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오지날] 세상은 아이돌에게 어떤 인간이 되기를 바라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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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오지날] 세상은 아이돌에게 어떤 인간이 되기를 바라는 걸까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0.10.28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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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인성 논란을 바라보는 회사의, 미디어의, 대중의 이중적 잣대에는 문제가 없을까?
레드 벨벳의 리더 '아이린' 사태를 보면서
'오지날'은 '오리지날'과 '오지랖'을 합성한 표현입니다.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따뜻한 시선으로 대중문화를 바라보려합니다. 제작자나 당사자의 뜻과 다른 '오진' 같은 비평일 수도 있어 양해를 구하는 의미도 담겼습니다. 

 

강대호 칼럼니스트
강대호 칼럼니스트

[강대호 칼럼니스트] 어떤 아이돌이 이슈를 몰고 왔다. 우리나라에서 규모가 크기로 유명한 어느 엔터테인먼트 회사에 소속된 여자 아이돌 그룹의 한 멤버가 인성 논란을 불러온 것이다.

이 그룹이 2014년 8월에 데뷔했으니 6년이 지난 다음에야 사고가 터진 것이다. 그렇다면 지난 6년간 그녀의 인성에 아무 문제 없다가 얼마 전 갑자기 그녀의 인성에 문제가 생긴 것일까.

그런 건 아닐 듯싶다. 그녀에게 갑질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어느 관계자의 폭로에 자기도 비슷한 경험을 했노라고 주장하는 다른 관계자들의 고백들이 잇달았다. 미디어들도 이를 받아 ‘정색’한 표정의 그녀 사진이 들어간 기사들을 쏟아내었다. 대중들은 그녀의 인성 문제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며 비판 대열에 합류했다. 일부는 그녀의 팀 탈퇴를 요구하기도 했다.

연예 기사를 많이 보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를 일컫는지 알 것이다. 그녀는 SM 소속 레드벨벳의 리더 ‘아이린’이다. 다만 이 글은 그녀만을 소재로 한 글이 아니다. 아이돌과 아이돌을 제품으로 사업을 영위하는 엔터테인먼트 회사들과 그 상품의 소비자들인 대중과 미디어를 향한 글이기도 하다.

레드벨벳의 ‘아이린’. 사진제공=SM Town 레드벨벳 홈페이지
레드벨벳의 ‘아이린’. 사진제공=SM Town 레드벨벳 홈페이지

아이돌에게 들이대는 '이중적 잣대'

나는 이번 논란을 지켜보며 연예인, 특히 아이돌을 바라보는 어떤 양가적 시각 혹은 이중적 잣대를 느꼈다. 그런 시각을, 혹은 잣대를 들이대는 주체는 대중이기도 하고 때로는 아이돌을 사업모델로 하는 회사들이기도 하다. 물론 미디어도 그 자리를 차지한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돌들은 참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중이 자기들 취향에 맞는 제품으로 대할 때가 있는가 하면, 때로는 완성된 표본으로서의 인간으로 대할 때가 있으니 말이다. 어떤 리듬에 맞춰 춤을 춰야 할까.

회사도 마찬가지다. 연습생일 때는 먼저 완벽한 인간이 되라고 강조하더니 아이돌로 인기를 얻게 되자 값나가는 상품으로만 대할 뿐이다. 인기만 좋고 매출만 높으면 모든 게 용서되는 분위기다. 아이돌들은 세상을 연습실 안과 소속사 내부의 역학관계로만 배우지 않을까.

누구의 문제일까. 이번에 이슈를 제공한 그 아이돌의 문제일까. 아니면 그 아이돌의 갑질을 고발한 관계자의 문제일까. 혹은 아이돌의 인성을 그 어떤 가치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대중과 미디어의 문제일까.

그렇다면 그녀가 소속한 회사는 여기서 아무 책임이 없을까. 이 아이돌 그룹은 데뷔한 지 6년이 지났다. 그리고 멤버들은 데뷔하기 전 수년간 연습생 신분으로 회사에서 단련을 받았다. 단언컨대 그 회사는 지금까지 최소한 10년 이상 각 멤버를 지켜봤을 것이다. 그런데 몰랐을까. 그녀에게 인성 문제가 있다는 걸.

문제의 폭로 후 그녀는 SNS를 통해 사과했다. 회사도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이것은 그녀에게 갑질을 당했다는 관계자의 주장이 사실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도 계속 쏟아진 그녀의 갑질과 인성 증언은 대중이 짐작만 했던 그녀의 문제가 사실은 진짜였다는 팩트로 자리 잡고 말았다.

개인의 문제일까 아니면 회사의 책임일까

여러 정황을 미루어 보면 그녀가 소속한 회사는 그녀에게 인성 혹은 태도 문제가 조금이라도 있다는 걸 진작부터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대중이 그 사실을 모르게 단속하며 막아왔을 것이다. 그런데도 폭탄이 터졌다. 그것도 아이돌이라면 언젠가 또 만날 수밖에 없는 연예계 관계자에게 터뜨렸다. 우리나라에서 규모가 크기로 유명한 그 회사의 매니저들은 그때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이 지점에서 난 이런 생각을 해봤다. 일부러 막지 않은 것은 아닐까 하고. 연습생 시절과 신인 시절 인성 문제는커녕 회사 지시에 잘도 따르더니 인기가 하늘을 찌르자 숨어있던 인성이 드러난 톱스타를 길들이려는 의도로.

폭발 초기, 회사가 막아주지 않고 보호하지도 않으니 대중은 물론 미디어까지 달라붙어서 비난을 퍼붓는다. 그녀는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회사 앞에 미디어 앞에 그리고 대중 앞에.

물론 공상을 밥 먹듯이 하는 나의 억측일 뿐이다. 아이돌 그룹의 생명은 이미지인데 그 이미지에 상처를 내면서까지 그럴 리는 없을 것이다. 그 어떤 회사가 상품 가치의 하락을 감수할 수 있을까.

그녀의 사과와 회사의 재발 방지 선언 이후 미디어는 놀라울 만치 잠잠해졌다. 마치 활활 타오르던 불길이 갑자기 사그라진 모양이다. SNS에서는 아직 폭로가 이어지고 있지만 주요 미디어에서는 그것을 더는 받아 적지 않는다.

더욱 놀라운 건 하루에도 여러 편 글을 올리는 칼럼니스트들이 이 이슈로는 짧은 칼럼 하나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것이 비판이든 옹호이든 간에 말이다. 다만 몇몇이 관련 기사에 인터뷰로 등장했을 뿐이다.

마치 삼성에 관대한 미디어들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일간지와 경제지가 삼성을 대하듯이 연예 미디어는 SM을 대하는 것일까. 심지어 스태프와 일반인 SNS를 탈탈 털어 그녀에 대한 미담 발굴 경쟁을 벌이기까지 한다.

반성문을 쓴 그녀는 한동안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을 것이다. 이번 참에 회사의 위력을 맛보았으니 더더욱 그러지 않을까. 회사의 보호망 밖에서는 난도질당한다는 걸 뼈저리게 학습했으니 말이다.

다큐멘터리 ‘블랙핑크: 세상을 밝혀라’ 포스터. 사진 제공=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블랙핑크: 세상을 밝혀라’ 포스터. 사진 제공=넷플릭스

'인내'라는 폭탄을 품고 사는 아이돌들

얼마 전 어느 여자 아이돌 그룹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봤다. 영화는 그녀들이 빌보드 차트 상위권에 오르며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기까지의 성장 이야기가 담겼다. 서로 다른 문화에서 자란 아이들이 한국에서 치열한 오디션을 거치고 오랜 연습생 생활을 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거기엔 그룹 멤버가 되지 못하고 탈락한 수많은 연습생도 배경처럼 흐른다. 이 여자 아이돌 그룹의 멤버들은 수많은 경쟁의 순간을 수년 이상 견뎌온 것이다.

영화는 앳된 모습에서 벗어나 점점 성숙해지는 모습과 연습생 친구들이 하나둘 없어지는 걸 지켜봐야 했던 그녀들의 인내를 담고 있었다. 대중 앞에서는 항상 웃어야 하고 앨범 콘셉트가 바로 그녀들의 캐릭터임을, 아니 그녀들 그 자체임을 보여줘야 하는 아이돌 삶의 한 단면도 볼 수 있었다.

이러한 인내에 숨겨진, 혹은 연출에 담긴 그녀들의 실제 마음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혹시 언제 터질지 모를 폭탄을 품고 있지는 않은 걸까.

마지막으로 나는 대중이 아이돌에게 어떤 모습을 원하는지 생각해 보았다. 대중이 아이돌을 자기들이 좋아하는 음악과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패키지 상품으로 보는지 아니면 그 상품에 담긴 철학을 꿈속에서도 실천해야 하는 완벽한 인간이 되기를 원하는지 하는. 혹은….

답이 하나로 모일 문제는 아니었다. 다만 아이돌들도 대중처럼 유혹에 빠지기 쉬운 그저 자연인일 뿐일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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