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금융위기㉙] 수하르토 30년 독재의 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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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금융위기㉙] 수하르토 30년 독재의 몰락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7.04.07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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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발유값 70% 폭등에 시위 가열…시위대 500여명 사망하자 사임

 

1988년 3월 11일 수하르토는 일곱번째로 7년 임기의 대통령직에 취임했다. 그는 취임사에서 인도네시아 국민들에게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맬 것을 호소했다.

“우리는 지난 4반세기 동안 누려왔던 경제 성장을 더 이상 누리지 못할 것입니다. 개인으로서, 집단으로서 풍요를 누릴 수 있지만, 국가는 더 이상 낭비를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무거운 짐을 서로 나눠 가져야 할 것입니다.”

 

칠순을 넘긴 수하르토는 취임 연설을 경제 위기 극복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국민들의 마음은 이미 수하르토를 떠나고 있었다.

수하르토 취임을 전후해 미국과 IMF, 인도네시아 사이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도네시아는 IMF 조건을 이행하겠음을 천명했고, IMF도 그 동안의 일방적 공격에 일보 후퇴했다. 팽팽한 대결 국면이 대화 국면으로 전환하고 있었다.

IMF 2인자인 스탠리 피셔 부총재는 “인도네시아에 대한 개혁 프로그램에 신축성을 보일 용의가 있다”며 “IMF의 요구가 받아들여질 경우 고정환율제를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얼마 전에 캉드시 총재가 “고정환율제는 이상론이며 4월 이전까지 추가지원을 할 수 없다”고 한 강경기조에서 일보 후퇴한 것이다.

또 IMF에 대한 국제적 비난도 빗발쳤다.. 인도네시아에서 지근거리에 있는 오스트레일리아는 “IMF의 일방적인 개혁 패키지가 인도네시아 시민 불안을 촉발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IMF가 인도네시아 지원을 중단한 이유가 분명치 않고, 인도네시아 사태로 아시아 금융시장이 혼란에 빠질 경우 IMF와 미국은 죄를 짓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IMF가 인도네시아에 타협적 태도로 전환한 명분은 두가지다. 첫째, 수하르토 정부가 각종 보조금을 폐지하는등 IMF 권고 사항을 상당부분 수용하고 있고, 둘째 2억 인구를 파탄에 이르게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인도주의적 관점이다.

 

3월말 IMF와 수하르토 정부는 다시 협상을 벌였다. 인도네시아는 통화위원회 제도 추진을 보류하고, 680억 달러의 민간 외채에 대해 정부의 지급보증을 해주기로 했다. IMF도 가솔린, 전기 등에 대한 보조금 폐지 시기를 다소 늦추어 주고, 식량등 생활필수품에 대한 일부 보조를 인정했다. 그러나 수하르토의 족벌 기업, 즉 정실자본주의의 철폐에 대한 원칙은 전혀 변함이 없었다.

4월초 인도네시아는 IMF와 세번째 협정을 체결했다. 수하르토 정부는 더 이상 IMF 조건을 이행하지 않다간 경제가 파멸로 갈 것임을 깨달았다. 저항은 곧 죽음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절감했다. 그러나 수하르토는 동전의 다른 면을 보지 못했다. IMF에 순응하는 것이 그를 권좌에서 물러나게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5월 4일 가뜩이나 교통체증이 심한 자카르타 시내는 차가 거의 움직이지 못했다. 그날 자정부터 휘발유 가격이 70% 인상된다는 소식에 기름 한 방울이라도 더 넣으려는 자동차 운전자들이 주유소 주위에 진을 쳤기 때문이다.

수하르토 정부가 IMF가 주기로 한 10억 달러의 추가지원금을 받기 위해 석유, 전기 산업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5월 5일부터 중단하기로 하고, 이들 산업에 대한 가격 통제를 해제했다. 이에 따라 휘발유 가격은 71%, 항공기유 가격 43%, 등유 25%, 디젤유 39% 인상됐고, 버스료도 67%나 폭등했다. 전기료는 5월에 20%, 6월 20%등 단계적으로 40% 인상이 예고됐다.

물가와 세금은 민중 폭동의 원인이다. 프랑스 혁명과 러시아 혁명도 지도자들이야 혁명이념에 불탔지만, 민중들은 과도한 물가 상승과 세금 부과에 봉기했다. IMF 경제학자들은 인도네시아의 시위가 격화되고 있음을 분명히 알면서도 물가 폭등을 유발시켰던 것이다.

원래 IMF는 석유 및 전기 산업에 대한 보조금 중단 시기를 4월로 주장했으나, 인도네시아 정부의 요구로 한달 늦춰 줬다. IMF가 수하르토 정부의 수명을 한달 더 연장해준 셈이다.

수하르토 정부가 연료 가격을 인상하던 날 싱가포르에 와있던 캉드시 총재는 “인도네시아 정부가 IMF 조치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며 환영했다.

그러나 IMF는 5월에 주기로 예정한 10억 달러를 수하르토가 사임할 때까지 주지 않았다.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달러에 허기졌던 수하르토 정권은 단돈 10억 달러에 권력을 내주는 비운을 맞이했던 것이다.

인도네시아의 주요 산업인 석유와 전기 사업도 수하르토의 친척과 친구들이 소유하고 있었다. IMF는 수하르토 족벌 기업을 해체하기 위해 정부의 보조금 중단을 요구했고, 보조금 중단은 물가폭등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다음과 같은 가설을 세워보자. 수하르토 정권은 전통적인 자바 왕가를 모델로 권력을 유지했고, 7년 단위의 형식적인 선거를 치르기는 했으나, 자바 왕의 종신제를 답습했다. 왕국에선 국가의 재산이 왕가의 재산이다. 왕가의 재산은 국영 기업의 역할을 한다. 수하르토는 자신이 자바 왕이라고 생각했고, 왕실 재산을 아들과 막료들에게 맡겨 운영하려고 했던 것 같다. 보르네오 섬 북부의 산유국 브루네이 왕국에선 왕이 유전을 소유, 세계에서 가장 돈이 많은 부자다. 따라서 공공재 성격의 석유와 전기 산업은 왕실 소유로 해서 공기업화함으로써 정부 보조금을 대주었고, 이에 따라 백성들에게 싼 기름과 전기를 쓰게 시혜를 베풀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IMF나 미국식 자본주의 시각에서는 공화정의 최고통치권자가 자신의 가족들이 알짜 기업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부패의 소산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인도네시아 국민들은 충격에 사로잡혔다. 그들의 눈에 적은 IMF가 아니라 수하르토였다. 연료 가격 폭등은 민중 시위에 불을 붙였고, 마침내 500여명이 사망하는 사태로 번져갔다. 비동맹회의 참석차 이집트를 방문중이던 수하르토는 중도에 귀국, 열흘만에 보조금 중단 조치를 철회했다. 그러나 이미 대세는 기울었다. 수하르토의 자바왕국 붕괴는 눈앞에 다가왔다. 5월 21일 수하르토는 새로 확보한 7년 임기중 두달을 갓넘기고 자신의 측근인 하비비(B J Habibie)에게 권좌를 맡기고 사임을 발표했다.

 

▲ 1998년 5월 21일 수하르토 대통령은 측근인 하비비(B J Habibie)에게 권좌를 맡기고 사임을 발표했다. /위키피디아

 

76세의 노회한 정객을 권좌에서 몰아낸 세력은 그가 오랫동안 토벌해온 밀림 속의 좌익 게릴라가 아니라, 온라인으로 전세계를 연결한 국제 자본의 힘이었다.

인도네시아에 찾아온 피플스 파워의 배후에는 80년대 한국과 필리핀의 경우와 달리 지구촌의 머니 파워가 있었다. 수하르토의 몰락은 공룡처럼 비대해진 국제 자본에 저항하다가는 32년의 독재정권도 무너질 수 있다는 무서운 사실을 일깨워 줬다.

국제 자본시장은 투명하고, 서로 경쟁하고, 합리적인 것을 요구한다. 족벌 경영이나, 정경 유착, 이에 따른 부패는 글로벌 자본이 가장 싫어하는 요소다. 수하르토 일가는 자동차와 석유화학, 은행등 국가 기간산업을 장악한 정경 일체의 재벌로, 국제 금융시장의 처벌 대상이었다.

막강한 정보력을 자랑하는 뉴욕 월가의 증권사들은 이미 며칠 전부터 수하르토의 사임일자를 정확히 재고 있었다. 월가의 메이저 증권사들은 월요일인 18일 20일(아시아 시간으로 21일)이 「D-데이」라는 메시지를 교환하며 인도네시아 채권을 매입했다. 수하르토가 사임을 발표하기전인 20일 뉴욕 금융시장에서 인도네시아 단기채권 금리가 하루만에 1.0% 포인트나 폭락했다. 이들은 미국 국무부의 정통한 소식통으로부터 확실한 정보를 얻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국제 자본의 논리를 대변하는 IMF는 수하르토 사임 하루 전에도 인도네시아에 대한 구제금융을 연기한다고 밝혀 그의 목줄을 죄었다. IMF는 수하르토가 인도네시아 개혁의 걸림돌이라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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