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 아시아금융위기⑦] 뱅커들의 탐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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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 아시아금융위기⑦] 뱅커들의 탐욕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7.01.27 15: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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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뱅커들, 아시아에 돈을 펑펑 대주다가 한꺼번에 빠져

「은행이란 남의 돈을 굴려 이문을 남기는 기업이다. 은행가는 남의 돈을 제 돈처럼 여기며 채무자에게 압박하고, 이문을 부풀리는 돈 장사꾼이다.」

은행원들에겐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이 말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진리다. 돈 장사꾼의 믿음을 얻어 돈을 많이 빌린 기업은 영업 손실을 보더라도 외형적으로 흥할 수 있다. 그러나 돈 장사꾼으로부터 미움을 받거나, 믿음을 잃었을 때 그 기업은 하루아침에 무너진다.

아시아의 위기는 글로벌 뱅커들의 득실이라는 관점에서 문제를 접근해야 한다. 그들은 아시아에서 금융위기가 터지자, 아시아의 금융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성토했다. 그러나 글로벌 뱅커들은 돈을 펑펑 대준 자신들의 문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아시아 위기 직전에 국제 금융가에선 대출 과열 현상이 빚어지고 있었다. 세계은행(IBRD) 통계에 따르면 1996년도 개발도상국에 투자된 자금은 모두 2,850억 달러로, 한해전보다 20%나 늘어났다. 이중 80%인 2,438억 달러는 선진국 민간은행의 자금이고, 정부 베이스 지원이나 IMF등 공공기관의 자금은 412억 달러에 불과했다. 민간 자금의 증가율은 1996년 한해동안 전년대비 32.3%(600억 달러) 늘어난데 비해, 공공 자금은 오히려 23%(120억 달러)나 줄어들었다. (한국은 당시 세계은행 기준으로 개도국을 졸업했기 때문에 이 통계에서 한국에 투자된 해외자금은 제외돼 있다.)

1990년에 선진국이 개도국에 투자한 자금총액중 민간자금과 공공자금의 비율은 거의 50대50의 균형을 유지했었다. 그러던 것이 1996년에는 민간자금과 공공자금의 비율이 80대20으로 바뀌어 버렸다. 이 통계는 90년대 들어 선진국 은행과 기업들이 엄청난 자금을 개도국에 퍼부었고, 특히 1996년에 그 도가 극에 달했음을 입증하고 있다.

1996년에 개도국에 신규 유입된 투자자금중 중국에 가장 많은 520억 달러가 들어갔고, 다음으로 멕시코 281억 달러, 인도네시아 178억 달러, 말레이시아 160억 달러, 브라질 147억 달러, 태국 133억 달러 순이다. 전체 민간자금 중에서 아시아 4개국에만 992억 달러로 40.6%에 이른다.

선진국 뱅커들이 아시아에 이처럼 많은 돈을 빌려준 것은 아시아 국가에서 높은 금리를 제공하고, 연간 10%에 가까운 성장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국내 금리가 낮은 일본과 유럽은행이 미국 은행들보다 아시아 대출에 적극적이었다. 일본은 중앙은행의 오버나이트 금리(초단기금리)가 0.5%로 1%에도 미치지 못했고, 유럽에서 대표적인 독일의 기준 금리가 4%에 불과했다. 5.25%의 기준금리의 유지하고 있었던 미국은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았고, 1980년대와 1994~95년 두차례에 걸쳐 라틴아메리카 경제위기로 은행들이 돈을 떼인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아시아 투자에서 일본이나 유럽 은행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극적이었다. 국제결제은행(BIS) 통계에 따르면 아시아 지역(일본 제외)에 대한 선진국 은행들의 대출액은 1996년말 기준으로 일본이 1,186억 달러로 가장 많고, 독일 417억 달러, 프랑스 400억 달러, 미국 342억 달러, 영국 264억 달러였다.

선진국의 자금이 홍수처럼 몰려오자, 아시아 경제는 한층 활기를 띠었다.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프르엔 세계 최대의 쌍둥이 빌딩이 건설됐고, 인도네시아는 수입품인 벤츠자동차와 경쟁하기 위해 국민차 생산을 추진했다. 태국 방콕의 운하 주변에 고층빌딩이 죽죽 들어섰다.

동남아 국가들은 1996년 상반기부터 수출이 둔화되고, 성장정체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고속성장을 기대하며 투자했던 선진국 은행과 기업들에게 서서히 불안의식이 느꼈다.

아시아 금융위기는 결정적으로 선진국 은행들이 아시아에 투자한 돈을 빼나가면서 발생했다. 여기에 헤지펀드를 비롯, 국제 환투기자들이 지역 통화의 절하를 노려 투기행각을 벌임으로써 그 속도가 빨라졌을 뿐이다.

「글로벌리제이션(globalization)」이란 상품과 돈의 세계적 교역을 동시에 의미한다. 그러나 국제시장에서 상품과 돈은 완연하게 다른 성격을 보이며 거래된다. 상품은 수요공급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고, 생산자 간에 치열한 경쟁을 한다. 한국의 현대와 기아가 만든 차가 미국 시장에서 경쟁을 하고, 일본 히타치의 냉장고가 미국 제너럴 일렉트릭의 냉장고와 유럽시장에서 경쟁한다. 상품 시장에서는 생산자의 기술과 생산비, 그 나라의 통화가치와 생산기반등 각종 요소가 경쟁 요소다. 세계적으로 과잉생산일 경우 국제 가격은 내려가고, 공급 부족일 경우 가격은 상승한다.

이에 비해 화폐, 즉 돈의 국제시장은 경쟁이 없다. 뉴욕 월가의 헤지펀드 자금이나 한국 종금사의 돈이 동시에 인도네시아의 높은 국채 금리를 따먹기 위해 덤벼든다. 원화가치가 떨어질 우려가 있으면, 한국 돈은 금새 달러로 전환돼 미국 시장에 투자된다. 미국의 금리가 내려가면 월가에 몰려 있는 유동성 자금이 언제라도 미국 땅을 빠져 나가려 한다. 단일 시장에서의 금융상품은 국적과 가격이 무시된다. 본능과 광기, 심리적 패닉, 탐욕에 의해 움직인다. 한 헤지펀드가 브라질 헤알화를 공격하면 다른 헤지펀드도 함께 덤벼든다.

상품시장에서의 투기는 자연재해나 전쟁과 같은 극단적인 상황에서 사재기와 같은 제한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그러나 금융 시장에서는 투기가 태반이다. 금융시장에서 하루하루 변하는 수치가 투자 및 투기 동기를 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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