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의 현대사를 살아간 홍상화 『우리집 여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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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현대사를 살아간 홍상화 『우리집 여인들』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7.06.26 15: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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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를 지탱하는 힘은 이념과 남성이 아니라 여성임을 드러내다

 

원로작가 홍상화의 『우리집 여인들』(2006년 랜덤하우스코리아)은 작가 자신의 집안 여인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연작소설이다.

육촌누이, 외숙모, 외사촌 부인, 큰고모, 사촌 여동생 등 8명의 여인들을 소재로 험난한 한국 현대사를 살아오며 말썽만 일으키는 남성들 그늘 속에서 슬기롭게 어려움을 극복해온 이들을 그려낸 단편을 모은 작품집이다. 홍상화는 『우리집 여인들』에서 세계에 내세울만한 한국의 여심을 보여주었다.

▲ /책표지

작가는 자신의 집안 여인들을 통해 가족사의 소설적 진실을 캐들어 갔다. 6.25의 이산부부의 삶을 보여주고, 그 끈질긴 여성의 생명성은 지금 우리 시대의 여심에도 면면히 흐르게 했다.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열 살 소년의 눈으로 나는 전쟁의 잔혹함을 말없이 이겨내는 여인들을 보았다. 또한 그런 여인들의 마음자리에 전쟁 후 찾아온 어떤 참혹한 빈곤도 한 가닥 구김을 남길 수 없다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흘러 드디어 풍요가 찾아왔고, 그 풍요와 함께 어쩔 수 없는 이기심 또한 도래했으나 그것마저도 그런 여인들을 손대지는 못했다. 그런 여인들의 이야기가 이 연작소설의 내용이다.”

홍상화는 작품 곳곳에 한국 여심을 오늘에 드러내는 작가 의식을 생생히 드러내며 여성의 모성성, 대지적 생산성, 희생성 등이 여성에 대한 원초적, 전통적, 관념적인 차원의 것이 아니라 오늘의 현실에서도 여전히 인간과 사회를 지탱하는 힘임을 드러냈다. 사회를 지탱하고 이끄는 것은 이념이나 남성의 권력이 아니라 여성성이라는 것을 ‘우리집 여인들’을 통해 웅변했다.

 

소설은 8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① 어머니의 마음 (육촌누이)

첫장에 나오는 ‘어머니 마음’은 이데올로기의 허무를 신랄하게 드러내면서 어머니의 속마음을 알아챈 아들의 아픈 심정을 담고 있다.

어머니는 악착같은 생활력을 지녔다. 아들 ‘인구’는 그것을 새끼들 먹여 살리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기보다는 욕정에 순응하고 살아가는 여인네의 욕망으로 보았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해방후 북으로 간 뒤 유복자인 자신을 낳고 세 남자 품을 거쳤다. 인공(人共) 때는 군용 지프차를 세워 군인과 함께 풀숲으로 들어갔다 나오는 장면을 목격했는데, 그때의 기억은 장년이 된 아들에게 어머니에 대한 거부감으로 남아 있다.

중국에 있는 친척 여인을 매개로 북의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인구는 어려운 살림살이에도 불구하고 목돈을 마련해 3개월 동안 중국에 체류하며 아버지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우여곡절 끝에 아버지를 만났고, 그 아버지는 자신이 기대했던 것처럼 색소폰을 즐겨 불었던 낭만적인 사람이요, 어머니와는 대척점에 서 있는 믿을 만한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북의 가족사진을 보여주었는데, 그 사진 속에는 북에서 재혼한 젊은 아내가 있었다. 그 새 어머니는 이미 죽은 사람이었다.

남에 돌아와 식당을 하는 어머니에게 그 사진을 들이밀었을 때 어머니는 뜻밖에도 통곡을 한다.

“그 여자가 누군지 아나? 니 새어머니 말이다… 아이구야 사상 운동 좋아하네… 순진한 여선생 꼬셔 가지고 사상운동 한다 카고 데리고 다니다 가족 다 버리고 뱃속에 있는 자식까지 팽개치고 함께 도망간 게 사상운동이가…”

작가의 의도는 한세월 험난하게 살아왔지만 모든 갈등을 품에 안고 삭이는 여인의 긍정적인 아름다움에 방점을 찍는다.

 

②외숙모

6·25 때 의용군으로 끌려간 남편 소식을 기다리지 않고 밤중에 친정으로 가 재혼했다가, 이혼하고 지금 혼자서 국밥집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외숙모의 이야기다.

젊은 나이에 부부의 정도 모른채 남북으로 갈리고 살아가고 있는 이산부부의 삶을 그렸다.

 

③황혼(외사촌 부인)

주인공 성환은 은행지점장을 끝으로 정년퇴직한 인물이다. 출세를 위해 아부를 떨거나 물욕에 휘둘리는 삶을 살지 않았다. 그는 전형적인 양반의 고장 ‘능바우’ 출신이다.

하지만 사업에 실패한 아들 부부를 집으로 들이고, 보험회사 영업사원으로 일하는 며느리를 위해 친구들에게 부탁하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던 중 아들로부터 건물 야간 경비직으로 일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는다.

경비직으로 일하면 근처 서민아파트가 나오기 때문에 사실상 자신의 집을 아들에게 주고 쫓겨나오는 신세가 된다. 아내인 심 여사가 자존심이 강하고 꼿꼿한 성품이기에 성환은 의논조차 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 사실을 전해들은 심 여사는 오히려 스스로 친구 딸집에서 가사도우미를 자청하며 성환에게 일할 것을 제안한다.

작가는 이것이 결코 품위를 저버리는 삶이 아니라고 말한다. “건강한 늙은이가 집에 가만히 있으면 뭐해요” “우리 이제 시간 나면 영화도 보고 맥줏집에도 가요”라고 말하며 서로를 보듬는 노부부가 ‘염치없는’ 아들 부부보다 훨씬 품위 있는 삶의 모습을 지켜가고 있다는 것이다.

 

④이민가족 (외갓집 여인1)

미국 워싱턴 변두리에서 슈퍼마켓을 하는 해직기자 출신 친구 부부의 생활상. 한국에서 부도를 내고 그곳에서 리커스토어를 열고 있는 박진ㅇ우는 복권 발매를 잘못하는 바람에 뒷골목 마약상에게 죽음의 위협을 받는다. 다행스럽게 마약상이 죽음으로써 사건은 풀린다.

이 스토리에서 박진우는 “한국이라는 나라는 … 항상 일은 남가자 저질러 놓고 여자가 벌을 받는 격이야”라고 중얼거린다.

 

⑤ 능바우 가는 길 (외갓집 여인 2)

아프리카 오지 마사이족 마을에서 봉사활동 하는 의사 남편을 따라 간호사로 헌신하고 있는 능바우 여인을 그렸다.

 

⑥ 큰고모

큰고모의 임종을 맞아 40년전 자신이 선택했던 이데올로기를 되돌아보는 스토리다. 화자는 6·25 전쟁중 고모부를 따라 빨치산으로 활동하다 동상으로 괴롭게 죽어가던 고모보를 단검으로 안락사시킨다. 고모는 그런 남편을 월북해 잘 살고 있는 줄 알고 40년간 돌아오기만 기다린다.

40년전 지리산 골짜기에서 고모부를 단검으로 찌를 때, “겨울 햇살과 내 단검이 마주친 섬뜩한 빛이 내 눈을 멀게” 한 이후, 주인공은 일할 의욕을 잃고 아버지가 남겨준 유산으로 살아간다. 이데일로기에 대한 실망과 고모부를 죽인 죄책감이 옥죄면서 큰 고모에게 고모부의 죽음을 알린다. 고모부의 죽음을 안 고모는 편안히 숨을 거둔다.

 

⑦ 유언(당숙모의 올케)

작가 홍상화가 화자로 등장한다. 6·25 때 의용군으로 참전해 월북하고 북한에서 여배우와 결혼해 딸을 낳은 뒤 간첩으로 내려와 집안 어른들의 권유로 자수해 살다가 죽은 당국의 한 많은 이야기다.

현대의 시점에서 작가의 눈으로 6·25를 바라보았다. 북한에서 인민배우로 활동하며 북한 지폐에까지 등장하는 당숙의 딸 홍영희가 아버지의 체취를 잊지 못해 괴로워 하는, 혈육(血肉)의 정을 그렸다.

 

⑧ 동백꽃(사촌 여동생)

교수인 정문호는 정년을 앞두고 열두 살 연하의 홍숙진과 재혼을 한다. 하지만 정문호가 폐암에 걸리면서 투병생활을 하게 되고, 홍숙진의 정성스러운 간호에도 결혼생활 4년 만에 숨을 거두게 된다. 이때 자식들의 천박함이 모습을 드러낸다. 대부분의 재산을 홍숙진에게 남긴 정문호의 유언을 아랑곳하지 않고 재산 분할을 놓고 싸움을 벌이는 것이다. 이때 홍숙진은 이미 유언장을 보기 전에 재산 포기 각서를 써놓은 상태였다. 자식들은 민망해하지만 홍숙진은 미련 없이 집을 떠난다.

홍 작가는 앞서 ‘전쟁을 이긴 두 여인’을 통해 60년 분단의 아픔 등을 극복하고 이 땅을 살아 숨쉬는 곳으로 회복시키는 여성을 그렸다. 이번 소설집에서는 물적 탐욕을 슬기롭게 극복한 두 여인과 함께, 품위 있는 삶을 지키려는 노인세대의 의식을 담았다. 고희를 넘긴 작가가 원하는 삶의 자세를 투영한 듯하다.

 

작가 홍상화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제과를 거쳐 미국 인디애나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했다. 1989년 장편 『피와 불』을 발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이 작품을 영화로 각색하여 ‘아시아·태평양 영화제’ 최우수각본상을 수상했다.

▲ /홍상화 홈페이지

그의 작품들은 수많은 신문에 연재되기도 했는데, 일본 ‘統一日報’에 「サラム(사람)」를 조선일보에는 「거품시대」, 한국경제신문에 「不感시대」등을 선보였다.

저서로 희곡『어머니 마음』, 장편소설 『사랑은 길을 잃지 않는다』 『나는 새를 위한 악보』 『꽃 파는 처녀』(1989년 발표한 『피와 불』개작 작품) 『거품시대』(전3권) 『입시가족』 『디스토피아』, 창작집 『능바우 가는 길』과 경제관련서 『IMF의 경제식민주의를 경계한다』『무엇이 진정 한국을 추락시켰는가』 등이 있다.

2005년 소설 「동백꽃」으로 제12회 이수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장편 『피와 불』은 일본 ‘德間文庫’에서 번역 출간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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