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h so! 베를린] 베를린은 러시아인들의 해방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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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h so! 베를린] 베를린은 러시아인들의 해방구인가?
  • 최수정 베를린 통신원
  • 승인 2020.08.26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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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극물 중독 위험 빠진 '러시아 반체제인사 나발리'
베를린에 사는 러시아인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궁금"
러시아인들의 독일 이동은 역사적 사건과 맞물려 있어 '흥미'
통독후 베를린, 가장 비독일적인 도시로 거듭나...러시아인의 안식처 돼
최수정 베를린 통신원
최수정 베를린 통신원

[오피니언뉴스=최수정 베를린 통신원] 지난 7월 22일 독일 베를린으로 급히 옮겨진 러시아 반체제인사 알렉세이 나발리에게서 오늘 독극물 임상반응이 나왔다고 한다. 러시아 반체제 인사들이 위험에 처하게 되면 늘 베를린으로 온다.

'러시아 정적'들이 도망쳐오는 베를린

독일정부는 동유럽에서 사건사고가 있을 때마다 뒤에서 구원투수의 역할을 제대로 한다. 동유럽사람들, 특히 러시아 주요 반체제 인사들이 힘든 일을 당했을 때 베를린은 그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해주는 걸로 유명하다. 왜 그럴까?

베를린에 살다보면 실로 많은 러시아인들을 만나게 된다. 베를린에 사는 러시아인들의 이주이력은 꽤나 오래되어 그들 각각의 이주역사를 물어보면 다들 시기가 다르다.

그도 그럴 것이 러시아의 서쪽국경지역에는 옛날부터 독일인들이 많이 살았었다. 경제적 이유로 독일에서 러시아로 넘어가기도 하고 러시아에서 독일로 넘어오기도 했다.

1941년 독일이 소련을 침공했을 때에는 나치에 협력할까봐 스탈린이 볼가강 주변 독일인들에 대해 대대적인 숙청작업을 한 적도 있었다. 제정러시아 로마노프왕조의 표트르3세는 킬에서 태어난 독일계 러시아인이었고, 독일 프로이센 황제 프리드리히 2세의 배려로 포츠담에서 12살까지 살았다. 그의 부인인 예카테리나 2세는 아예 독일인이었다.

가까이 살면서 물과 기름처럼 다른 정치체제로 인해 늘 긴장감이 넘치지만 실리적인 이익을 위해 양국은 협력할 때도 있었다. 그들은 그냥 가까워졌다가 멀어졌다가 하는 것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양국간 국민들 사이에도 20세기 들어 큰 전쟁을 두 번이나 치루었음에도 불구하고 깊은 앙금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나발니가 입원해있는 베를린샤리테병원.
러시아 반체제 인사 알렉세이 나발리가 입원해있는 베를린 샤리테병원.

이들은 '석유 재벌'일까 '러시아 마피아'일까

러시아는 옐친대통령의 실각 이후 푸틴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언론의 자유와 경제행위의 자유에 있어서도 점진적으로 억압적인 분위기로 바뀌었다. 그 때 서방으로 나올 수 있는 기회가 있었던 러시아인들은 많이 빠져나왔다.

2014년 3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병합하기 전까지 러시아는 석유산업의 호황을 누렸다. 러시아에서 제일 인기있는 대학전공이 석유가스분야일 정도로 석유산업은 러시아를 떠받치는 주요 산업 중 하나였다. 석유 관련업으로 돈을 모은 러시아인들이 향하는 곳은 대부분 베를린이었다.

베를린은 러시아인들을 포함한 동유럽국가 출신 부자들에게 안전한 투자처로 인식되는 제1의 도시이다. 과거 소비에트연방체에 속했던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벨라루스 같은 곳이나 폴란드, 체코는 여전히 안전한 자산도피처로 인식되지 않는다. 러시아의 영향력이 여전히 강하기 때문에 언제든 자금을 회수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러시아인들은 베를린을 선호한다. 베를린은 러시아인들이 닿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민주주의체제 국가로 시민의 생명과 자유를 보장하는 제대로 된 국가이기 때문이다.

베를린에는 10개 이상의 국제학교가 있고, 러시아어를 가르치는 정규국제학교도 있다. 베를린에 정착하면 서방으로 난 창을 통해 자녀들에게 영어와 러시아어를 가르칠 수 있고, 러시아에 있는 자신들의 경제기반을 보다 튼튼하게 지킬 수 있고 믿는다.

그래서 그런지 러시아인들의 교육열은 우리나라 부모들 못지 않게 열성적이다. 그리고 그들은 영어의 힘을 매우 중시한다. 결국 러시아인들에게도 국제사회로 나아가는 열쇠는 영어인 셈이다.

그런데 독일에 거주하고 있는 러시아인들이 무엇을 하는 사람들인지에 대해서는 다들 말을 아끼는 편이다. 회사원보다는 대부분 자영업자들로 사업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늘 좋은 차를 타고 다니고 아이들은 늘 비싼 사립학교에 다닌다. 독일인들과 잘 섞여 살지 않는다. 가장 전형적인 러시아 부인들은 대부분 카데베 백화점(베를린 쿠담에 위치한 명품백화점)에서 하루종일 쇼핑하는 것이 그들의 모습이다.

그들의 부가 어디에서 오는지 다들 궁금하면서도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왜? 베를린은 동유럽 마피아의 서유럽진출의 '교두보'이기도 하다. 그 중 가장 무서운 조직은 러시아 마피아라고 한다. 그러니 그들의 삶이 어떠한지에 대해서 물어보기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물론 독일인들의 특성상 남의 일에 관심이 별로 없는 것도 이유이다.

푸틴의 정적으로 불리는 러시아 야권인사 알렉세이 나발니.
푸틴의 정적으로 불리는 러시아 야권인사 알렉세이 나발리.

베를린에서는 심심찮게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2016년 3월 어느 날 오후, 샬로텐부르크(Charlottenburg)에 있는 베를린오페라하우스(Berlin Oper)에 세워진 승용차의 지붕이 날아가는 살인사건이 났을 때도 테러사건이 아닌 조직범죄 사건이었다. 그날 그야말로 하늘에서 경찰특공대가 완전무장을 하고 도로 위를 레펠하강하는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다.

그 뿐인가? 지난해 8월에는 베를린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티어가르텐(Tiergarten) 공원에서 러시아 체첸반군의 지도자 중 한 명이 총에 맞아 숨지는 사건(일명 조지아인 살인사건)이 발생하였다. 이에 연루된 혐의자로 러시아국적의 정보요원이라 의심받는 자가 올해 6월 18일 연방검찰에 의해 기소됐다. 물론 이 사건은 간단한 사건이 아니었기에 독일정부는 러시아 외교관 2명을 작년 12월 추방했다. 러시아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독일외교관 2명을 맞추방한 상태이다.

베를린은 여느 서유럽도시와는 사뭇 다른 러시아풍이 많다. 1920년대 상트페테르스부르크에서 온 러시아 작가 안드레이 벨리(Andrey Bely)는 베를린을 방문하고 이렇게 썼다. “베를린에는 러시아의 향기가 난다(Es riecht nach Russland in Berlin).”

러시아 대문호들이 사랑한 베를린, 이젠 가장 '힙한' 곳으로

'닥터 지바고'의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나 '전쟁과 평화'의 톨스토이를 포함한 수많은 러시아출신 작가들은 베를린을 사랑했다. 근대 러시아문학의 최고봉이라고 불리우는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샬로텐부르크에 살았으며, 그는 그때 '베를린안내(Guid to Berlin)'라는 단편을 남겼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살았던 집의 기념석.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살았던 집의 기념석.

베를린은 러시아인들이 닿을 수 있는 서구문명을 향한 첫 정착지였던 셈이다. 어떤 이들은 베를린에서는 터키어보다는 러시아어가 더 많이 들린다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실제로 베를린에 정착한 외국인들의 숫자를 살펴보면 터키인, 폴란드인 다음으로 많은 사람들이 러시아인들이다(2017년 12월 통계자료). 

베를린은 독일의 수도이지만 가장 독일스럽지 않은 도시이다. 독일스럽지 않은 도시라는 말은 외국인들로 넘쳐나는 도시라는 뜻이기도 하다. 독일인들끼리 “베를린은 독일이 아니야!“라고 하는 말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들리는 젊은 도시, 베를린!

1989년 동서장벽이 무너진 이후 통일 독일의 상징의 도시로만 기억될 것 같았던 베를린, 이제는 21세기 가장 '힙한' 도시로 불린다. 세계의 유명한 젊은 작가들은 파리를 가지 않고 베를린을 간다.

어떤 나라 출신이든 가리지 않는 포용성 때문인지 몰라도 수많은 러시아인들은 베를린으로, 베를린으로 모여들고 있다. 그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베를린은 그들에게 숨쉴 공간을 제공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2019년부터 베를린 필하모닉 수장으로 활약 중인 젊은 키릴 페트렌코도 러시아 옴스크 출신이다.

● 최수정 베를린 통신원은 독일 함부르크대학 법학박사과정에서 해양법을 전공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해양수산개발원에서 11년간 책임연구원으로 재직한 바 있다. 주로 해양환경, 국제수산규범, 독도영토분쟁을 포함한 유엔해양법에 관한 연구를 해왔다. Ach So!는 '아하!` 라는 뜻의 독일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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