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두의 국제이슈 프리즘] 국내 기업들, 왜 美 ITC서 소송전 벌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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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두의 국제이슈 프리즘] 국내 기업들, 왜 美 ITC서 소송전 벌이나?
  • 최동두 미Greenberg Traurig 파트너 변호사
  • 승인 2021.02.15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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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ITC, 세계 기술분쟁 전초적 전장터化
소송 진행 속도 빠르고 '경쟁사 동력에 찬물' 효과 커
ITC 최종 결정땐 美 대통령 거부권등 4가지 선택지 있어
'뒤집기 성공' 사례 드물어...눈높이 달라 합의도 '난항'
최동두 미Greenberg 파트너변호사
최동두 미Greenberg 파트너변호사

[최동두 미Greenberg Traurig 파트너 변호사] 국내 기업들이 미국 국제무역위원회(United States International Trade Commission; ITC)에서 소송전을 벌이고 있는 기사를 자주 접할 수 있다. 메디톡스와 대웅제약은 보톡스 주사제 원료 및 생산 공정 관련하여, LG 계열사와 SK 계열사는 차량용 배터리 관련 기술을 두고 미국에서 소송전을 벌여왔다. 근데, 왜 국내 기업들이 미국 ITC에 가서 다툴까? 

미국 ITC란?

미 ITC는 법원이 아니다. 미 ITC는 자국 시장의 건전성을 보호하기 위해서 불공정한 행위로 생산된 제품이 미국으로 수입되는 거나 유통되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하는 행정기관이다. 여기서 불공정한 행위는 타사의 영업비밀을 도용하거나 특허를 침해하여 제품을 생산 판매하는 행위 등을 포괄적으로 포함한다.

ITC의 주된 기능은 크게 두 가지다. 불공정한 행위 여부를 조사하는 기능과 불공정한 행위가 발견되면 수입금지 등의 행정 명령을 내리는 기능이다. 

ITC 행정 명령을 이해하면 왜 국내 기업들이 미국까지 가서 소송전을 벌이는지 알 수 있다. 먼저 용어를 이해하기 위하여 ITC가 불공정 행위를 조사하는 과정을 간략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미 ITC 소송 과정

ITC 조사 절차는 일반적 미국 소송과 유사하다. 소송의 원고 격인 A사가 침해행위가 의심되는 B사에 대하여 불공정행위 조사 개시를 신청하면서 수입금지 등의 행정명령을 내려 줄 것을 청구하면, ITC는 조사 개시 여부를 결정한다. 문제가 되는 제품 또는 기술이 미국 산업에 영향을 끼치는지, 미국 산업에 기반하고 있는지 등의 소정의 요건이 충족되면 ITC는 조사를 시작한다.   

ITC는 소위 2심제다. 사법부 소속이 아니나 준(準) 판사의 지위를 갖는 행정법 판사(Administrative Law Judge; ALJ)가 약 15개월 간의 소송을 진행한다. 청구인 측에서는 피청구인 측이 자사 기술을 침해하고 도용했다는 점을 입증하고자 하고, 피청구인 측은 불공정 행위가 없었다는 점을 입증하려고 한다. 이 과정을 통하여 ALJ가 예비결정(Initial Determination)을 내린다. 그 다음 단계로 ITC 위원회가 ALJ의 예비결정을 검토하여 최종결정(Final Determination)을 내린다.

ITC 행정명령

ITC 최종결정에서 불공정 거래가 발견되면, ITC는 행정명령을 최종결정에 포함한다. 일반적으로 수입금지명령과 불공정행위 중지명령 두 가지가 있다.

수입금지 조치는 다시 두 가지로 나뉜다. 일반적 수입배제명령(General Exclusion Order)와 제한적 수입배제명령(Limited Exclusion Order)이다. 일반적 수입배제 조치는 그 타격이 즉각적이면서도 일파만파다. 제한적 수입배제명령 또한 만만치 않다.

일반적 수입배제명령(General Exclusion Order)

예를 들어 휴대폰에 들어가는 카메라가 문제라고 치자. 일반적 수입배제명령 하에서는 B사가 생산하는 카메라 뿐만 아니라 B사의 제품이 포함된 모든 제3의 업체 완제품(downstream products)까지도 수입 금지가 가능할 수 있다. 완제품을 생산하는 제3의 업체는 협력업체인 B사 때문에 미국 시장을 포기할 리 없다. 카메라 공급사를 다른 회사로 교체할 것이다. B사는 카메라 사업을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당장 직면하게 된다. 

제한적 수입배제명령(Limited Exclusion Order)의 실질적 효력

제한적 수입배제명령도 그 여파가 만만치 않다. B사의 카메라 및 B사의 카메라가 포함된 ‘B사’의 완제품은 모두 수입 배제 된다. ITC 결정에 대하여 제3의 업체는 당장 영향을 받지는 않지만, A사의 입장에서 본다면 문제가 되는 B사 제품을 채택하고 있는 제3의 업체를 가만히 두고 보지는 않을 것이다.

A사는 제3의 업체를 대상으로 자사의 기술을 침해하는 부품을 활용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손해배상 소송 등을 제기할 수도 있다. 결국 제3의 업체는 카메라 공급업체를 교체하는 ‘현명한’ 결정을 할 가능성이 높다.    

행위중지명령 (Cease and Desist Order)

그런데, B사가 카메라 공장을 미국에서 운영하고 있다고 가정해보면 수입금지 명령만으로는 그 제재의 실효성이 약해진다. 이러한 맹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ITC는 대부분의 경우 수입금지 명령과 동시에 행위 중지명령(Cease and Desist Order)도 내린다.

미국 내에서 해당 기술을 활용한 생산 행위도 금지되고, 이미 들어와 있는 재고품을 판매하여도 행위중지명령을 저촉하게 된다.

그러면 ITC 소송에서 패소하는 경우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무엇이 있을까? 이러한 ITC 최종결정을 직면한 B사의 경우, 대체로 4가지 선택지가 있다.

국내 기술기업들이 미국 무역분쟁 해결기구인 ITC를 찾아 기술분쟁을 해결하려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국내 기술기업들이 미국 무역분쟁 해결기구인 ITC를 찾아 기술분쟁을 해결하려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대통령의 거부권(Veto) 행사

ITC 최종결정에 대하여 미국 대통령은 60일간의 기간 내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미 대통령의 ITC 명령에 대한 거부권은 미 무역대표부에게 위임되어 있다. ITC 결정을 집행하는 경우 미국의 이익에 반한다고 판단되는 극히 드문 경우에 이러한 거부권이 행사된다. 

2010년 이후 단 한차례 거부권이 행사되었는데, 애플과 삼성전자의 ITC 소송에서 삼성전자가 승소하여 애플 제품에 대한 수입금지 명령이 내려진 경우다. 미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수긍이 가는 상황이었다. 

미국 입장에서 볼 때, 외국 기업들 간의 ITC 소송에서 미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필요가 어떤 경우에 있을까? ITC 최종 명령을 집행하면 미국 경제에 ‘큰’ 타격이 발생할 것이라는 점이 전제되어야 한다.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 1월 Covid-19로 인한 경제난을 타파하기 위해서 1조9000억달러의 경기 부양책을 확정했다. 우리 돈으로 2000조원이 넘는 액수다. 미국 경제 규모를 쉽게 가늠할 수 있는 지표다. ITC 명령을 집행할 때 상당한 수준의 불이익이 발생할 것이란 점을 보여 주기란 여간해서는 쉽지 않은 큰 경제 규모다.   

연방항소법원 항소

미 ITC의 최종결정은 미국 연방항소법원(U.S. Court of Appeals for the Federal Circuit)으로 항소 가능하다. 미국 연방항소법원은 법리심 위주이고 명백한 오류가 없는 이상 사실관계를 다시 검토하지 않는다. 특히 항소법원은 미 ITC의 사실관계에 대한 판단에 상당한 존중을 보인다.

패소한 B사의 입장에서는 두 가지 목적이 있을 것이다. 연방항소법원이 ITC의 행정명령에 대한 집행을 항소 기간 동안 유예하여 주는 것과 ITC의 결정을 뒤집어 주는 것. 먼저 ITC의 결정이 명백히 잘못되었다는 점을 보여줘야만 집행유예신청이 받아들여 진다. 연방항소법원이 ITC 명령의 집행을 유예한 사례는 매우 드물다.      

회피 설계

문제가 되는 기술이 아닌 다른 기술을 개발하고 그 기술을 활용하여 제품을 생산하는 방안이다. 정말 다른 기술이란 점이 입증된다면 이러한 제품은 수입배제조치 대상이 아니다. 이러한 대체 기술 개발이 가능한지, 개발 기간이 얼마나 소요될지, 또는 얼마나 경제성이 있을지는 해당 업계가 가장 잘 안다. 

소송 당사자들 간의 합의

양사가 합의하면 수입배제조치가 풀린다. A사가 B사에게 해당 기술에 대한 실시권을 허여(許與: 권한이나 자격을 허락하여 줌)하면 되는데, 기술료(royalty) 등의 조건에 대한 합의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특히 A사의 입장에서는 자신에게 유리한 판결문이라는 칼자루를 쥐고 있기 때문에 눈높이가 다를 수 있다.   

이처럼 미 ITC가 전세계 기술 분쟁의 전초적 전장터가 되었다. 1, 2년 사이에 확확 바뀌는 기술 경쟁 사회에서 몇 년씩 법원에서 기술 분쟁을 진행하는 것 보다 소송 전개 속도가 빠르고, 특히 경쟁사의 동력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는 행정명령 덕분에 ITC는 IT 업계에서 기술 분쟁을 다루는 매력적인 장(場)이 되었다. 

● 필자인 최동두 변호사는 미국에 본사를 둔 세계적인 로펌 Greenberg Traurig의 국제중재 및 분쟁 분야 파트너 변호사다. 미국과 홍콩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고, 글로벌 기업의 국제분쟁 및 전략적 프로젝트 담당변호사로도 다년간 근무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변호사로 등록되어 있으며, 국제학술지에 수 편의 국제중재 논문을 출판한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국제분쟁 전문 변호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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