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수 에세이] 사선(死線)을 넘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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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수 에세이] 사선(死線)을 넘는 순간
  • 조병수 프리랜서
  • 승인 2017.03.29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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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딸아이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는지…내공 보인 조직의 장

[조병수 프리랜서] 1995년 7월 19일 한국상업은행 상하이(上海)지점이 문을 열었다. 1992년 8월에 한·중 국교정상화 후 3년만에 중국에서의 지점 영업이 시작된 것이다. 말로만 듣던 중국 땅을 처음 밟아보는 긴장감에 더해서, 여름철 상하이 날씨는 정말 엄청나게 더웠다. 잠시라도 바깥에서 움직일 때는 숨이 턱턱 막혔다.

상하이 가든호텔에서 열린 개점기념연회의 앞쪽 테이블에 앉은 중국 여성과 인사를 나누면서, 상당한 지위에 여성이 진출하고 있음에 놀랐다. 수십 년이 지난 요즈음에야 우리 사회에서도 여성의 사회 진출에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당시로서는 그런 모습에 익숙하지 않았던 터였다.

그리고 그분이 입고 있던 수수한 흰색 블라우스는 1950~60년대 우리나라에서 흔히 입던 포플린 재질 같았다. 그때 중국 비행기 여승무원들의 옷감과 색상도 단조롭고 그리 매끄러운 것은 아니었다. 아마도 더운 날씨의 지역적 특수성과 당시 중국의 환경 등이 반영된 복색(服色)이었을 것이다.

▲ <한국상업은행 상하이 지점 개점축하연> /사진=조병수

 

그렇게 무더운 상하이에서의 일정들을 마친 은행장을 모시고 홍콩으로 가면서, 시안(西安)을 경유하게 되었다. 상하이 비행장에서 왁자지껄하게 봇짐 같은 것을 들고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는 중국인들을 보면서, “아니, 당시 중국 대학교수 월급이 우리 돈으로 6만원 정도라던데, 이렇게 비행기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 많나?’ 싶었다. 그리고 승객들의 행색이나 소지품들이 생각보다 남루한 것도 눈길을 끌었다.

시안에서는 그 이전의 공항에서 느끼던 모습과는 사뭇 다르게 외국인도 많이 있고 분위기도 훨씬 조용했다. 피곤한 일정 탓인지, 비행기가 이륙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옆자리의 은행장과 해외담당 임원은 잠깐 눈을 붙이는 것 같았다. 다른 승객들도 대부분 반쯤 잠 속에 빠졌는지 조용해졌고, 모처럼만에 맛보는 고요함에 내 눈꺼풀도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윗분들 곁에서 같이 졸고 있을 수도 없어서, 졸음도 쫓을 겸해서 앞으로의 일정들을 점검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 시간쯤 앉아있는데, 갑자기 비행기가 무언가에 부딪치는 것 같이 순간적으로 동요하면서 오른쪽 날개 쪽에서 “꾸르릉”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무언가 이상했다.

옆자리의 두 분을 살펴보니 별 기척이 없고, 기내의 다른 승객들도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그런데, 앞쪽에서 여승무원 두 명이 바쁘게 걸어 나오더니, 오른쪽 창문을 통해서 날개 쪽을 이리저리 살피는 것이었다. 좀 떨어진 곳에서 보는데도 그들의 표정에서 무언가 당황하는 모습을 감지할 수 있었다.

‘아이쿠 분명히 무슨 일이 있긴 있구나’라는 생각에, 바짝 긴장하면서 사태의 추이를 주시했다.

 

오른쪽 엔진소리가 조용해 진 가운데 비행속도가 떨어지고, 고도도 조금 낮아졌다. 그리고 잠시 후에는 비행기의 기수가 천천히 돌아가면서 안내방송이 나왔다. “새와 부딪쳐서 문제가 생긴 탓에, 부득이 출발지인 시안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것이었다.

옆자리 윗분들을 살펴보니, 기내방송을 못 들은 듯 했다.

‘이 일을 어떻게 하나···. 이런 긴박한 일이 벌어졌는데 깨워서 알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하고 고민을 하다가, 좀더 시간을 두고 보기로 했다.

속이 바짝바짝 타 들어가는 가운데 몇 십 분을 혼자서 꿍꿍 앓다가 보니, 그래도 사실을 알려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바로 옆에 앉은 임원의 몸을 살짝 흔들어 깨우며, “지금 비행기에 무언가 문제가 있어서 출발공항으로 다시 돌아가고 있다”고 귓속말을 했다.

그랬더니 흠칫 놀라면서도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나직이 ‘지금 곤히 주무시니 말씀 드리지 말고 그냥 두고 보자’고 했다.

이어지는 기다림 속에서 ‘제발 무사히 땅에 내릴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라고 마음 속으로 간구했다. 주변을 살펴보니, 어느 외국 여인도 머리를 숙이고 무언가 열심히 기도하는 것 같았다. 어떤 부부는 손을 꼭 잡고 머리를 숙이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그렇지만 모두들, 짓누르는 긴장감 속에서도 특별히 동요하는 모습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사이에 비행속도가 현저히 떨어진 것 같았다. 이 지루한 시간이 왜 그리 빨리 가지 않는 것인지, 정말 참담했다. ‘진땀 난다는 표현이 바로 이런 것을 두고 이야기하는 것이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늘이 노래지는 심정이었다.

‘아, 내가 이렇게 이름도 모를 중국하늘에서 생(生)을 마감할 수도 있겠구나.’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던 그 비행기 사고라는 것, 이야기는 들어보았지만 그것이 이런 것인가? 내가 당할 줄이야….’

‘중국은 넓고 평야가 많으니, 정 문제가 있으면 어디 널찍한 평원에 불시착이라도 하겠지.’

‘그런데 여기서 이렇게 사고를 당하면 내 아내와 아이들은 어떻게 하지?’

 

이런 생각들과 지나온 여러 장면들이 활동사진 돌아가듯이 빠르게 흘러갔다. ‘내 사랑하는 가족들이 아빠를 졸지에 잃게 생겼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면서 딸 아이들 이름을 마음 속으로 불러보며 ‘미안하구나’라는 말을 하려는데, 어찌된 셈인지 아이의 이름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아무리 ‘내가 왜 이러지?’ 하면서 애를 써도, 머리 속이 갑자기 어떻게 된 것인지,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런 사실이 더더욱 당황스럽고 미안해지기까지 했다.

중국 하늘에서의 그 긴박한 순간에 왜 딸아이의 이름이 그렇게 생각나지 않았는지는, 지금 생각해봐도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너무 놀라면 사람이 그렇게 되는가 보다. 정말 그 순간만큼은 ‘이렇게 세상과 이별하는 것인가’하는 허망하고도 절박한 마음이었다.

그렇게 안타깝고 손발이 오그라드는 긴장과 초조함 속에서 몇 십 분을 더 앉아 있는데, 은행장께서 선잠을 깨는 듯한 기척이 있었다. 그제서야 옆자리의 임원이 은행장에게 나직이 상황을 설명했다.

그런데, 잠결에 느닷없이 던져진 황당한 소식과 긴박한 상황에서도 전혀 내색을 하지 않고 듣고만 있던 은행장의 신중한 처신을 보면서, ‘큰 조직의 장(長)은 정말 아무나 하는 것은 아니구나’하는 것을 느꼈다. 무언가 달라도 많이 달랐다. 그런 절체절명의 비장한 순간에도 내 마음에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갈 때는 한 시간 걸린 비행거리를 되돌아 오는 데는 약 두 시간이 걸렸다. 출발지로 돌아온 비행기의 바퀴가 땅에 닿으며 활주로에 사뿐히 내려앉자, 그 동안 숨죽이고 두 손 모으며 웅크리고 있던 승객들이 일제히 환호성과 함께 우레와 같은 박수를 쳤다. 그제서야 서로를 돌아보며 활짝 웃음을 터뜨리는 것이었다.

40대 초반의 나이로 출장 중에, 이름 모를 중국의 어느 하늘에서 험한 꼴을 당할 뻔 했던, 사지(死地)에서 살아 돌아온 순간이었다.

우리가 가고 서는 것을 우리가 주관하는 것으로 알고 지내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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