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영의 통상인사이트] 바이든 행정부의 ‘다자주의적’ 통상정책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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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영의 통상인사이트] 바이든 행정부의 ‘다자주의적’ 통상정책 전망 
  • 이효영 국립외교원 교수
  • 승인 2020.11.30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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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영 국립외교원 교수.
이효영 국립외교원 교수.

[이효영 국립외교원 교수] 바이든 행정부의 통상정책은 트럼프 행정부와는 달리 동맹국과의 무역 관계를 중시하며 보다 ‘다자주의적(multilateral)’인 접근방식을 추구할 것으로 예견되고 있다.

그러나 바이든이 의미하는 ‘다자주의’는 자유무역(free trade)을 수호하는 기존의 다자주의를 의미하기보다는 미국에게 불리하지 않은 공정한 무역(fair trade)을 주창해온 트럼프 행정부의 통상정책 노선과 근본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평가된다.

바이든이 추구하는 ‘다자주의’란 결국 중국의 체제 변화를 유도하기 위한 목적으로 동맹국 및 유사한 입장을 가진 국가들(like-minded countries)과의 다자적 연대를 구축하여 중국에 대한 효과적인 압력을 행사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마비되어 있는 WTO 다자무역체제의 기능 복원을 추구할지 여부는 미국이 원하는 방향으로 WTO 체제의 개혁이 이루어질 수 있는지 여부에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의 출범 후 최우선 과제는 코로나19 이후의 미국 국내경제 회복과 미국 제조업의 경쟁력 회복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정책 수단으로서 바이든 후보가 대선 공약으로 강조했던 것이 ‘메이드 인 아메리카(Made in all of America)’이다.

즉, 기존의 ‘바이 아메리카(Buy America·미국산 구매 우대)’ 정책을 더욱 확대하여 미국 제조업의 생산역량을 회복시키고 생산업종의 일자리를 창출하자는 것인데, 이는 추진 과정에서 외국산 제품에 대한 차별대우를 야기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WTO 정부조달협정(GPA) 회원국인 미국은 국제규범에 따라 정부조달 시장을 대외에 개방해야 하고 외국산 조달제품에 대한 차별대우가 금지되는데, 바이든 행정부의 ‘Made in America’ 정책이 실현된다면 이는 다자규범과 배치되는 정책 방향으로 평가될 수 있다. 

또 바이든 행정부 하에서는 노동자 보호와 환경 보호가 새로운 통상정책의 기조를 이룰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새로운 형태의 보호무역장벽이 될 수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가 미 대선 다음날이었던 지난 4일 새벽(현지시간) 델라웨어주 월밍턴 체이스 센터에서 승리를 확신하는 입장 발표에 나서며 주먹을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가 미 대선 다음날이었던 지난 4일 새벽(현지시간) 델라웨어주 월밍턴 체이스 센터에서 승리를 확신하는 입장 발표에 나서며 주먹을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바이든 후보가 2025년까지 도입 계획을 발표한 탄소조정세(carbon adjustment tax)가 도입되면 친환경정책 여력이 부족하여 미국이 요구하는 탄소배출 저감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개도국에 대한 무역장벽으로 작용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미국이 향후 추진하게 될 무역협정은 노동과 환경 보호 관련 규정의 비중이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되는데, 시장접근의 조건으로 상대국의 노동 환경, 친환경 정책 등에 대한 요구는 과도할 경우 보호무역장벽이 될 수 있다.

이미 미국은 USMCA(미국·멕시코·캐나다)무역협정의 자동차 원산지 규정에 ‘노동 부가가치(LVC)’ 요건을 신설하였을 뿐 아니라, 3국 정상이 협정을 서명한 이후에도 미 하원에서 민주당의 요구로 USMCA의 노동과 환경 조항의 이행을 강화하기 위한 분쟁해결절차를 신설하는 내용을 개정의정서에 반영한 바 있다.

미국산 자동차 소재·부품의 비중을 높여 국내 제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일자리 창출을 목적으로 한다는 명분을 주창하고 있지만, 이는 WTO(세계무역기구)규범상 내국민대우(national treatment) 원칙 위반의 소지가 큰 차별적 조치로 평가된다. 

WTO 상소기구의 기능 상실로 전례 없는 위기에 직면한 WTO 다자무역체제의 개혁 문제는 바이든 행정부 하에서 중국의 체제 변화를 유도하는 정책의 일환으로 추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트럼프 행정부가 추구해온 대(對)중국 강경 노선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평가되며, 결국 중국의 비시장경제(non-market economy) 체제에 대한 효과적인 규제를 도입하기 위한 목적 하에서 WTO 체제의 개혁을 위한 의제를 다룰 것으로 평가된다.

따라서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의 체제 변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효과적 수단으로서 다자무역체제의 기능 복원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는 경우 다른 형태의 다자적 연대를 모색할 가능성도 클 것으로 예측된다.

이와 같은 새로운 형태의 다자적 연대는 미국이 신뢰할 수 있는 동맹국이나 유사한 입장을 가진 국가들을 대상으로 할 것으로 예상되며, 디지털무역 등 미래의 성장동력인 신산업 분야에 대한 국가안보 문제를 비롯하여 노동 및 환경보호 등을 포괄하는 높은 수준의 경제적 연대를 모색하는 형태가 될 전망이다.

이미 EU, 일본, 캐나다, 호주 등은 다양한 쟁점 관련 연대를 형성하며 국제규범의 방향 설정을 위한 제안을 하고 있는 상황으로 우리도 이와 같은 상황의 전개 가능성에 적극 대비할 필요가 있다. 

● 이효영 박사는 서울대학교에서 국제통상 전공으로 국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청와대 경제수석실 등을 거쳐 현재 국립외교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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