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수 프리랜서] 몇 해 전 가을, 어느 금요일 저녁, 모두들 외출하고 없는 모처럼 한가한 시간에 티브이 채널을 이리저리 만지다가 우연히 케이블에서 『애수(Waterloo Bridge)』라는 영화 제목을 발견했다. 그전에도 그 영화를 보긴 했으나 몇 장면을 빼고는 그 내용을 기억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근 30년 전에 런던에서 워털루 다리를 지나다니면서 그 영화를 떠올렸던 감정들을 되새겨 보고픈 마음에, 1940년에 흑백으로 만들어진 그 영화 속으로 빠져들었다.
비비안 리(Vivien Leigh)와 로버트 테일러(Robert Taylor)가 주연으로 펼치는 애절하면서도 기품 있는 연기가 안개 낀 워털루 다리와 역을 중심으로 펼쳐지는데, 매일같이 워털루 역에서 기차를 타고 출퇴근 하던 시절의 회상과 함께 오랜만에 혼자서 감격의 추억여행을 만끽하였다.
실제로 워털루 다리에 가보았을 때는 생각보다 평범한 다리였다. 『애수』라는 영화를 보면서 상상하던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 그러나 워털루 역만큼은 3년을 매일 같이 기차와 지하철(tube)을 갈아타며 통근하던 곳이라 유난히 기억에 남는다. 특히 한 시간에 2~3편 있는 기차를 기다리며 역 구내에 있는 카페에서 마시던 ‘한 잔의 라거(one pint lager)’와 땅콩안주의 고소한 그 맛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추억 속의 미각으로 남아있다.
맥주는 발효방식에 따라 에일(ale), 라거, 람빅(lambic)으로 나뉘어진다는데, 저온발효방식으로 만들어졌다는 라거는 빛깔도 곱고 시원한 청량감이 있었다. 파인트는 약 473ml의 규격이다. 늦은 퇴근시간에 동료들과 환담하면서 우리의 맥주잔보다는 더 크고 굴곡진 유리잔에 담겨진 그 구수하고 시원한 맥주를 기울이는 그 맛은 정말 일품이었다.
그 당시는 워낙 늦게까지 야근을 자주하는 편이라, 적당한 퇴근 시간에 동료들과 같이 퇴근하는 경우가 그리 자주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간혹 가다가, 야근을 하더라도 저녁식사를 하지 않고 같이 퇴근하는 경우에는 자연스레 발길이 그쪽으로 돌려졌다.
서로 다른 기차 시간을 기다리며 한 잔의 맥주와 함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 틈엔가 이쪽 노선으로 가는 기차를 놓치게 된다. 그러면 또 다른 쪽으로 가는 사람이 다음기차시간을 일부러 흘려 보내면서 이야기 꽃을 피웠다.
처음에 자리 앉을 때는 한 20분 정도 기차시간 기다리는 짬을 이용한다는 것이, 각자가 몇 편의 기차를 그냥 보내버리면서 한 시간 넘게 그렇게 담소를 즐겼다.
선배들과 같이 뱅크(Bank)역에서 전철(tube)를 타고 워털루 역으로 왔을 때, 간혹가다가 같이 가는 동료나 선배들 중 약속이 있거나 각자의 노선 기차시간에 맞춰 그냥 가버리는 경우가 있었다. 그럴때면, 그렇게 한 잔을 걸치는 즐거움(?)을 갖지 못하는 아쉬움으로 제법 서운해 지기도 했다.
그럴 때는 남몰래 몰려오는 시장기를 달래느라 애꿎게 땅콩 섞인 초콜릿을 사서 베어 물고 기차를 타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한창 시장할때인 저녁 9시경 기차를 탈때, 입안에서 살살 녹던 그 초콜릿의 고소한 맛에 빠져들어서 그것이 몸에 나쁘고 위장에 부담이 될 것이라는 것은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런 것들이, 그 당시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십이지궤양을 일으키는데 한 몫을 했을 것이다. 워털루 역을 회상하다 보니, 매일 타고 다니던 그 통근열차의 모습들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그 애수라는 영화 속에서 손을 들어 택시를 타는 장면을 보면서, 그 영화 속에 나오는 2차 대전 개전 당시의 택시 모습이나 1980년대에 내가 런던에서 이용하던 택시(black cab)의 모습이 별반 틀리지 않은 것이 놀랍다. 그 때 택시를 타며 느끼던 생각이 다시금 되새겨진다. 시내의 어느 곳에서든지 손을 들고 택시를 잡은 후 역방향으로 가자고 해도 어제나 군소리 없이 바로 차를 돌려서 가는 것이었다. 아무리 좁은 길이거나 편도 1차선의 좁은 길에서도 택시가 손을 들며 돌리면 오가던 차들이 다 서서 길을 내주는 것이었다.
나중에 그곳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참으로 합리적인 관행’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택시는 누구나 탈 수 있고, 또 타게 될 일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바쁘게 택시를 탄 사람이 쉽게 원하는 길로 가게 해 주면, 내가 다음에 그런 일이 있을 때 편의를 볼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게 그들은 과거에 세계를 주름잡던 선진국답게 그들 나름대로의 규칙들을 준수하며 살아가고 있었고, 극동의 한 동양인에게는 또 하나의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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