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학자가 본 한국 사회와 문화] 소고기와 beef, 한국에게 알려주는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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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학자가 본 한국 사회와 문화] 소고기와 beef, 한국에게 알려주는 교훈
  • 이창봉 가톨릭대 영어영문학부 교수
  • 승인 2021.02.17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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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민이 쓰던 영어, 어떻게 세계어 됐을까...'포용문화정책'이 결정적
프랑스, 자국 본토언어만 집착...식민지 '프랑스어' 수용안해
외국인들이 변형하는 한국어와 한국문화, 우리가 적극 포용해야
한국인 스스로 '세계의 시민' 소양 갖고, 타국 사람들 존중하고 사랑해야
이창봉 가톨릭대 교수
이창봉 가톨릭대 교수

[이창봉 가톨릭대 영어영문학부 교수] 우리 민족 최대 명절인 설의 대표적인 음식이라면 당연히 떡국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제사상에 올리는 음식 중 가장 귀한 것 중 하나가 소고기일 것이다.

한국어에서 소고기라는 단어는 가축을 뜻하는 ‘소’와 식용 가능한 가축의 살을 뜻하는 ‘고기’의 합성어이다. 그런데 같은 뜻을 나타내는 영어 단어들은 가축을 뜻하는 것으로 ‘bull’과 ‘cow'를 쓰는 반면, 고기를 뜻하는 단어로는 ’beef'를 따로 쓰고 있는 흥미로운 차이를 발견하게 된다. ‘돼지(고기)와 pig(pork)’ 쌍도 같은 성격의 예이다.

왜 이 흥미로운 차이가 생겼을까? 언어는 문화의 거울이자 역사를 담은 그릇이다. 이 차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어의 역사를 살펴보아야 한다.

귀족층의 언어 '프랑스어', 평민의 언어 '영어'

영국 역사를 보면 영국이 프랑스의 지배를 받은 적이 있다. 1066년에 프랑스 노르망디 공국의 윌리엄(William) 공작이 영국을 침략 정복하면서 (이 역사적 사건을 노르만 침공(Norman Conquest)이라고 함) 오랫동안 영국이 프랑스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다. 그 결과 지배층인 귀족의 언어는 프랑스어가 되었고 피지배층의 언어로는 그대로 영어가 쓰이게 되어 두 언어가 공존하게 된다.

윌리엄 공작이 이끄는 프랑스군이 영국을 침공해 전쟁을 벌이고 있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
윌리엄 공작이 이끄는 프랑스군이 영국을 침공해 전쟁을 벌이고 있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

당시 평민이었던 영국인들은 가축을 키우는 일에 종사했으므로 소와 돼지를 그들의 언어인 영어 단어(bull, cow, pig)로 불렀던 반면, 귀족층으로서 식탁에 올려진 그 고기를 먹던 프랑스인들은 그 고기를 자신들의 언어인 불어 단어(boef, porc)로 불렀을 것임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boef'가 후에 영어식 발음에 가깝게 변해서 ‘beef'가 되었고 ’porc'가 ‘pork'가 되었던 것이다. 이 시기를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영어는 프랑스어에서 수많은 단어를 차용하고, 문법적으로도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

이처럼 영국과 프랑스는 언어 측면에서 긴밀한 접촉과 영향을 끼친 사이였지만 제국주의 팽창 시대 이래로 유럽의 맹주로서 패권을 다투던 강력한 라이벌이기도 했다. 아프리카를 비롯해서 아시아권까지 식민 국가를 늘리며 다투던 때에 프랑스는 영국 못지않은 패권 국가였다.

식민지 언어 포용한 '영어', 본토 언어만 고집한 '프랑스어'

여기서 또 흥미로운 것은 영국과 프랑스가 다른 나라를 식민화하고 난 후의 언어 정책이 정반대였다는 점이다. 영국은 식민국 민족어의 간섭과 영향을 받은 다양한 영어를 모두 환영하는 포용 정책을 폈던 반면 프랑스는 본토의 순수 프랑스어 보급을 고집하며 다양한 프랑스어를 폄하하는 배타적 정책을 폈다. 사실 프랑스 사람들의 순수 프랑스어 집착은 놀랄 만하다. 심지어 캐나다 퀘백(Quebec) 주에서 쓰는 프랑스어도 파리 프랑스어(Parisian French)가 아니라고 폄하할 정도다.

언어 정책적 차이는 두 국가의 언어문화적 팽창에 있어서 결정적인 차이로 이어졌다. 영어는 거의 모든 나라에서 수용하고 습득하는 세계어로 성장한 반면 프랑스어는 그 정도 수준으로 퍼져나가지 못했던 것이다. 언어가 문화이고 문화가 언어에 의해 전파되는 것이므로 이 결정적 차이는 문화적 전파력과 영향력의 차이로 이어지기까지 했다. 

오늘날 영어가 가진 세계어로서의 지배적 지위와 세계 곳곳에 스며든 영어권 국가의 문화는 그들의 보이지 않는 언어문화적 전파력에 힘입은 것이다. 프랑스는 한때 영국에 버금가는 힘을 가진 나라였지만 자기 언어에 대한 편협한 순수주의, 자기도취적 집착과 사랑 등 배타적 언어 정책을 고집함으로써 자기 스스로 언어문화적 외연의 성장을 저해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다.

요즘 한국이 한류(Korean Wave)의 세계적 인기와 코로나 방역 성공 등의 이유로 세계적 주목을 받고 있다. 속된 말로 뜨고 있다. 이 상승 분위기 속에서 전 세계적으로 우리 한국어 배우기 열기와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고 있다.

서울을 찾아 한국 문화를 즐기며 기념 사진을 찍고 있는 외국인들. 사진= 연합뉴스
서울을 찾아 한국 문화를 즐기며 기념 사진을 찍고 있는 외국인들. 사진= 연합뉴스

한국도 해외에서 쓰는 한국어 포용해야

영어의 ‘beef’에 얽힌 이야기는 중요한 역사적 시기의 한국에게 매우 의미있는 교훈을 던져 주고 있다. 세계 속 한국의 발전과 성장은 언어문화적 팽창에 결정적으로 달려 있으며, 그 팽창을 주도하는 힘은 모두에게 열려있는 포용적 언어문화 정책과 한국민의 성숙한 세계시민으로서의 소양에서 나온다는 일깨움일 것이다.

우리는 포용적 언어문화 정책의 일환으로 다른 나라 사람들이 쓰는 한국어와 그들이 다른 문화와 융합한 한국문화의 다양한 변형 모습들을 환영하고 포용하면서 적극적으로 그 성장을 지원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더욱 널리 퍼뜨리고 성장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해외에서 행하는 한국어 교육에서 현지 비한국인 선생님의 역할과 비중을 중시한다든지, 케이팝(K-pop) 아이돌 그룹에 비한국인 멤버를 좀 더 적극적으로 가담시킨다든지, 한국 드라마와 영화 제작에서 다문화와 문화간 접촉 관련 주제를 확대한다든지 등의 노력이 구체적인 예가 될 것이다.

포용적 언어문화정책이 한국 문화 팽창의 추진 동력이라면 그것을 운전하는 사람들은 한국민들 자신이다. 외국인들과 접촉하며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직접 전파하는 당사자가 바로 국민들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한국인으로서 한국어와 한국문화에 대한 사랑과 자긍심을 갖는 것은 근본적으로 중요하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개인이나 국가가 어떻게 안정감(security)을 갖고 남을 포용해서 리더가 될 수 있겠는가?

남을 존중하고 사랑할 줄 알아야

그런데 자기애와 자긍심은 남을 존중하는 분위기 속에서 겸손하게 밖으로 드러날 때 빛이 나는 것이다. 우리 주변을 보면 쉽게 이 중요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주변에 각자의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실력 있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그들 중 남들로부터 더욱 인정을 받고 큰 인물로 성장하는 사람들이란 바로 남을 사랑하고 포용할 줄 아는 사람들임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파리 프랑스어(Parisian French)의 순수성을 고집하는 틀에 갇힌 프랑스 모습은 자기 능력을 맹신하고 자신만이 옳다는 착각과 오만으로 좀처럼 자기의 세계에서 나오지 않고 남들과 교류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을 떠올리게 한다. 개인도 국가도 자기만 아는 그릇된 자만심의 틀 속에 스스로를 가둔 상태에서 어떻게 남을 받아들일 여유와 탄력이 생길 수 있겠는가?

한국은 뜨고 있고 세계는 한국을 주목하고 있다. 한국을 세계의 리더로 이끌어갈 주역들이 바로 우리 국민들이다. 열린 마음으로 남을 사랑하고 포용하자.

● 필자인 이창봉 가톨릭대 영문과 교수는 서울대 영어영문학과(동 대학원 영어학 석사) 졸업 후 미 펜실베이니아대(University of Pennsylvania)에서 언어학 박사(세부전공: 화용론(Pragmatics)) 학위를 받았다. 주로 조건절(Conditionals) 연구 논문을 발표해 왔으며 최근에는 은유(metaphor)를 통한 인간 본성 탐구와 언어문화의 보편성과 다양성 관련 주제 연구를 해왔다. 영어와 미국문화 관련 글과 언어를 통해 한국 사회와 문화를 비판하고 성찰하는 글도 활발히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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