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의 책이야기] 불에 타버린 도서관에서 발굴한 이야기, '도서관의 삶, 책들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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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의 책이야기] 불에 타버린 도서관에서 발굴한 이야기, '도서관의 삶, 책들의 운명’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0.09.27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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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 작가 수전 올리언...도서관 최대 수수께끼 파헤친 '논픽션'
출간 즉시 전미 베스트셀러 기록...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스 '올해의 책'
1986년 4월 일어난 LA 중앙도서관 화재가 소재....4년간 자료조사, 관련 인물 인터뷰 거쳐
1986년 LA 중앙도서관 화재 당시 모습.사진=LA Public Library Collection
1986년 LA 중앙도서관 화재 당시 모습.사진=LA Public Library Collection

[오피니언뉴스=강대호 칼럼니스트] 도서관에 갈 수 없다. 정확히는 서고에 꽂힌 책을 직접 고를 수 없다는 의미이다. 내가 사는 지역의 도서관은 빌리고 싶은 책을 인터넷으로 예약한 후 약속된 시간에 가서 받아오는 시스템이다. 서고를 돌아다니며 내용과 생김새까지 확인하며 책을 고르는 재미는 지금은 즐길 수 없다. 모두 코로나19 때문이다.

미국에서도 한 대형 도서관을 수년간 이용하지 못했던 시절이 있었다. 화재 때문이었다. 그 도서관에 불이 나서 건물은 물론 책까지 타버린 탓이다. 타지 않은 책들도 불을 끄느라 뿌린 물 때문에 젖어 버렸다. 타버린 책이나 젖은 책은 읽기는커녕 손대는 것도 위험하다. 바스러지거나 찢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 ‘수전 올리언’은 1986년 4월에 일어난 로스앤젤레스 중앙도서관 화재를 소재로 ‘도서관의 삶, 책들의 운명’을 썼다. 책 애호가이기도 한 그녀는 100만 권이 넘는 책이 화재로 훼손된 사건에 호기심을 느껴서 약 4년간의 자료조사와 관련 인물 인터뷰를 거쳐 화재 뒷이야기와 도서관에 관한 이야기를 발굴했다. 수전 올리언은 “지방 신문에 실린 눈에 띄지 않는 작은 기사에서 단초를 잡아 엄청나게 큰 사회의 비밀을 밝혀내는 책을 쓴다”는 평을 듣는 유명 논픽션 작가이다.

'도서관의 삶,책들의 운명'.글항아리 펴냄.
'도서관의 삶,책들의 운명'.글항아리 펴냄.

도서관과 책이 불에 타버렸다는 이 책의 광고 문구를 보고는 (책 성애자인) 나는 오금이 저리는 느낌을 받았다. ‘레이 브래드버리’의 소설 ‘화씨451’도 떠올랐다. 책이 불탈 때 온도를 상징하는 제목이다. 소설은 책이 금지된 세상에서 책을 불태우는 직업인 방화수(fireman, 이 소설에서는 fireman이 불을 끄는 게 아닌 책을 불태우는 직업으로 묘사됨)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이다. 나는 책에 불이 붙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저자는 크게 분노했다.

책을 파괴하는 행동은 그 문화와 역사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과거와 미래의 연속성이 파열되었다고 말하는 강렬한 방법이다. 책을 뺏는 것은 사회가 공유한 기억을 뺏는 것이다. 꿈꿀 수 있는 능력을 빼앗는 것과 비슷하다. 책을 파괴하는 것은 죽음보다 더 나쁜 무언가를 선고하는 행위다. 그 문화가 아예 존재한 적이 없었던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131쪽)

1986년의 화재로 LA 중앙도서관은 약 40만 권의 책이 완전히 재로 변했고 70만 권 넘는 책이 훼손됐다. 100만 권 넘는 책을 못 보게 된 것이다. 불타거나 훼손된 책의 수는 일반적인 도서관 분관 15개의 소장 도서를 전부 합친 것과 맞먹었다. 이 화재는 또한 미국 역사상 공공도서관이 입은 최대의 손실이었다.

저자 수전 올리언은 30년 전 발생한 이 도서관의 화재를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봤다. 그녀는 화재 조사 기록만 파고들지 않았다. 도서관과 관련한 오래된 신문 기사 스크랩과 로스앤젤레스 도서관을 거쳐 간 사서들의 기록에서 쉽게 접하지 못할 사연들을 찾아냈다. 저자는 그 이야기들을 흥미롭게 풀어낸다.

책 내용은 세 줄기가 하나로 묶이는 방식으로 펼쳐진다. 먼저 로스앤젤레스 공공도서관의 역사를 다룬다. 도서관이 처음 세워진 19세기 중반에는 비싼 연회비 때문에 아무나 이용할 수 없었고 여성과 어린이는 차별받았던 역사를 소개한다. 이후 전문 사서가 등장해서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발전해가는 모습을 다룬다. 특히 LA 중앙도서관 건물 건축 및 보수 이력과 화재로 파괴된 후 새로 건축한 과정도 설명한다.

두 번째 줄기는 도서관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이용자들에 관한 이야기다. 문학이나 예술 혹은 어린이나 청소년 코너에서 일하는 다양한 경력의 사서들이 등장한다. 저자는 이들의 인생에 책과 도서관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추적한다. 도서관에는 사서들만 일하는 건 아니다. 배송직원, 미화원, 경비요원들과도 도서관과 얽힌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도서관을 이용하는 다양한 시민들을 조명한다. 그중에는 노숙자들도 있다. 그들도 시민들처럼 책을 보거나 인터넷을 이용하러 도서관을 방문한다. 저자는 미국의 공공도서관에 노숙자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많이 있음을 독자들에게 상기시킨다. 도서관이 지역 사회에 미치는 영향도 함께 분석한다.

수전 올리언은 30년 전 발생한 이 도서관의 화재를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봤다.  도서관과 관련한 오래된 신문 기사 스크랩과 로스앤젤레스 도서관을 거쳐 간 사서들의 기록에서 쉽게 접하지 못할 사연들을 찾아냈다. 사진=수저 올리언 트위터
수전 올리언은 30년 전 발생한 이 도서관의 화재를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봤다. 도서관과 관련한 오래된 신문 기사 스크랩과 로스앤젤레스 도서관을 거쳐 간 사서들의 기록에서 쉽게 접하지 못할 사연들을 찾아냈다. 사진=수저 올리언 트위터

마지막 줄기는 도서관 화재 관련한 이야기다. 이 부분에서 화재 조사와 방화 용의자를 둘러싼 이야기들을 소개한다. 당시 LA시 당국은 화재의 원인을 방화로 보았고 유력한 용의자도 확보했다. 하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어서 용의자는 풀려난다. 결국 LA 중앙도서관 화재의 원인은 미궁으로 빠진다.

하지만 도서관을 다시 살려야 한다는 관심은 불타올랐다. 화재로 도서관과 책이 파괴되었지만 각계각층의 관심과 연대로 다시 복구되는 과정은 잔잔한 감동을 준다.

1986년 어느 날 도서관에 화재가 일어나자 수천 명의 자원봉사자가 몰려들었다. 그들은 불에 그을리고 물에 젖은 70여만 권의 책을 식품회사 냉동고로 옮겼다. 연기 자욱한 건물 안에서 문밖까지 손에서 손으로 책을 전해 날랐다. 자원봉사자들은 사흘간 밤낮으로 일했다. 그리고 냉동고에 보관된 책들은 2년 뒤에야 해동, 건조, 소독하고 보수되어 다시 제본할 수 있었다.

LA 시민들은 연대의 힘으로 도서관을 다시 만들어 갔다. 로스앤젤레스 중앙도서관이 화재 후 7년 뒤인 1993년 10월 3일 도서관은 재개관한다. 개관식에는 200만 권이 넘는 책을 시민들이 함께 꽂는 ‘책 꽂기 파티’가 열렸고 5만 명이 넘는 사람이 모여 도서관의 부활을 축하했다.

세네갈에서는 누군가의 죽음을 예의 있게 표현할 때 그 혹은 그녀의 도서관이 불탔다고 말한다. (중략) 우리 정신과 영혼에는 각자의 경험과 감정이 새겨진 책들이 들어 있다. 각 개인의 의식은 스스로 분류하여 내면에 저장한 기억들의 컬렉션, 한 사람이 살아낸 삶의 개인 도서관이다. (120쪽)

이 책에서 가장 공감되는 대목이었다. 한 사람이 살아낸 삶의 도서관. 어쩌면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고 우리가 죽으면 불타 사라질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세상과 공유할 수만 있다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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