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韓 반도체, TSMC 성공을 거울로 삼아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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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분석] 韓 반도체, TSMC 성공을 거울로 삼아야 하는 이유
  • 박대웅 기자
  • 승인 2022.01.18 14: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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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스 창 TSMC 창업주의 리더십
대만 정부와 사회의 전폭적 지원
과감한 투자와 기술 개발
'고객과 경쟁 않는다'는 비즈니스 모델
모리스 창 TSMC 창업주가 TSMC 로고 앞에서 미소 짓고 있다. 사진ㅣ로이터=연합뉴스

[오피니언뉴스=박대웅 기자] 반도체 산업은 인텔과 삼성전자처럼 반도체를 설계·제작·판매하는 종합반도체회사(IDM)와 퀄컴, 엔비디아처럼 설계만 하고 생산을 위탁하는 팹리스(Fabless) 그리고 TSMC나 UMC, 미국의 글로벌 파운드리, 중국의 SMIC처럼 생산만 하고 설계는 하지 않는 파운드리(Foundry), ASML이나 램리서치와 같이 공정에 필요한 장비를 공급하는 장비업체로 구분된다. 

이 중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전 세계적으로 반도체 부족현상이 심화하면서 급성장 중인 파운드리 글로벌 1위 TSMC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TSMC는 삼성전자 등 경쟁 업체의 추격을 따돌리고 시장의 지배적 사업자로 지위를 굳건히 하기 위해 수십 조원 규모의 공격적인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하이테크 산업 분야 토대가 약한 대만에서 TSMC는 어떻게 글로벌 선두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었을까. 

창업주 모리스 창의 리더십

TSMC의 창업자는 모리스 창(장중머우·張忠謀)로 27세에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I)에 입사한 후 반도체 부문 부사장까지 지냈다. 1985년 54세의 모리스 창은 대만 정부의 요청에 따라 대만 공업기술연구원(ITRI) 원장으로 취임했다. 

1980년대 초 글로벌 반도체 산업은 일본과 미국의 종합반도체기업이 장악하고 있었다. 상황이 급변한 건 1980년대 미·일간 무역 분쟁이 불거지면서다. 여기에 1989년 냉전 붕괴로 대량의 ICT 기술이 민간으로 흘렀다. 

미국에선 엔비디아, 브로드컴, 자일링스 등 웨이퍼 설계 능력을 갖춘 기업이 등장했다. 모리스 창은 이 틈새를 노려 반도체 생산만 전담하는 기업을 설립했다. 대만의 반도체 기술이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보다 2세대 이상 뒤쳐져 있었고, 설계 기술도 없다는 현실적인 판단도 한 몫했다. 

모리스 창은 1987년 TSMC를 설립했다. 인텔 등 해외기업이 투자를 거절한 가운데 필립스만 투자했다. TSMC는 팹리스로부터 설계를 받아 위탁생산을 시작했고, 팹리스 업계의 발전에 따라 고도성장했다.

2005년 CEO 자리를 넘겨줬던 모리스 창은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중 복귀해 경쟁 업체들이 생산 라인을 폐쇄할 때 과감하게 설비투자를 늘리고 자산을 활성화했다. 제품 라인을 늘려 로직IC 외에 파워IC, MEMS 등 아날로그IC의 7개 분야 제품을 추가했다. 또 기존 설비를 활용해 차량용 반도체 등 새로운 이익모델을 만들었다. 

지난 2010년 TSMC는 4195억 신타이완달러(NTD·현재 기준 약 21조2000억원)로 사상 최고 매출과, 영업이익은 50%를 달성했다. 생산 가동률은 100%를 돌파했다. TSMC 시가총액은 2017년 인텔을 제친 이후 지금까지 글로벌 반도체 업계 1위다.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TSMC의 시가총액은 약 855조 원으로 463조 원인 삼성전자를 크게 앞지른다. 엔비디아의 790조원과 비교해도 훨씬 높은 수준이다.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 모리스 창이 밝힌 성공 비결이다. 

TSMC는 기밀을 절대 준수하고 성실한 관리로 손해가 나더라도 고객과 약속을 철저히 지키며 신뢰를 얻었다. TSMC 직원은 근무시간 카메라가 장착된 휴대전화와 USB 메모리 장치를 휴대할 수 없으며 회사 서류를 개인 메일함으로 이동하는 것도 금지했다. 만약 규정을 어기고 카메라가 부착된 핸드폰을 소지할 경우 4회 적발 때 CEO에게 보고된다. 또 데이터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TSMC 직원은 화장실에 갈 때도 카드를 찍어야 한다.

철저한 운영으로 신뢰를 얻은 TSMC는 글로벌 GPU(그래픽처리장치) 분야의 두 경쟁 기업인 앤비디아와 AMD 그리고 핸드폰 칩 라이벌 퀄컴과 미디어텍, 무선 네트워크 칩 브도르컴과 리얼텍 등 상충하는 경쟁 업체의 제품을 수주했다. 

TSMC는 애플의 아이폰 등장 후 휴대폰의 두뇌 AP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독식을 막아서기도 했다. 아이폰이 선풍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애플과 삼성전자의 경쟁이 치열해졌고, TSMC는 새로운 기회를 포착했다. 

모리스 창은 애플과 아이폰 AP 생산을 타진했다. 2013년 4월 애플은 TSMC와 A7 시스템 온 칩(SoC) 기밀을 공유했고, TSMC는 생산 라인 준비를 마쳤다. 결국 애플의 인증을 받아 TSMC는 2014년 A8 프로세서 주문서를 받으며 삼성전자가 독식하던 AP 시장에 균열을 냈다. 

TSMC가 공격적인 투자로 위기 극복을 모색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공격적인 투자와 기술 진보

지난 2020년 TSMC의 설비투자액은 181억 달러로 매출 477억 달러의 38%를 투자했다. 연구개발비는 2010년 9억4300만 달러에서 2020년 37억 2000만 달러로 크게 늘렸다. 연구개발 인력 역시 2010년 2811명에서 2020년 7404명으로 약 3배가량 증원했다. TSMC는 2009년부터 매년 100억 달러를 투자하고 있다. 

TSMC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글로벌 반도체 공급 부족이 심화되고 있는 현재, 역대 최대 규모인 440억 달러(약 52조원)의 설비 투자를 단행하며 시장 장악에 나선다. 지난해 투자 규모인 300억 달러보다 47%나 늘어난 수치다.  

TSMC는 13일(현지시각) "올해 대만 남부와 미국 애리조나 라인 건설 등에 400억~440억 달러를 집행할 것"이라면서 "이 중 70~80%를 초미세 공정인 2·3·5·7나노미터(1nm=10억분의 1m) 공정 개발에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반도체는 나노 단위인 회로의 선폭이 좁을수록 저전력·고효율 칩을 만들 수 있다. 반도체 성능을 좌우하는 나노미터 단위 미세공정 시장 선점을 위해 TSMC는 삼성전자와 기술개발과 설비 확충 경쟁을 벌이고 있다. 미세공정에 적용하는 스마트폰 AP와 PC용 CPU 등은 주문 물량이 많고 영업이익률이 높다. 

TSMC는 2000년대 초 블루팀과 레드팀이라는 연구개발 조직을 만든 후 블루팀에는 16나노→7나노→3나노를, 레드팀에는 20나노→10나노→5나노 공정 개발을 목표로 내부 경쟁을 유도했다. 그 결과 2018년 7나노 제품 양산에 돌입했고, 올 하반기 3나노 제품 양산에 돌입한다. 

파운드리 분야에서 올해 15조원 안팎의 투자를 단행할 것으로 보이는 삼성전자는 TSMC보다 앞선 초미세 공정 기술을 바탕으로 투자 규모 격차를 극복한다는 방안이다. 삼성전자는 올 상반기 세계 최초로 3나노 반도체를 양산하고 2025년 2나노 반도체 생산에 나설 계획이다. 올 하반기 3나노 반도체를 양산하는 TSMC보다 한발 앞선 행보다.

TSMC와 삼성전자 모두 과감한 투자로 퀄컴, 엔비디아 등 초미세 공정이 필요한 고객사 이탈을 막는데 주력하고 있다. 

정부 지원과 투명한 지배구조, 인재 육성

대만 정부는 1987년 모리스 창이 TSMC를 설립할 때 적극적으로 후원했다. 대만 공업기술연구원(ITRI)으로부터 TSMC의 분사를 허가했고, 공동 개발한 원천기술을 TSMC로 이전하는 등 편의를 제공했다. 

TSMC가 위치한 신주과학단지는 산업 클러스터 역할을 수행했다. 대만 정부는 입주 기업에 5~9년간 법인세를 면제했고, 낮은 대출금리, 연구개발 보조금 등 각종 혜택을 제공했다. 또한 반도체 공장 건설에 필요한 막대한 용수와 전기 인프라를 신속하게 구축해 줬고, 대만 각지를 하루 만에 이동할 수 있는 고속철과 고속도로 등 인프라를 건설해 TSMC 성공에 기여했다. 

대만 정부 차원의 장학혜택과 산·학연계 교육모델은 TSMC의 우수한 인력을 유치를 가능하게 했다. 특히 '주식보너스 제도'로 대표되는 TSMC의 인센티브 제도가 자리잡는데 대만 정부의 역할은 결정적이었다. TSMC는 순수익의 10%를 신주로 발행하고 액면가로 직원에게 나눠줬고, 대만 정부는 시세차익에 세금을 면제했다. 이 제도는 TSMC가 수 많은 인재를 유치하며 글로벌 반도체 기업으로 도약하는 중요한 동력이 됐다. 

대주주의 눈치를 보지 않는 투명한 지배구조도 TSMC 성장에 중요한 축이다. 1987년 자본금 약 2억2000만 달러(한화 약 2700억원)로 TSMC를 설립할 당시 대만 정부가 절반, 외국인 투자자가 절반가량의 자본금을 댔다. 대만 정부는 행정원 개발기금으로 TSMC의 지분 48.3%를 보유했고, 외국인 투자자 중 필립스가 27.5%로 가장 많은 지분을 확보했다. 이후 1993년 TSMC를 민영화한 후에도 대만 정부는 국가개발기금을 통해 지분 6.4%를 소유하고 있고, 현재 외국인 투자자 비중은 70% 수준이다.

TSMC는 설립 초기부터 특정 개인이나 기업이 아닌 정부와 민간, 개인이 지분을 공유했다. 이런 특성은 지금의 TSMC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TSMC 이사회는 대주주의 통제를 받지 않는다. 실적에 따라 이사회에서 보수 및 연임을 결정하는 구조로 대주주 눈치를 볼 필요가 없고, 이사회 감독과 제재를 받기에 임직원은 자신의 이익을 챙길 수 없다. 이런 이유로 단기적 주주의 이익이나 눈치를 보지 않고 장기적 관점에서 기술 개발과 막대한 시설투자가 가능하다. 

TSMC의 성공은 결국 창업주 모리스 창의 리더십과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비즈니스 모델, 막대한 시설투자 및 연구개발, 대만 정부와 사회의 전폭적인 후원이 만든 결과물이다. 

TSMC의 성공을 삼성전자 등 한국 반도체 산업이 거울로 삼아야 한다. 사진=연합뉴스

韓 반도체에 남긴 교훈

국내 파운드리 업계는 세계 2위 삼성전자와 세계 10위 DB하이텍을 제외하고는 대다수 규모가 작고 기술력 또한 취약하다. 또 고객사인 팹리스 업체들이 매우 영세해 안정적 수요를 기대할 수 없다. TSMC, UMC 등 파운드리와 미디어텍, 리얼텍 등 팹리스가 균형을 이루고 있는 대만과 비교할 때 경쟁력이 크게 떨어진다.

파운드리 산업 발전을 위해선 유능한 인재를 확보해야 한다. 인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학과 증원, 현장 경험이 많은 교수진 충원, 산업체와 계약학과 신설, 대학 반도체 연구센터 증설 등이 필요하다. 또 대만처럼 세제 혜택과 전력 및 용수 공급 등 인프라 제공, 관련 법 마련 등 정부 지원이 뒷받침 돼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팹리스 등 수요업체와 파운드리 간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해 개발과 생산 역량을 넓혀나가야 한다. TSMC의 성공을 거울 삼아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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