 소원해지는 경우가 된 것 같아서이다.
물론 그 일로 인하여 개인적으로 기회와 비용측면에서 손실도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일련의 과정을 통하여 색다른 체험들을 하게 되었으니 감사한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어쨌거나 그만하기가 참으로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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