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탄의 등극…우리민족과 터키의 1,500년 친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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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탄의 등극…우리민족과 터키의 1,500년 친연성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7.04.18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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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궐족의 한 갈래…고구려때 동맹형성…지금은 한류 확산

 

터키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난 16일 치러진 개헌안 국민투표에서 승리했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서방 언론들은 ‘술탄 개헌’, ‘술탄의 등극’이라는 제목으로 에르도안 대통령이 오스만투르크 시절의 술탄에 버금가는 권력을 행사하게 됐다는 비판적 기사를 쏟아냈다.

술탄(sultan)은 아랍어로 통치자를 의미한다. 터키의 전신 오스만 제국은 16세기초 살림 1세때부터 술탄 칭호를 받아 1922년까지 30명의 술탄이 제국을 통치했다. 동양으로 치면 황제에 해당한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개헌안이 ‘술탄 개헌’이라고 불리워지는 것은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했기 때문이다.

개헌의 골자는 ▲의원내각제에서 대통령 중심제로 전환 ▲대통령이 행정 수반과 국가 지도자로서 정당 대표 유지 ▲대통령이 각료 임명, 예산수립, 고위 판사 대부분 임명 ▲대통령이 특별법 제정할 권한 확보 ▲대통령의 비상사태 선포권, 국회 해산권 보유 ▲내각 수반인 총리의 직무 폐지 ▲부통령직 2~3명 신설 ▲국회의원을 550명에서 600명으로 확대 등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과거 한국의 유신헌법을 보는 듯하다. 이 개헌안은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는 2019년 이후 발효될 예정이다.

이번 개헌 국민투표 이후 터키 정국이 잠잠할 것 같지는 않다. 주변 유럽국가들의 견제도 심해질 전망이다. 하지만 그것은 국내 및 국제정치의 문제다.

다만 여기서, 우리는 우리나라와 터키 사이에 1,500년의 긴 세월을 건너뛰는 역사적 친연성을 살펴보기로 한다. 터키와 대한민국은 아시아의 대륙의 양 끝에 위치해 있다. 하지만 터키의 뿌리인 돌궐(突厥)족과 우리의 뿌리인 고구려가 이웃했던 민족이었다. 그러먼 천년을 건너뛰는 역사 과정에서 터키는 어찌하여 소아시아로 건너가 나라를 세우고 유럽의 무서운 세력이 되었던 것일까.

▲ 에르도안 술탄 탄생을 비판하는 영국 이코노미스트지 표지 /이코노미스트

 

동양사에서 돌궐의 역사는 우리나라의 고구려사와 겹친다. 돌궐(투르크)은 흉노의 후예로 알려져 있다. 한국 성씨 가운데 20%를 차지하는 金씨의 선조가 흉노족이었다는 사실이 검증되고 있는데, 그렇다면 돌궐족과 한민족의 조상은 고대에 중국 북방지역에 거주할 때 때론 싸우고, 때론 협력하던 관계였을 것이다.

투르크족은 서기 552년 부민(Bumin) 카간이란 걸출한 인물이 등장하면서 위구르, 오구즈, 오노크, 카를룩족등 여섯 부족을 통합해 오르혼 강가에서 건국했다. 고구려로 치면 광개토왕, 장수왕의 전성기를 거쳐 양원왕 때였다.

고구려와 돌궐은 초기에 사이가 좋지 않았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 양원왕 7년(551년) “돌궐이 고구려에 쳐들어와 신성을 포위했지만, 임금이 장군 고흘(高紇)에게 병사 1만을 주어 물리쳤다”는 기사가 나온다.

하지만 그후 수나라가 중국을 통일하자 돌궐과 고구려는 동맹관계를 형성한다. 『삼국사기』에 영양왕조 18년(607년) “수양제가 돌궐 계민 카간의 막사를 찾아갔을 때 고구려의 사신이 계민카간과 함께 있는 것을 발견했고, 계민이 고구려 사신을 감출수 없어 고구려 사산과 함께 수양제에 참배했다. 이에 영양왕은 수양제가 침범할 것을 걱정했다”는 기사가 나온다. 즉 수나라가 중원을 통일하자 고구려와 돌궐이 동맹관계를 맺고 대처한 음모가 수양제에 들켜 전운이 감돌았다는 내용이다.

전성기 돌궐은 유라시아 지역 동서와 남북에 걸쳐 대제국을 형성했고, 그 면적이 1,000만㎢에 이르렀다. 지금 중국 면적에 비근한 영토에 해당한다. 나중에 발굴된 돌궐 비문에는 “사방에 군대를 보내 모든 종족을 복속시키고, 머리를 가진 자는 머리를 숙이게 하고, 무릎을 가진 자는 무릎을 꿇게 하였다”고 기록했다.

그러나 중국 중원이 수나라에 이어 당나라에 의해 통일된 이후 돌궐은 내부 분열이 생기면서 동돌궐과 서돌궐로 나눠졌다. 동돌궐은 630년, 서돌궐은 651년 당나라에 의해 멸망했다. 고구려 패망 직전에 당태종에게 나라를 빼앗긴 것이다.

동돌궐 지역은 나중에 몽골의 지배를 받으면서 역사에서 사라졌지만, 그 후손은 중국 신장지역 위구르족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중국 위구르지역에선 ‘동돌궐 독립운동(ETIM)’등이 동돌궐 부활을 외치며 독립운동에 나서고 있다. 현재의 위치에서 말하자면 중국 신장의 위구르족이 동돌궐의 후손이라면, 터키는 서돌궐의 분파다.

 

▲ 6세기 돌궐의 강역 /위키피디아

 

서돌궐 유민들은 중앙아시아 초원지역에서 유목과 오아시스 농경생활을 하며 이슬람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서쪽으로 이동하다가 960년 셀주크 장군의 지휘로 급팽창한다. 셀주크장군의 서돌궐은 실크로드를 따라 부하라·사마르칸드로 이주했고, 1037년 셀주크의 손자 토크릴 베그가 셀주크투르크를 건국했다.

토크릴은 1055년 바그다드를 점령한데 이어 팔레스타인을 차지했다. 그는 알라신의 대리인이라는 압바스 왕조의 칼리프로부터 술탄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셀주크 투르크는 여러지역으로 갈라졌던 중동의 이슬람세계를 통일하고, 지금 터키의 아나톨리아 지역으로 세력을 확장했다. 셀주크 투르크는 1071년 만지케르트 전투에서 비잔틴(동로마) 제국 6만 군대를 격파하고 루마누스 4세를 포로로 잡았다. 이 전투를 계기로 투르크족은 소아시아(아나톨리아)반도를 차지하게 됐다.

중동전역이 투르크족에 의해 장악되자, 위협을 느낀 유럽국가들은 종교적 열정으로 무장한 십자군을 결성하고 예루살렘을 향해 진군한다.

셀주크 투르크는 십자군 전쟁으로 쇠약해진데다 중국 북방에서 발원한 또다른 민족인 몽골에 의해 멸망했다. 몽골 세력이 약화된후 아나톨리아에 잔류한 투르크족의 일파인 오스만 일족에 의해 오스만 공국이 세워졌다.

 

▲ 셀주크투르크 최대영역 /위키피디아

 

오스만 투르크의 콘스탄티노플 함락은 인류 역사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콘스탄티노플은 324년에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로마를 대신하는 새로운 수도로 삼았던 도시로, 마지막 남은 로마제국의 영토였다. 1453년 5월 25일 오스만의 메메드 2세는 비잔티움 지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다. 이로써 천년 이상 존재해왔던 로마제국은 공식적으로 멸망하고, 유럽대륙의 일각이 몽골고원에서 발원한 투르크족에 의해 점령당한다.

오스만 제국은 콘스탄티노플을 이스탄불로 이름을 바꾸고, 성소피아사원을 이슬람 사원으로 전환시켰다. 유럽이 몽골의 침략을 받은지 수세기만에 다시 동양의 또다른 종족에 의해 공격받게 됐다. 오스만은 발칸반도, 흑해 연안, 중동일대, 이집트, 아프리카 북부를 차지하며 옛 동로마 제국의 영토를 거의 대부분 차지했다. 유럽은 서로마지역 일부만 남았다. 오스만 투르크가 지중해 동안을 장악하는 바람에 서유럽의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대서양을 건너는 모험을 단행했고, 아프리카, 인도, 동아시아, 아메리카의 신대륙 발견이 이뤄진다.

하지만 1571년 레판토 해전, 1683년 합스부르크의 빈 포위 실패등으로 투르크의 세력 확장은 한계를 드러냈고, 그후 유럽과 러시아의 협공에 시달리게 된다. 투르크 쇠약은 팽창 속도만큼 빨랐다. 빈 공격 실패 이후 헝가리를 상실했고, 18세기엔 흑해 연안을 러시아에게 잃었다. 그후 개혁적인 군주들이 나타나 서구화를 지향했지만, 실패했고, 크림전쟁, 러시아와의 전쟁을 통해 카프카즈, 불가리아, 루마니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를 연속적으로 상실했다. 1829년엔 그리스가 독립하고, 중동지역에선 족장들을 중심으로 독립운동이 벌어졌다.

20세기초 투르크 제국은 소아시아반도와 이스탄불만 남은 소국으로 전락했다. 1922년 청년투르크당의 지도자 케말 파샤가 술탄제를 종식시키고 공화정을 시작했다.

 

▲ 오스만투르크 최대영역 /위키피디아

 

터키 국민의 80%가 터키인(투르크족)이다. 하지만 아시아과 생김새가 다른 것은 수세기동안 유럽을 지배하면서 타민족과 결혼해 피가 섞인(혼혈) 탓이다. 인구의 17%가 쿠르드족이다.

1950년 6.25때는 1만5천명의 군대를 파병해 피를 흘렸다. 미국·영국에 이어 가장 많은 군대를 보낸 나라이며, 터키 참전비는 현재 경기도 용인에 있다.

터키인들은 한국을 ‘형제의 나라’라 부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역사적으로 돌궐과 고구려의 인연이 기록에 남아있다. 몽골 북부 오르혼강 주변에서 옛 돌궐제국 비문에도 572년 무한 카간이 사망하자 고구려가 사절을 파견해 애도했다는 기록도 발견됐다.

터키인들 사이에는 한국 노래와 음반, 드라마등 한류가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터키에서 군사쿠데타가 발발했다는 소식에 1500년이 지난 지금, 아시아 대륙 동쪽 끝의 한국과 서쪽 끝의 터키와의 기나긴 인연의 끈을 한번쯤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 왼쪽이 현재의 터키 국기. 오른쪽은 중국 신장지역 위구르족의 동돌궐독립운동단체의 깃발. /위키피디아

 

 
▲ 전세계 투르크족 분포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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