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북동부 지방에 카탈루냐(스페인어 Cataluña, 영어 Catalonia)라는 자치주가 있다. 스페인 제2의 도시 바르셀로나가 있고, 세계적인 축구명문 FC바로셀로나로도 유명한 곳이다.

최근 이 지역을 관광하고 돌아온 한 사람은 거리마다 카탈루냐 기가 걸려 있고,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의 운동이 고조되고 있다고 전했다.

카탈루냐에 독립운동이 다시 불붙고 있다. 지난해 영국 국민투표에서 EU 탈퇴를 지지하는 결과가 나온데 힘입어 푸이그데몽(Carles Puigdemont) 카탈루냐 주지사가 오는 10월 1일 독립찬반을 묻는 주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밝힌바 있다. 물론 마드리드의 중앙정부는 이를 허가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지난 11일에는 주도 바르셀로나에서 주의 독립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주최측 추산 4만7천명)

 

 

 

분명한 것은 카탈루냐인들 가운데 자신이 ‘스페인 국민’으로 정의하는 사람이 소수에 불과하다 사실이다. 스페인에서 독립을 하든 안 하든 간에 카탈루냐인들은 자신이 카탈루냐인으로 불리길 원한다. 카탈루냐에서는 스페인 국기보다 카탈루냐 국기를 찾는 것이 더 쉬우며, 일반 학교 수업도 스페인어보다는 카탈루냐어(카탈란)로 진행되는 경우가 더 많다. 카탈루냐 주민 간의 일상 속 대화는 스페인어가 아닌 카탈란이다.

비즈니스를 목적으로 카탈루냐를 방문하거나 카탈루냐 출신을 만났을 때, 그를 ‘스페인 사람’이라고 부르기보다 ‘카탈루냐인’으로서 대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한다. 카탈루냐인들에게 스페인에서 인기 있는 투우를 주제로 대화를 하면 싫어한다. 그 지역에서는 투우를 일찌감치 법으로 금지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카탈루냐 사람들은 부지런한 것을 자부심으로 여기고 있는데, 이들에게 시에스타(낮잠)에 대해 묻는다면 그건 게으른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 사람이나 하는 행동이라 답하기 십상이다. 자기네는 스페인인과 다르고, 특히 안달루시아 출신과 비교하길 달가와 하지 않는다. 대신에 이들에게 가우디나 살바도르 달리와 같은 카탈루냐 출신 건축·예술가의 천재성이나 혁신성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면 친근히 여긴다고 한다.

 

카탈루냐인들은 스페인에게 이용만 당하고 있다는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런 의식이 독립에 대한 열망에 더욱 불을 지피게 했다.

주도인 바르셀로나는 로마와 대적한 카르타고가 개척한 도시이고, 로마 시절에도 지중해 해상무역의 중심지로서 각광을 받았다. 영국의 산업혁명이 스페인에 전파되었을 때, 이 지역에서 가장 먼저 면직업등 공업이 발달했고, 지금도 상공업과 관광이 발달해 스페인 경제의 20%를 차지하고 있다.

스페인 중앙정부의 국고에 매년 150억 유로를 세금으로 바치고 있지만 이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턱없이 적고, 자신들이 뼈 빠지게 일해 번 돈이 ‘게으른 스페인 사람’을 먹여 살리는 데 사용된다는 상대적인 박탈감이 크다. 부는 많이 축적했지만, 정치적인 힘이 약하다는 서러움이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스페인은 문화와 언어가 각기 다른 여러 왕국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뭉쳐진 국가다. 역사적으로도 카탈루냐인들은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했음을 자부하고 있다.

카탈로냐의 출발은 스페인이 이슬람 세력의 침략을 받았을 때, 8세기 서유럽을 통일한 프랑크 왕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프랑크 왕국의 샤를마뉴가 이슬람으로부터 이 지역을 탈환하고 백작으로 하여금 통치하도록 했다. ‘카탈루냐’의 명칭은 8세기 사라센 제국으로부터 이 지역 탈환에 공을 세운 '오트게르 카탈로(Otger Cataló)'의 이름에서 유래한다는 설이 있다.

1137년 바르셀로나 백작 라몬 베렝게르 4세는 당시 1살 배기 아라곤 왕국의 공주 페트로닐라 1세와 결혼했다. 후계자가 없던 아라곤 왕 라미로 2세는 라몬 베렝게르 4세에게 섭정을 맡기고, 이듬해 어린 공주에게 왕의 자리를 넘겨주었다. 이로써 두 나라의 연합왕국이 형성됐다.

이후 카탈루냐는 이베리아 반도의 대부분을 지배했던 카스티야 왕국과 아라곤 왕국으로부터 어느 정도 수준의 자치성을 인정받았으나 1714년 스페인 왕위 계승전쟁에서 패하며 스페인에 강제 편입됐다.

20세기 들어 스페인 내전(1936~1939)에서 카탈루냐는 프랑코가 이끄는 군부에 반대하는 인민전선의 거점이었다. 프랑코 총통 시절에는 수 차례 독립운동을 시도했으나 프랑코는 카탈루냐의 문화와 언어를 말살하려고 시도해 큰 상처를 입었다. 민주정부가 들어선 이후 1979년 카탈루냐는 자치주로서 높은 수준의 자치권을 행사하고 있지만, 독립국으로서의 지위를 얻고 싶어하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카탈루냐 분리독립에 관한 투표는 2014년 11월 9일에도 실시된 적이 있다. 당시 주지사였던 아르투르 마스(Artur Mas)는 독립 찬반 여부를 묻는 투표를 실시했다. 투표 결과, 압도적 수치인 80%가 독립 찬성에 표를 던져 독립에 대한 높은 열망을 표현했으나, 투표 참여율이 40%밖에 되지 않아 반쪽짜리 성공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게다가 스페인 헌법재판소는 특정 지역에서만 실시되는 주민투표는 위헌이라는 결론을 내려 결국 실패로 끝났다.

이번에도 카탈루냐 주 정부는 법적 구속력이 있든 없든, 주민투표를 실시해 독립을 선언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스페인 중앙정부는 말도 안 되는 발상이라고 비난하며, 헌법에 위배되는 주민투표가 이뤄지는 일은 없을 것으로 단언하고 있다.

마리아노 라호이(Mariano Rajoy) 스페인 총리는 주민투표와 관련해 협상의 여지가 전혀 없으며 자신이 총리 자리에 있는 한 주민투표는 없을 것으로 단언했다.

 

 

 

카탈루냐의 기업인들은 분리독립 운동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일각에서는 본사 주소를 카탈루냐 이외 지역으로 옮기는 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디지털언론인 Okdiario에 따르면 최근 1년간 카탈루냐에 본사 주소를 갖고 있던 약 2,000개 기업이 해당 지역을 이탈해 다른 지역으로 주소를 옮기고 있다고 밝혔다.

2014년 주민투표 당시에는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았던 경제계는 이번 카탈루냐 주정부의 독단적인 움직임에 적극적인 우려를 표명하고 나섰다. 하비에르 베가(Javier Vega) 스페인 기업인협회(Círculo de Empresarios) 협회장은 5월 29일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지금까지는 상황을 신중하게 지켜보았으나,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며 “법적 테두리 밖에서 활동하려는 자와는 같은 선상에 있을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카탈루냐에서 활동하는 기업이 주소를 옮기는 것이 당연하다”면서 “법과 게임의 규칙이 지켜지지 않는 곳에서 활동하기엔 리스크가 너무 크다”고 강조했다.

카탈루냐에서 활동하는 외국계 기업들도 불법 주민투표 실시에 우려를 표명했다. 독일어권 기업인협회(Círculo de Directivos de Habla Alemana)의 협회장인 앨버트 피터스(Albert Peters)는 “카탈루냐 주정부의 일방적인 주민투표 강행에 반대하며, 카탈루냐 주정부와 스페인 중앙정부가 결국엔 최종 합의를 도출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카탈루냐 주정부는 가을에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주민투표를 강행하겠다고 발표해 투표는 실시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스페인 중앙정부가 끝까지 반대한다면 불법적인 투표가 된다. 하지만 카탈루냐의 독립운동은 성사 여부와 상관 없이 영국내 스코틀랜드의 분리독립운동, 스페인의 바스크 독립운동을 부추겨 유럽의 분열을 가속화시킬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